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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용감했다’, 가슴 뭉클한 눈부신 에너지 발견

 

장유정작가의 신작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막 익은 달콤한 인생을 부여받은 느낌이다. 서양의 극예술인 뮤지컬의 양식에다가 21세기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관객에게 다가오는 감흥은 효녀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그 순간 같다. 그 애틋하고 뭉클함은 무언가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이 형제들, 참 못났다. 아직도 사춘기 마냥 사소한 일로 주먹다짐이다. 하지만 미워지지가 않는다. 아버지의 영정에 절을 하라는 어른들의 말에 “전, 교회 다녀요”라며 뻣뻣이 서있는 주봉(송용진)이나, 장남이랍시고 조의금을 모두 챙기는 석봉(박정환)이나, 참 미워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판타지 코믹 액션 공상 과학 드라마틱 감동 뮤지컬

이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웃음’과 ‘눈물’이다. 진부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가장 이 작품을 잘 드러내어 주는 단어다. 웃음과 눈물이 뒤범벅된 객석은 장유정만의 ‘세상 들여다보기’에 발걸음을 맞춘다.
물론 전 연령층이 공감할 내용이지만 젊은 층에 더 어필하겠다. 그 이유는 등장하는 음악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속도 등 다양한 부분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세대든 지역이든 이들의 이야기에 내외할 필요는 없다. 가족 없는 사람 없고 또 가족과 갈등 없는 사람 없지 않은가? 피가 섞였든 아니든 가족은 누구에게나 똑 같은 존재다.

이 작품이 선택한 판타지는 ‘꿈’이다. 이들의 꿈은 현실의 반영이다. 꿈을 소재로 한 기존의 작품들은 많았지만 그것들과는 다르다. 아버지의 장례식 동안 석봉과 주봉에게 쏟아지는 짜릿한 일들은 한 낮 꿈같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이 ‘사실’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덕분에 관객들도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영광’을 누린다.

이 작품에는 관객들이 끝까지 잡고 가는 끈이 여러 개 있다. 어쩌면 뻔 한 그 결말과 과정은 어디서 본 듯 익숙하지만 그 표현은 매우 감각적이다. 관객들은 그 흐름을 놓지 못한다. 물론 그 뻔 한 결말에 누구보다 기뻐하는 자 또한 관객들이다.


작품이 던지는 진정성에 공명(共鳴) 하는 ‘음악’

타 창작뮤지컬에 비해 음악의 비중이 높다. 극과 환상호흡을 보이며 동떨어지지도 지나치지도 않는다. 극의 흐름에 맞게 빠르게 변화되며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다 갖추었다. 무척 쉽고 간단한 멜로디지만 지루하지 않다. 그것은 ‘변주’의 기법이 작품 속에서 매우 탁월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은 멜로디의 테마는 성부가 나뉘고 화성과 빠르기가 변화하는 등 속도감 있게 발전된다. 자꾸 반복되는 테마곡은 모든 관객들이 극이 마칠 때쯤엔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독창보다는 합창이나 중창에 더 힘을 실었다. 특히 극의 초반에 쏟아내는 합창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즉, 장례식의 곡소리(아이고, 아이고)에 맞춘 앙상블의 합창과 석봉, 주봉의 노래는 극 초반의 스토리를 인지시키고, 전체적인 작품의 짜임새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밖에도 펑키리듬의 ‘로또 당첨쇼’나 보사노바풍의 ‘오로라’의 아리아도 극 속에 자연스레 녹아 관객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곱자면 빠른 진행으로 잘 들리지 않는 가사와 사운드의 진부함이다. 스피커로 커진 음량은 극장을 가득 메웠지만 이들의 진짜 음악은 극장의 아래쪽에서만 맴돈다.


9명의 배우, 모두가 주인공

이 배우들은 이 작품이 무척 즐거운가 보다. 그런 그들이 무대에서 보인다. ‘배우들이 즐거워야 관객도 즐겁다’는 그 진리는 어느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배우가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등장하는 모든 배역이 다 주인공 같다. 힘든 속사정이야 누구나 다 있겠지만 작품에 임하는 배우들은 그 순간만큼은 즐겁다. 그래서 이들의 연기가 꼭 연기 같지만은 않다.


“사랑한단 말 못해 미안했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삶은 21세기 더욱 간편화되고 축소되었다. 그만큼 부모, 형제, 가족의 의미도 작아졌다. 그 이유에는 ‘오해’라는 놈이 자리 잡고 있다. 말 안 해도 알겠지 하는 오해, 가족이니까 ‘당연히’라고 생각하는 오해, 세상에는 나 혼자 뿐이라는 오해, 괜찮을꺼야 하는 오해, 그래서 우리는 남보다 가족과 더 큰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러고 보니 현 시대의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참 많은 것을 생략했다. ‘진보’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 이 작품은 그것을 말하고자 한다.

어른들이 말하는 ‘보수’가 종갓집 유림들의 철저한 형식과 규율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라는 이유로 방랑자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물론 용감했던 방랑자들인 석봉과 주봉의 이야기가 ‘그들은 그 후로 행복했다’는 결말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달리기 지친 우리들에게 ‘처방전’을 던져주는 것 같다. 플라시보 효과를 강하게 믿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뒤 좀 돌아보라고 건네주는 ‘비타민’ 한 줌 말이다.


공정임기자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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