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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어 100회 공연에 바쳐진 10분간의 기립박수!

 

삶이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높음과 낮음이 서로 섞여드는 기묘한 드라마가 아니었던가 -빅토르 위고

한국어 100회 공연이 끝나자마자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 박수는 10분 넘게 계속됐습니다. 박수가 이어지는 동안 무대에서는 100회 공연을 하기까지의 대장정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상이 상영되었고 축하 케이크 커팅도 있었습니다. 이후 이어진 배우들의 커튼콜이 끝나고 무대의 막이 내려간 뒤에도 관객들은 공연을 관람한 뒤의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어쩌지 못해 한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9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3,700석 규모의 팔레 데 꽁그레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약 2,700여 회의 공연에 약 1천만 명 이상이 관람한 프랑스 국민 뮤지컬이자 최대 화제작입니다.
우리나라에는 2005년도에 오리지널 공연이 소개됐고 예상 밖의 큰 흥행을 거두며 2006년 앙코르 공연까지 19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최단 기간 최대 관객 동원 기록이었습니다. 이후 불붙은 프랑스 뮤지컬에 대한 갈구는 2007년「프랑스 3대 뮤지컬 오리지널 캐스트 내한 공연」으로도 이어졌습니다. 한편 오리지널 공연에 대한 감동은 자연스레 자막을 보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바로 가슴에 노래가사들이 꽂히는 한국어 공연으로도 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간절했던 열망의 작은 씨앗은 2007년 10월 김해에서 개막한 첫 한국어 공연으로 싹이 텄습니다. 한국어 버전 공연은 영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스페인어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이자 아시아 최초의 로컬 버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김해에 이어 고양과 세종문화회관을 거쳐 성남에서 드디어 100회 공연이라는 열매를 맺기에 이른 것입니다. 지금까지 100회 공연을 해오면서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와 춤은 무르익을 대로 익어서 그 절정에 올랐습니다. 앞으로도 대구, 대전, 광주 공연이 예정돼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젊었을 때 100회를 넘겨 예술적 성취가 그 절정에 달해 있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국어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거역할 수 없는 숙명적 사랑,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치명적인 사랑이 주는 처절한 멜랑콜리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새싹은 푸르고 봄꽃들은 향기롭지만 날씨는 변덕스럽고 일교차가 심합니다. 그런 환절기에 감기를 지나쳐가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몇 알의 약을 먹었고 약기운에 취해 약간 몽롱한 상태였습니다. 이성을 잠재운 순간이지요. 몸은 약해졌고 약간 허기가 지는 몽롱한 상태는 뜻밖에도 묘한 쾌감을 선사했습니다.
그래서였을 겁니다. 저에게는 단단한 에고를 완전 굴복시켜줄 강력한 그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오체투지를 하듯 투신을 하듯 완전한 몰입 상태에 빠지고 싶었습니다. 마치 심령대부흥회에 참석한 뒤의 성령 충만한 상태 말입니다. 뭐, 그럴 땐 두 말이 필요 없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는 게 딱이지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감히 뮤지컬에서의 왕 중의 왕, 뮤지컬에서의 하이엔드라고 부를 만합니다. 뮤지컬이 인간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은 어디까지인지를 경험해보게 하는 멋진 작품이지요. 몇 번을 보아도 그 감동이 식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한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노트르담 드 파리 폐인’이라고 합니다.
무대의 막이 오르고 한 남자가 비스듬히 누워 있다가 천천히 일어서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성당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는 음유시인 그랭구아르. 그 첫 곡부터 장엄하면서도 파워풀한 성량으로 공연장을 압도해버리지요. 음악은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의 영혼을 덮쳐버리고 우리의 영혼을 굴복시켜버렸습니다.
이어 신이 특별히 정성을 들여 조각해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의 등장. 그녀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 세 명의 남자. 그 세 남자의 서로 다른 세 가지 사랑의 방식.
