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 뮤지컬 「햄릿」이 더 새로워진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작품은 체코의 인기 팝가수 야넥 레데츠키와 그의 친구인 뮤지션 마틴 쿰작이 의기투합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록 오페라로 만든 작품입니다. 체코를 비롯한 유럽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돼 호평을 받았습니다.
할리데이비슨처럼 강하고 빠르고 멋지고 매혹적인 작품
세상에서 흔한 것들 중 하나가 오토바이입니다. 그래서 저는 “뭐, 오토바이에 대해서라면 알만큼 알아”라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리데이비슨을 보았죠. 그때의 충격이란! 일단 그 녀석은 소리가 다릅니다. 그 소리는 오직 할리데이비슨만이 낼 수 있는 소리입니다. 푸시도르의 달가닥거리는 소리, 공랭식 엔진의 소리, 낮은 분당 엔진회전수에서의 연소폭발음, 배기 장치에서 나는 불규칙적인 소리 등이 합쳐져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인 야성의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의 유혹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검은 가죽 재킷에 딱 어울리는 외모 역시 남다릅니다. 젊음, 일탈자, 방랑, 야성과 반항, 무목적성, 삶의 고뇌를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공연된 뮤지컬 「햄릿」 시즌 2가 그랬습니다. 수많은 오토바이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할리데이비슨처럼 수많은 「햄릿」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뮤지컬 「햄릿」입니다. 특히 음악이 남다르고요. 심장을 쿵쿵 뛰게 하는 록음악, 회전무대, 가죽바지를 입은 반항적인 주인공, 배신, 음모, 살인, 욕망, 숙명, 결투, 삶의 고뇌가 생생하게 살아 날뛰었습니다. 시종일관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는데도 이상하게 매혹적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시 『햄릿』을 봐야 하는 두세 가지 이유
우리가 술자리에서(그건 어디까지나 술자리라서 가능한 일입니다) 취했다는 이유로 발음을 좀 멋대로 해서 섹스(Sex)어피어(appear)라고 부르기도 하는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끝으로 막을 내린 튜더 왕조에서 제임스 1세가 문을 연 스튜어트 왕조 시대를 살았던 인물입니다. 영국이 전 세계 식민지 건설에 혈안이 돼 있었던 대영제국 시기입니다.
그는 돈 버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었던 대중예술의 한복판에서 당대 가장 먹힐 만한 이야기들을 골라 희곡을 써서 연극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 히트작들을 리바이벌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당시 연극은 가장 상업적인 예술 장르였습니다. 그리고 억세게도 운이 좋았던 그는 요즘 말로 무대에 올렸다 하면 대박을 낸 흥행의 마법사였고요.
영국인들은 그런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을 거라는 진심은 빠지고 과장은 심한 찬사를 보냈습니다. 영국인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셰익스피어가 구사한 영어가 오늘날 제국주의 언어가 된 영어의 표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대 영어 성경에 사용된 어휘가 6,568어인 데 비해 셰익스피어는 그 4배가 넘는 29,066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통해 대영제국 당시의 시대상과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은 특별히 더 셰익스피어를 좋아했습니다. 괴테, 슐레겔, 콜리지, 드라이든 등이 극찬을 했고 그 덕분에 그와 그의 작품들은 재조명됐고 급기야 시대를 뛰어넘는 불후의 세계 명작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런 역사적 의의와 평가들은 우리가 오늘날에도 『햄릿』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건 중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내주는 독후감 숙제에 빠지지 않고 들어 있다는 것! 우리 인생의 질풍노도시기에 언제나 함께했던 오! 『햄릿』.
자기 자신을 사느냐, 죽느냐의 벼랑 끝 상황에 내몬, 이 젊은 왕자는 한껏 고귀한 신분과 잘생긴 외모를 지녔으면서도 자기 몫의 왕관을 차지하지 못한 채 비극의 주인공이 되면서 낭만적이고 달콤하면서도 슬프고 연민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더욱이 혼자서 독백하고 생각하고 회의하고 고뇌했던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수수께끼 같고 모호한 인간이었다는 점은 우리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왕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돌멩이 같은 인간은 없지 않나요!
