• UPDATE : 2026.8.27 목 10:30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뮤지컬 「그리스」- 백만 달러짜리 청춘, 천만 달러짜리 음악, 그리고 내가 억만 달러보다도 더 원한 바로 너!

 

"사랑이여, 건배하라,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피는 모든 것을 위하여."
요즘 광화문 교보문고 외벽에 씌어 있는 말입니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의 일부이지요. 왠지 따사로운 봄볕 아래서 본 그 시 구절은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아름다운 순간은 너무 짧으니까요. 때론 단 하루를 버티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 찰나를 슬퍼하면서 보낼 수는 없습니다. 건배를 해야지요. 자, 건배해요! 봄이 한창입니다.
가로수 벚나무의 꽃들이 눈처럼 하얗게 피어 있습니다. 봄꽃 구경들은 하셨나요? 저는 어느 늦은 밤에 하루 종일 머물렀던 사무실을 나와 거리를 걷다가 봄밤의 냄새를 맡고 그만 온몸이 찌르르 감전된 듯 아찔해졌습니다. 낮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고 시각보다 후각이 더 예민해져서인지 그제야 차갑고 축축하고 달콤하고 향기로운 봄꽃들의 냄새가 대기를 꽉 채우고 있는 걸 알았습니다. 오, 봄밤!
그 봄밤의 향기는 아스라하게 청춘을 떠올려보게 합니다. 그렇게 청춘을 위해 건배할 때는 어떤 뮤지컬을 보면 좋을까요?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바로 뮤지컬 「그리스」!입니다.


백만 달러짜리 청춘 -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던 그 무렵
무대의 막이 오르고 첫 시작부터 1950년대 미국 어느 고등학교 개학식 날 학생들의 톡톡 튀고 화려하고 에너지 넘치고 활기 찬 모습이 귀에 익은 신나는 로큰롤 음악과 함께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부러운 시기이지요.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 역시 그 시기에 친구들을 최고로 여기고, 어른 흉내를 내고, 자기만의 꿈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고, 작은 일에도 심각하게 고뇌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한껏 멋을 부리는 일을 전부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가슴속에 너무나 뜨겁고 붉은 피를 가지고 있을 때이니까요. 이 공연은 바로 그 백만 달러짜리 청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던 그 무렵입니다.

이 작품의 구상은 1960년대 말 한 맥주 파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짐 제이콥스와 워렌 케시는 그 맥주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유행하고 있던 뮤지컬 음악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뮤지컬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데 의견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로큰롤의 황금기인 1950년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얼마 후 워렌 케시가 먼저 작업을 시작했고 이어 짐 제이콥스가 합류해서 1950년대 미국의 새로운 자유를 표방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패션으로 머리에 바르던 포마드 기름을 의미하는 그리스(Grease)를 제목으로 한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역사적인 첫 공연은 1971년 2월 5일 시카고의 한 실험극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실험극장은 얼마 전까지 차고로 상용되던 곳이었죠. 신문지를 깔아서 좌석을 만들었고 배우들도 모두 아마추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연은 입소문만으로 곧 많은 관객들이 찾는 공연이 됐습니다. 이에 1972년 브로드웨이에서 조금 떨어진 에덴 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됐죠. 관객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원하던 만큼의 흥행을 거두지 못했고 브로드웨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토니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억울함을 참을 수가 없어서 소송을 했고 결국은 토니상 7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됐고 후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해서 1980년까지 3,388회나 공연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뮤지컬의 흥행에 힘입어 1978년에는 「토요일밤의 열기」「해어」「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제작했던 명 프로듀서 로버트 스틱우드가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튼존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영화로 만들어 소위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최초의 작품이었죠.
영화의 흥행은 또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뮤지컬 「그리스」가 리바이벌 공연되도록 했고요. 오늘날에는 가장 사랑받는 전설의 뮤지컬 중 한 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린 바로 그런 작품을 보는 거랍니다.