폭풍처럼 찾아온 사랑에 눈멀어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이기적인 사랑-프롤로 부주교,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진실한 사랑-꼽추 콰지모도, 본능에 충실한 채 욕망에 따르는 육체적인 사랑-파리 시의 근위대장 페뷔스가 각자 서로 다른 사랑의 극한까지 보여줍니다.
그 세 가지 색깔의 이기적 감정적 낭만적 헌신적 동물적 격정적 사랑은, 바로 그 폭발하듯 강렬한 사랑은 그러나 모두 이루어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맙니다. 그래서 더 가슴 찢어지고 안타깝고 비극적입니다. 어중간하게 그럭저럭 타협하는 사랑을 택하기보다는 차라리 처절하게 실패하는 편을 택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래서 더욱 한없이 고귀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격렬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각 인물들의 격정적인 사랑에 이끌려 에고를 놓아버린 채 내면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솔직한 욕망이 지배하는 격정적인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게 됩니다. 비장하면서도 가슴 찢어지게 슬프면서도 이상하게 순수하고 숭고한 마음을 지닌 채로 말입니다.

노트르담 성당이 내려다보는 파리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거침없이 솔직한 욕망과 사랑
잠시 노트르담 성당 이야기. 이 공연의 제목은 ‘노트르담 드 파리’인데 그건 ‘파리의 노트르담’이란 뜻입니다. 그 제목이 말해주듯 어찌 보면 이 공연의 진짜 주인공은 콰지모도도 에스메랄다도 프롤로도 아닌 말없이 파리를 지켜보고 있는 노트르담 성당은 아닐까요? 그러니 노트르담 성당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습니다. 노트르담은 ‘성모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쉽게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고 생각하면 되죠.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시테 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장중함을 특징으로 하는 13세기 고딕 건축 양식의 대표 걸작입니다. 가난한 나무꾼 출신으로 파리 주교에 오른 모리스 드 쉴리가 1163년 파리를 대표할 만한 성당을 건립하겠다고 결정한 이후 건립의 대 역사는 장장 3세기나 지난 1345년이 돼서야 종결됐습니다.
그 이후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의 종교적 심장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중세 이후의 격변했던 프랑스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는 증인도 돼야 해야 했습니다. 1455년 잔 다르크의 복원 재판이 열렸고 1804년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이 열리기도 했고 성당 앞은 처형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노트르담 성당을 ‘프랑스의 역사 교과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중세 시대에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하고 장례미사를 치르고 무덤으로 가죠. 성당은 그 당시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사람들은 첨탑을 뾰족하게 만들어서 신의 위대함을 경배하면서도 하늘에 이르고 싶은 열망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르트담 성당은 건립 이후 여러 번의 수난을 당하면서 망가지고 부서져 있어야 했습니다.
수난당했던 노트르담 성당 복원 작업의 기폭제가 된 건 1831년 빅토르 위고가 발표한 낭만주의 역사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입니다.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곧 작가, 예술가, 정치인들에게 노트르담 성당을 재건해야 한다는 각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7월 왕정의 루이 필립 왕이 1841년 성당 앞면 복원 공사를 결정하게 했죠. 노트르담 성당의 대 복원 작업은 비올레 르 뒤크가 이끌었고 1846년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됐습니다.
오늘날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의 대표적인 명물이 됐습니다. 모두 빅토르 위고 덕분이죠. 그는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 19세기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15세기 말의 파리로 가보자고 합니다. 당시는 대성당들이 지배하는 중세입니다. 근데 왜 하필 중세시대로 가자고 했을까요? 그건 빅토르 위고와 같은 감정을 중요시하는 낭만주의 작가들이 이성을 중시하는 고전파 학자들이 동경해 마지않던 그리스 로마의 문화와 문학에서 벗어나 프랑스 국민 문화의 모체인 중세를 더 동경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중세는 모든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바로 그 지점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중세시대 파리에는 대 성당이 있고 그곳은 신이 지배하는 곳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인간은 사랑, 정열, 미움, 증오와 같은 생생하고 솔직하고 격정적이고 자유분방한 감정에 빠지고 욕망에 충실한 자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벌어지는 ‘미치광이들의 축제’ 기간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건을 펼쳐나가는 것이 바로 가장 단적인 예입니다. 미치광이들의 축제란 15세기에 프랑스에서 행해졌던 대중적인 축제를 말합니다. 이 기간만큼은 모두가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마임극, 마술공연, 풍자극 등의 공연들이 펼쳐졌습니다. 축제의 절정에서는 어릿광대들이 이른바 ‘미치광이들의 교황’을 선출했습니다. 이 미치광이들의 교황은 가장행렬의 선봉이 돼 골목을 행진했고요. 그 축제는 한마디로 광란의 축제나 다름없습니다.