그래서였을까요? 폴란드 극작가 얀 코트(Yan kott)는 “햄릿에 관한 논문과 연구목록을 작성하다 보면 바르샤바의 전화번호부 두 배의 두께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만큼 햄릿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고 폭넓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햄릿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자,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이긴 하지만 다시 한 번 복수극, 사랑극, 정치극, 심리극, 성격비극 등 각인각색 다층적으로 해석되는 고전 작품 『햄릿』을 통해 인간에 대해, 운명에 대해, 욕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해요. 그런 고민은 언제나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니 대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원작 『햄릿』 속 덴마크 왕자 햄릿은 어떤 사람인가?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주인공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로 나이 30세에 미혼이고 독일 위텐베르그 대학에서 유학 중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귀국한 상태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어야 했지만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장례식을 치른 지 두 달 만에 삼촌과 결혼을 해버렸고요. 그는 마치 무적의 힘이라도 가진 것처럼 보일 만큼 한껏 젊고 힘차고 혈기왕성한 한창 청년기의 왕자입니다. 하지만 그 왕자가 맞닥뜨린 현실은 그 모든 것들을 펼쳐 보일 수 없는 답답한 상황입니다. 그가 젊은이답지 않게 내면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남자는 아버지의 아들로 아버지의 지배를 받다가 결국 힘이 세져서 아버지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극복하고 아버지를 지배하게 됩니다. 하지만 햄릿은 절대적으로 강한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한 나약한 아들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존경하는 강하고 멋진 왕을 무찌르고 권력을 차지한 사람은 바로 햄릿 자신이 아니고 소인배나 다름없는 삼촌입니다.
설상가상 그 아버지인 선왕은 죽어서까지도 아들인 햄릿에게 나타나 복수를 지시하고 조종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젊음은 반항적이라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햄릿에게는 사태를 객관화할 힘도 거절할 명분도 없습니다. 햄릿 왕자는 아버지인 선왕을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한 번도 넘어서지 못한 몸만 어른인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남자 성인으로 자라지 못한 거죠. 아직 여자를 알지도 못하고 결혼도 못했고 왕위 계승 서열에서도 삼촌에게 밀렸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극중극을 통해 유령의 말이 진실인지를 확인해본 게 고작이었죠. 물론 그 이후에는 그래도 우유부단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행동파가 되기는 하지만요.
젊은 가죽 바지를 입은 햄릿은 젊음의 육체를 가진 탓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하늘 높이 치솟아 미친 듯이 날뛰다가 저 어두운 불안의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합니다. 젊음은 극단적인 삶을 선택하곤 하잖아요. 그는 불타는 복수심에 사로잡히다가도 금방 회의하고 의심하고 고뇌합니다.
우리의 햄릿은 그런 상태입니다. 그리고 햄릿이 살고 있는 덴마크 왕실은? 원래 왕실은 신처럼 행동하거나 신이라고 착각을 하는 인간 부류가 모인 집단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이 받아들이는 죽음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왕도 있었으니까요. 진시황제는 영생을 얻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햄릿의 어머니 역시 장성한 아들을 둔 50세가 다 된 여자이지만 어머니로서의 모성애보다는 여자로서의 욕망에 더 충실한 사람이고요. 삼촌 역시 독신으로 살다가 형을 죽이고 형수와 결혼하고요. 이 모든 일들은 일반 인간의 삶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왕족의 삶을 살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사실 왕실에서는 좀 흔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덴마크 왕실을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 최고로 귀한 신분을 가진 인간의 거침없이 극대화된 원초적인 본능과 욕망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습니다.
햄릿 시즌 1과 시즌 2 비교하면서 보기
뮤지컬 「햄릿」의 시즌 1을 연출했던 연출자 왕용범은 언론 인터뷰에서 “기존에 알고 있던 「햄릿」과는 조금 방향이 다릅니다. 저희 뮤지컬 「햄릿」은 사랑 테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적이고 로맨틱한 햄릿을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이 말만큼 시즌 1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낸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시즌 1은 햄릿과 오필리어의 사랑과 클라우디우스와 거투르드의 사랑이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작의 장엄한 비극미들이 제대로 살려지지 않았고요. 짝짓기에 열중하는 왕실 청춘물 같았습니다.