천만 달러짜리 음악 - 시대를 초월해서 사랑받는 주옥같은 넘버!
학교 교정에서는 여름 방학 동안 떨어져 지냈던 친구들이 다시 만난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여름방학의 멋진 추억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난리법석입니다. 왠지 별빛이 쏟아지던 여름밤 아름다운 바닷가는 멋진 로맨스가 벌어지기에 적합한 계절 같습니다.
자, 그럼 남녀주인공 대니(김진우)와 샌디(임혜영)의 여름밤의 추억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그 유명한 「여름밤summer nights」입니다. 이 곡은 우리나라에서 몇 년 전 고소영과 정우성이 출연한 모 의류 광고에 삽입곡으로 쓰여 다시 한 번 인기를 얻어 각종 방송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978년 영화 「그리스」가 개봉한 뒤 영화음악 사운드트랙은 77주 동안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 올랐고 12주 동안 1위를 기록했습니다. 정식앨범 8백만 장, 복사판 2천만 장이나 판매됐고요.
뮤지컬 「그리스」는 정말 그 무엇보다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넘버가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렇게 멋진 음악이 있기에 설령 다른 것들이 조금 모자란다 해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발을 구르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하죠. 하지만 용서는 필요 없습니다. 섹시하고 멋진 춤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니까요. 그뿐인가요?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예쁜 남녀 배우들의 의상은 눈요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하고 고르고 안정적인 배우들의 성량도 귀를 즐겁게 합니다. 떼거리로 몰려나와 양으로 스펙터클을 선사합니다. 거기다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히든카드! 바로 훈남의 복숭아 같은 예쁘고 탱탱한 엉덩이를 보실 수도 있답니다.
1950년대 유행했던 로큰롤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다시 들어도 흥겹고 젊음의 활기가 느껴집니다. 그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다시 젊음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요. 백만 달러짜리 청춘은 가버렸지만 천만 달러짜리 음악은 그때 그 느낌 그대로 살아 있답니다. 이성은 감정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감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울했던 마음도 금방 흥겨워지니까요.


내가 억만 달러보다도 더 원한 바로 너! - 너를 위해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어!
맨 마지막 장면 말입니다. 데니와 샌디가 함께 부르는 그 유명한 곡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너야(You're the One That I Want)」.
소위 목까지 단추 다 잠그는 완전 범생이 꽉 막힌 샌디가 사랑하는 데니를 위해 180도 대 변신을 합니다. 섹시하게 대담하게 노는 여자처럼 하고 온 거죠. 오로지 데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요. 얼굴은 여전히 순진무구인데 옷은 몸에 꼭 끼는 걸 입은 폼이라니. 한껏 섹시한 척 폼 잡고 노래를 부를 때 완전 너무 웃겨서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데니가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감동했을지. 아마 눈에 넣어도 안 아팠을 겁니다. 정말 그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었죠.

뮤지컬 「그리스」의 한국어 공연은 2003년 5월 20일에 폴리미디어씨어터에서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9차례의 무대제작과 900회 이상의 공연을 통해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동안 거쳐간 스태프 수만 300여 명이 넘습니다. 또한 엄기준, 고영빈, 홍록기, 이선균, 오만석, 정경호, 강지환, 지현우, 조여정, 윤공주 등의 스타들을 배출했습니다. 스타 등용문이 돼왔지요. 이번 공연에서도 대니 역의 김진우, 샌디 역의 임혜영, 케니키 역의 손승현, 리조 역의 정인지의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차세대 스타 탄생이 기대됩니다.

다만, 아주 신나고 멋진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움들이 남습니다. 일단, 부각해야 할 부분과 그냥 지나가야 할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전체적인 연결에서 작은 디테일들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너무 딴 나라 딴 사람들 이야기 같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요? 같은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 「그리스」는 197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지만 지금 봐도 전반적으로 아무런 손색없이 그 청춘의 모습에 공감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근데 뮤지컬 「그리스」의 한국어 공연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약간 따로 딴 세상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강하고 그래서 그 청춘에 완전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왜? 왜? 그럴까요? 보는 내내 그 고민을 했습니다. 그건 작은 디테일에 대한 세심한 연출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고전은 시대적 배경, 가치관, 의상, 음악 다 오늘날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에게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뮤지컬 「그리스」의 한국어 공연이 뮤지컬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에게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약간만 더 치열한 고민과 세심함이 필요한 듯합니다.

처음에 파블로 네루다의 시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에서 한 구절을 인용했으니 마지막도 파블로 네루다의 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봄이잖아요. 그러니 "정말로 나는 봄이 벚나무와 하는 일을 너와 함께하고 싶다"

ps. 참, 봄이 정말 짧은 거 다 아시죠? 그 봄이 가기 전에 뮤지컬 한 편 보는 것 잊지 마세요.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