바로 그 축제기간에 외양만으로 본다면 도저히 인간으로 볼 수 없는 괴물 곱추 콰지모도는 미치광이들의 교황으로 선출됐고 팜므 파탈이 분명한 낯선 이방인인 집시 에스메랄다는 그 축제 기간에 거리에서 관능적인 춤을 춥니다.

세상에 다시없는 프랑스식 뮤지컬의 모든 것!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극본 및 가사를 맡은 뤽 플라몽동과 작곡을 맡은 리카르도 코치안테는 오랫동안 음악교류를 해오면서 언젠가 함께 작품을 하나 같이하기로 약속해두었습니다.
뤽 플라몽동은 이미 프랑스 뮤지컬계에서 전설적인 작품이 된 「스타마니아」의 작사가로 프랑스어권 예술계에서는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거장입니다. 그는 세상에 잘 알려진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으로 이르는 출구’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떤 작품을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던 중 인명사전에서 우연히 콰지모도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콰지모도의 흉측한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곧바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읽었습니다. 그동안 그가 찾았던 작품을 만난 거지요.
마치 빅토르 위고가 스물여덟 살 때 노트르담 성당을 방문했다가 숙명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아나키아(ANArKH)가 새겨진 돌을 보고 영감을 얻어 추운 겨울에 창문을 열어놓고도 너무 몰두해서 쓰는 바람에 추운 줄 모르고 일필휘지로 썼던 것과 같습니다. 그는 곧 리카르도 코치안테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두 사람은 바로 의기투합해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약 5년의 작업 끝에 비로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탄생했습니다.
음반은 공연 1년 전에 발매됐고 발매되자마자 큰 인기와 열풍을 몰고 왔습니다. 공연 1년 전에 발매한 OST 앨범은 프랑스 차트에서 17주간 1위를 차지했고 그중 「아름답다(Belle)」는 44주간 1위를 차지했습니다. 1,100만 OST 앨범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음악은 MR(녹음된 반주)를 사용했습니다. 다른 뮤지컬과 달리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완벽하게 녹음된 반주는 별달리 흠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현장감이 떨어지고 약간의 아쉬움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장에서 즉석 연주를 듣는 즐거움이 따로 있으니까요. 또한 모든 대사는 노래로 진행되는 송-스루(Song-Through) 형식입니다. 박자와 음률이 살아 있어서 감정 전달에 더 효과적입니다. 다만, 한국어 번역에서 프랑스 노래가사가 담고 있던 시적 아름다움이나 상징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의미 전달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적 감정적 전달에는 미흡했습니다.
안무를 맡았던 마르티노 뮐러는 이 작품에서 현대무용, 아크로바트(기예), 발레, 브레이크 댄스 등을 섞어 몸으로 절규한다는 것, 몸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것, 몸으로 욕망을 표현한다는 것, 몸으로 관능적인 쾌락을 느끼게 한다는 것, 몸으로도 구현되는 성스러움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시적이고 창의적이면서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안무였습니다.