전체 구성은 급하게 만든 고전 직역 요약판을 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요약을 할 땐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근데 시즌 1은 중요한 부분들을 다 잘라내고 조각조각을 이어가다 보니 연결이 매끄럽지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불렀던 노래 중에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가 있습니다. 그 노래에서도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부터 백두산 반도 삼천리까지 가는 데도 어느 정도의 정연한 연결고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즌 1에서는 그런 연결고리들이 뭉텅뭉텅 빠져버렸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치밀하게 짜인 구성과 인과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야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미 운명 지어진 결말을 향해 착착 이어지지요. 근데 시즌 1은 타이밍이 하나도 안 맞고 툭툭 끊어져버렸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오필리어의 변화된 성격 창조에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육체적 사랑을 원하는 순결하지 않은 오필리어라니! 완전무결한 처녀이자 정숙하고 순결한 영혼을 지녔던 오필리어는 적극적으로 햄릿을 자신의 처소로 이끌어 육체적 관계를 맺고 햄릿의 사랑을 구걸합니다. 아버지와 오빠의 충고도 다 거절하고 사랑에 목숨을 거는 거지요. 너무 뜬금없고 갑작스런 육체적 관계.
정말 더 큰 문제는 타이밍입니다. 타이밍은 구성상의 문제점들을 만들어내고 맙니다. 햄릿이 어머니와 삼촌의 결혼으로 여자에 대한 혐오가 커질 대로 커져 있는 상황에서 오필리어와 어떻게 육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가요? 어머니가 정절을 지키지 않고 삼촌과 결혼한 것 때문에 여자를 혐오하게 되고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다!”라고 절규하며 여자에 대한 혐오가 다시 오필리어에게까지 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남자를 알아버린 순결하지 않은 오필리어가 결국엔 미쳐서 자살하고 만다는 것도 그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 상징성과 비극미도 감소하고 말았고요. 순진한 처녀가 남자에게 순결을 준 뒤 버림받는 이야기는 흔하디흔한 ‘여자의 일생’ 아니었던가요.
원작에서 오필리어는 순결한 상태에서 물속에 빠져 죽었고 그래서 그녀는 그 후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여신으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시즌 1에서 오필리어는 벼랑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순결을 잃고 죽었기 때문에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건 불가능해졌습니다.
햄릿과 오필리어의 첫날밤만큼이나 타이밍이 꽝인 건 유령의 등장입니다. 햄릿과 오필리어가 첫날밤을 가진 뒤 바로 그 침실이라니! 유령님, 아무리 원한에 찬 유령이라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요!
그리고 그 다음에 폴로니우스가 햄릿이 상사병에 걸려서 미친 것이라고 얘기하는 장면은 인과관계가 다 사라져서 설득력 ‘0’이 되고 맙니다.
시즌 1은 원작 『햄릿』의 고뇌와 철학적 물음들을 다 걷어냈습니다. 그 유명한 대사들도 다 빼버렸고요. 들어 있다 하더라도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없게 난도질해버렸고요. 재창작이나 실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경우에도 개연성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너무 대중적으로만 접근하려다 보니 설탕과 조미료를 많이 치게 된 거죠. 햄릿의 독특한 맛이었던 비장미와 비극미가 없어져버렸습니다. 음악에서도 차라리 전체를 록음악으로만 했다면 절규하는 청춘의 햄릿을 그려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평범하고 부드러운 발라드와 클래식함을 더하기 위한 현악연주는 그 절규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자, 이번에는 시즌 2를 살펴보겠습니다. 시즌 2의 연출을 맡은 김광보는 “가장 초점을 맞추었던 부분은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입니다. 햄릿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들의 욕망에 충실함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는 비극을 담은 작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이 말만큼 시즌 2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낸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을 향해 질주했고 그것이 파멸을 몰고 올 것을 알면서도 질주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시즌 2의 가장 큰 미덕은 햄릿 전체의 인과관계를 잘 따져서 요약해내고 재해석한 데 있습니다. 그건 작품 분석이 치밀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대적인 코드인 ‘욕망’을 들여다보고 탐구하고 있습니다. 햄릿뿐 아니라 그 주변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합니다. 그 욕망이 각 인물의 강력한 동인(動因, drive)이 됩니다.
