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밤을 사랑합니다. 밤이 긴 계절이나 나라에서는 유독 신화와 전설과 요정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건 밤이 어둡지만 아늑하고 고요하고 신비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밤에 상처받은 마음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리다가든 지쳐 쓰러져서든 무방비 상태로 잠이 듭니다. 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요(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죠?). 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밤은 부드럽게 우리가 낮에 받았던 상처들을 위로해주고 어루만져 주고 통째로 껴안아줍니다.
우리는 늘 기적처럼 아침을 맞고 상처들이 밤새 다 아문 것을 보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때론 밝고 환한 것들이 아닌 낮고 고요하고 어두운 것들이 더 따뜻하고 더 눈물도 많고 그래서 인생의 위로와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마치 뮤지컬이, 더 나아가 예술이 외롭고 지친 우리에게 작은 위로와 힘이 되는 것처럼요.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 오, 인생은 아름다워라!
누구나 이런 말은 한번쯤 들어봤을 거예요.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이 작품은 우리 중 가장 상처받았다면 상처받았을 영혼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낮은 밑바닥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근데 상처란 게 말입니다. 이 작품 안에서 닥터 리(홍희원 분)의 대사처럼 “여긴 환자들이나 봉사자들이나 숨겨진 사연 없으면 간첩”이고 “상처의 깊이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어요. 누구에게나 상처는 너무나 큰” 것입니다. 즉 누구의 상처가 더 크다고 누구의 인생이 더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우니까요. 또한 사람은 사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버릴 수도 없고요. 모든 사랑은 비록 그 사랑이 거절당하고 버림받았다고 여겨질지라도 아름다우니까요. 이 작품은 가장 밑바닥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인생과 그 인생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사랑과 상처들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자, 그럼 도대체 한밤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볼까요? 시간적 배경은 365일 중 가장 행복하고 축복이 넘치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장소는 가톨릭 무료 병원 602호실. 7년째 입원중인 반신불수 다리병신 고집불통 최병호(김정훈 분), 아무데나 똥을 싸는 치매 걸린 할망구 이길례(유정민 분), 전직 고급 콜걸이자 알코올중독자 정숙자(박혜영 분)가 입원해 있습니다.
602호실 환자들은 하나같이 힘세고 드세고 괴팍하고 이기적이고 사고나 치는 사람들입니다. 뭐, 이런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외강내유형이지요. 겉으로 강한 척하고 나쁜 척하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착한 경우가 더 많잖아요.
이 병원에 새로 부임한 베드로 신부(정문성 분)는 모 방송사의 눈물 펑펑 흘리게 할 목적으로 편성된 연말 특집 최루형 휴먼 다큐에 병원을 소개하고 기부금을 받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 휴먼 다큐멘터리의 주요 출연자로 예정된 반신불수 환자 최병호가 사라졌습니다.
병원은 발칵 뒤집혔고 모두들 최병호의 행방을 찾느라 소란스럽습니다. 물론 최병호를 아껴서 찾는 게 아니라 거액의 기부금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방송을 예정대로 진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사라진 최병호의 행방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함께 있던 사람들의 상처가 드러나고 사연이 알려집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있었던 마법 같은 혹은 기적 같은 일들이 하나씩 도미노 게임처럼 연결되고 마침내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딱 맞추어지자 급! 감동이 몰려옵니다. 가슴속에서 감동의 눈물 쭐쭐 흐르는데 기쁨도 함께라 웃음도 까르르 넘칩니다. 그만큼 재미있기도 하거든요.
허름한 무료 병실에서 아무도 찾는 이 없이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인생에 담겨 있던 진심과 사연을 알아나가다 보면 정말이지 모든 인생은 그 우열을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중하고 아름답구나! 하는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가 불쌍해 보이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불쌍해 보이는 누군가가 바로 우리를 도와주는 거라는 것도 알게 되고요.
꽉 찬, 알찬, 잘 만든, 버라이어티한, 감동적인 한국형 종합선물세트 뮤지컬!
이 공연과 관련해서 너무나 많이 알려진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전 정보!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2005년 대학로에서 가장 작은 연우극장에서 초연한 이래 소리 소문 없이 열렬한 충성 고객들을 양산해내더니 그 이듬해인 2006년 뮤지컬 대상(작품상)과 작가상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5차 공연을 했고 2007년 12월부터 오픈런(종영일을 정하지 않은 공연)으로 6차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사․연출을 맡은 장유정은 「김종욱 찾기」「멜로드라마」「형제는 용감했다」를 연이어 히트시키고 있는 현재 가장 촉망받는 작가주의 작가이자 연출가입니다.
이번 6차 공연에서 음악은 드럼과 건반 베이스가 추가되었고 나일론 기타의 비중도 더 높여 화려하고 다이내믹해졌습니다. 멜로디보다 대사 내용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레치타보티보(recitativo) 기법이 많이 사용됐습니다. 특히 아스트로 피아졸리가 확립한 감상을 위한 탱고인 누에보 탱고 기법 접목과 왈츠와 힙합 스윙 재즈가 한 곡에 담아내기, 댄스와 레게와 삼바 등의 다양한 음악 장르 사용하기 등을 통해 인물 감정의 변화와 그 폭을 다양하게 표현해냈습니다. 음악에 맞춰 안무도 탱고, 왈츠, 코믹댄스, 길거리 막춤, 탭댄스 등이 현란하게 입혀졌습니다.
무대 장면 전환은 대극장보다도 더 많았고 속도감이 있어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현재라는 시점에서 각 인물들을 돌아가며 주인공으로 내세워 클로즈업한 뒤 과거의 사연들에 주목하다 보니 장면 전환이 유독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도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저는 밤을 사랑합니다. 저는 오늘밤에도 아무런 대책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쿨쿨 잠을 잘 겁니다. 밤은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하죠. 아주 가끔은 눈을 감고 잠든 척해보세요. 그럼, 서재 속 동화책들 안에서 장난감 병정과 요정들과 난쟁이들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망가진 세상을 고치는 것들을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인생은 그러한 마술 같은 밤들이 있어서 살아볼 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밤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살아갈 힘들을 얻는 거고요.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 열 알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릴 때 잠시 비춰든 따뜻한 햇볕처럼 따뜻하고요. 인생의 비의(秘義)가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인생을 살아도 가끔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땐 다시 한 번 이 공연을 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도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거니까요.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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