또한 그 안무를 구현해 낸 전문 무용수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공연도 인상 깊었습니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자유자재로 폈다 접었다 뛰었다 매달렸다 날을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는 것 같았습니다. 노트르담 벽을 타고 종 줄에 거꾸로 매달리고 곡예를 하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까웠습니다. 무대에 선 댄서, 아크로바트, 비보이는 모두 자신만만한 표정과 몸짓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뭐, 당연하지요. 모든 동작이 완벽했으니까요. 무대 위의 공연을 주인공으로서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매혹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무대는 그 자체로 현대미술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같았습니다. 석벽들이 영화 「큐브」처럼 이동하고 신기하게 튀어나오면서 공간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노트르담 성당의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미학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냈고요. 괴물 형상을 한 석상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알 수 없는 슬픔을 극대화했고 아름다운 장미창도 한껏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그리고 엠마뉴엘 종은 꼽추 콰지모도가 막 꺼내놓은 심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으로 절규하는 심장의 소리를 들어보라는 듯 울리니까요.
프랑스에서 직접 30톤에 달하는 무대 장치를 공수해와 오리지널 팀이 보여줬던 무대 감동을 고스란히 살려냈습니다. 노트르담을 상징하는 대형세트와 100킬로그램이 넘는 대형 종들과 감옥을 상징하는 쇠창살 등이 바로 프랑스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또한 104개의 조명 라이트를 사용해 빛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살려내었고요.
배우들의 열연 역시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콰지모도 역을 맡은 윤형렬은 지옥에서 절규하는 것처럼 슬프면서도 처절해서 가슴을 아프게 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저음이 나올 수 있을까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마지막곡인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는 제대로 감정을 실어 폭발하듯 불렀습니다. 그런 노래를 부를 정도이니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는다는 것이 가능해 보이기도 했고요. 프랑스 오리지널 배우와 비교해서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페뷔스 역을 맡은 김성민는 두 여자를 사랑하게 된 괴로운 심정을 노래하는 「괴로워」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어두운 무대 뒤쪽으로 5명의 남성 댄서들이 강렬한 춤으로 그 괴로움을 극대화해내면서 노래와 춤은 하나로 어울려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프롤로 역을 맡은 서범석은 「신부가 되어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에서 이성에 따라 신념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자신이 사랑해선 안 될 여자를 사랑하게 된 괴로움과 갈등을 잘 표현해냈습니다. 윤형렬, 김성민, 서범석이 함께 각자의 사랑에 대해 부른 「아름답다」는 물론 두 말이 필요 없이 단연 압권이었고요.
음유시인 역을 맡은 박은태는 달콤하면서도 아름답고 풍부한 성량으로 이 모든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무대의 막이 오르고 그가 부른 첫 곡에서 관객들은 이미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으니까요. 또한 클로팽 역을 맡은 문종원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한 음색을 들려주었고요. 주연이 아니었는데도 무대에서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너무 잘생겨서 그런가요?
그리고 우리들의 헤로인이었던 에스메랄다 역의 바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삼 가수인 그녀에게 가창력이 뛰어났다는 식의 수식어는 필요 없을 듯합니다. 뭐 노래 잘하는 거는 다들 아시잖아요. 육감적인 몸매를 지녔으나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은 영혼을 가진 집시 여자이지요. 어리석게 거짓 사랑을 진짜 사랑인 줄 착각하고 죽음과도 바꾸지 않은 채 순정을 지키고요. 누구나 한번 보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자입니다. 거리에서 관능적인 춤을 추는 무희라는 직업은 어쩔 수 없이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남자들을 유혹하게 되고 또 파멸로 이끌 수밖에 없으니까요. 자기 자신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세 명의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우리 역시 “사랑의 순교자 콰지모도”와 같은 낭만적 사랑을 꿈꾼다
우리 역시 한때 아니, 어쩌면 지금도 사랑을 다해 사랑했고 사랑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을 꿈꾸었고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요. 꿈꾸는 거지요. 누군가는 용기를 가지고 정말 그럴지도 모르고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어느 날 폭풍처럼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과 그 격정적인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파멸하고 희생하고 순교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격정적이고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다시 찾고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한껏 고귀해지고 아름다워진 자신과 만나게 됩니다.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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