비극미는 한층 더 깊어지기까지 했습니다. 햄릿(김수용 분)과 오필리어(신주연 분)가 함께 부르는 사랑의 테마 「날 데려가주오(Let's rose above this world)」에서 ‘그대여 나에게 와요. 슬픈 맘 지친 몸 그 모습 그대로. 내가 당신 위로하리. 날 데려가줘요. 먼 곳으로 죽음의 그림자 어둠을 넘어서. 우리의 오랜 꿈 이룰 수 있게 또 오르고 올라 천사의 날개 만져요’라는 시적인 가사가 아름답습니다. 그 순간 순수하고 아름다운 오필리어와의 사랑을 통해 상처받았던 햄릿의 영혼이 구원받기 직전까지 갑니다. 육체적인 관계를 갖기 직전까지 가는 것도 개연성이 있고요. 오필리어 역을 맡은 신주연은 오필리어 역에 딱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아하고 높고 맑은 음색을 들려주었고 깨끗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었습니다.
햄릿과 오필리어의 사랑의 테마가 끝나자마자 선왕의 유령이 등장하면서 사랑은 산산이 부서지고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말죠. 오필리어가 순결한 처녀로 남는 것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유령을 만난 이후 햄릿 역을 맡은 김수용이 상체를 벗은 채 절규하며 미친 것처럼 행동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1은 김수용의 재발견이라는 말이 탄생했을 정도로 갈등과 혼란을 분노와 격정으로 뚫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시즌 2에서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온몸으로 부르는 노래의 가사 ‘산다는 건 연극 같아’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절규하는 영혼의 모습을 절도 있게 담아냈습니다. 김수용의 햄릿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이 공연을 보기에 충분하니까요.
이번 시즌 2는 햄릿과 오필리어에만 주목하지 않고 각각의 주변 인물들의 인물 형상화에 공을 들였던 것도 잘 표현됐습니다. 클라우디우스(조유신 분)는 한 여자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과 그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매력적인 남자로 그려졌습니다. 그가 비록 형을 죽인 살인자임에도 불구하고요. 미워만 할 수 없는 입체적인 악당이지요.
그리고 거투르드(강효성 분)가 거울방에서 분열된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며 부르는 「그게 나야(I am untrue)」에서 ‘난 성녀가 아니야. 사랑받고 살고 싶어. 이 몸 산산이 부서지도록’이라는 가사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자신을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거투르드 역을 맡은 강효성은 영혼 밑바닥에서 끄집어낸 것처럼 깊고 진한 음색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목소리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목소리에 마약을 탈 순 없었겠지만 묘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귀가 저절로 끌려갔거든요.
이번 공연에서는 햄릿과 오필리어만이 아니라 나머지 조연들 모두가 풍부한 성량으로 감정을 담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필리어의 친구 헬레나(선영 분) 역시 만만치 않은 포스를 보여주었고요. 다만 햄릿의 친구로 나오는 호라시오(이수철 분)은 너무 인상을 쓰고 있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라앉게 했습니다. 호라시오는 신의가 있는 사려 깊은 친구가 아니었나요? 햄릿과 함께 있을 때 햄릿보다 더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약간 부담스러웠습니다.
시즌 2에서 또한 업그레이된 부분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무대의상과 안무입니다. 모두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고 현대적이면서 시적 은유와 상징들이 잘 담겼습니다. 음악도 귀에 쏙쏙 들어왔고요. 쿵쿵 심장박동소리처럼 들리는 강한 록 음악은 우리의 심장을 정말로 뛰게 만들었습니다. 리듬은 신경계에게 명령했고 수질은 흥분 호르몬을 분비시켰습니다.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번쩍 힘을 얻어 뜨거운 피가 도는 감정 풍부한 살아 있는 인간이 됐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면 사랑에 빠지기 쉽죠. 그래서인가요? 그만 뮤지컬 「햄릿」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자, 벌써부터 다음번 공연될 햄릿을 기다려봅니다. 더 강력하고 매혹적인 작품이 되겠지요. 물론 그건 창작 뮤지컬 「햄릿」일 테고요.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택아트센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