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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햄릿', 비극은 깎고 다듬어져 우리와 마주 앉았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의 ‘햄릿’은 지금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 그 힘이 거세다. 400년의 세월동안 전 세계인에 의해 무수하게 포장되고 깎이고 다듬어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에 따라 그 모습이 재해석되곤 한다. 시즌2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락뮤지컬 ‘햄릿’ 또한 그렇다. 햄릿은 더욱 광기를 품었고 더욱 나약해졌다.

시즌 1에 비해 음악과 안무가 많은 부분 변했고 진행이 더 빨라졌으며, 장면과 연출의 일부도 수정되었다. 그런 디테일한 변화가 있었지만 록이 주는 강렬함과 그 강렬함의 빛을 입고 있는 햄릿의 내면은 그대로다. 음악 또한 편곡과 가사, 창법 달리하여 각각 다른 분위기 연출로 사용된다. 이렇듯 노래가 가진 선명한 색은 반복되면서 다양하게 쓰이지만 결국 한 곳을 바라본다. 익숙한 듯 낯선 한 남자, 우리는 여기서 21세기의 햄릿을 다시 만난다.


바람 앞에 촛불, 산다는 건 그런 것

첫 장면, 선왕의 장례식에는 슬픔, 기쁨, 절망, 그리움 이 모든 것이 함께한다. ‘햄릿’이 사무치는 사부곡을 부르는 사이 한 쪽에서는 새로운 왕을 맞이하는 기쁨이 있다. 이들의 서로 다른 시선은 서성거림 없이 치고 나가 보이지 않는 대립을 이룬다. 물론 햄릿이 복수를 위해 선택한 방법은 현시대에서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모든 비극이 그렇듯 그 왜곡된 시선과 갈등의 해결방법이 현시대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저 밑바닥에서 저지르고자하는 비극에 대한 욕망,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일지도 모른다.
‘햄릿’에서도 삶과 죽음과 사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반복된다. 반복이란 겉보기에는 똑같은 동작이지만 실은 언제나 다르다. 그렇게 해결되지 않은 채 죽음으로 사라지는 삶들은 무덤지기의 콧노래가 마무리한다. “산다는 건 최고의 분장, 죽고 나면 다 똑같아”라고.


내면적인 고통의 고영빈 vs 폭발하는 분노의 김수용

작품에서 캐스팅은 작품 전체를 좌지우지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지난 해 ‘바람의 나라’, ‘조지엠 코핸 투나잇’과 ‘벽을뚫는남자’에서 그만의 자연스러움으로 안정된 연기를 펼친 고영빈은 그의 전 작품인 무휼왕과 코핸, 듀티율을 모두 ‘햄릿’안에 담았다. 그가 다혈질에다 연약하고 소심한, 그러나 이 세상 누구보다 고통스러웠을 햄릿의 내면을 표현할 때는 그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한다. 특히 3박자의 간명한 기타 음악과 함께 유랑극단의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햄릿은 오필리어의 무릎에 기대어 극도의 나약한 눈빛을 보인다. 그 햄릿은 고영빈 만이 할 수 있는 햄릿이다.

김수용은 역시 파워풀한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무장했다. 미쳐가는 햄릿의 캐릭터가 그의 탁월한 연기력과 함께 맞아 떨어진다. 특히 기도하고 있는 클라우디우스의 뒤에서 복수의 칼을 들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김수용은 그 극도의 긴장감을 매우 안정되게 그려낸다. 또한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에나 가!’라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나 폴로니우스를 죽이고 미친 듯 웃어대는 그 모습은 비극의 절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하다. 시즌 1에 비해 김수용의 햄릿은 더 강해지고 깊어졌으며 진해졌다. 사람들 앞에서 미친 척 연기하고 무덤지기에게서 유일한 위안을 찾는 햄릿은 김수용이 가진 진중함과 잘 어울린다.


블랙, 화이트 그리고 레드

햄릿의 의상은 분명한 캐릭터의 색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전체적으로 검은 색은 분노와 고통을 나타내며 붉은 색은 비극을 암시하고, 흰색은 행복이다. 오필리어의 흰 원피스, 햄릿의 칼에 죽임을 당하는 폴로니우스의 붉은 블라우스 등 모든 색은 선명한 제 모습을 띄고 있지만 결국 햄릿의 검붉음을 향하고 있다.
햄릿의 가죽의상은 나약한 그들의 얼굴을 비치는 거울 같다. 겉보기에는 강렬한 그 겉치레가 실은 삶의 비루함과 곤혹스러움을 여과 없이 드러내 주는 허공처럼 느껴진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복수’는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1601년경의 작품으로 그 시대 유행했던 복수극중 한 작품이다, 하지만 햄릿이 지금까지도 추앙받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히 복수극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19세기 유행했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인간의 의식 자체를 짚어낸 셰익스피어의 햄릿는 지금 21세기에 와서 더욱 돋보인다.

이번 뮤지컬 ‘햄릿’에서는 뮤지컬만의 캐릭터가 도드라지긴 했지만 시즌 1에 비해 스토리와 캐릭터가 이어지는 설득력은 부족하다. 즉, 비극의 발단이 되는 거투르트 왕비나 중심이 없는 폴로니우스의 심리 묘사까지도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폴로니우스는 햄릿과 클라우디우스 사이에서 무게감을 잃었고 거투르트 또한 왕비 이전에 나약한 여자임이 더 애틋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또한 앙상블이 주는 힘이 약하다. 극의 전반적인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것은 주조연의 배우들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짜임새를 이루는 것은 앙상블이다. 특히 합창과 군무신은 더 밀도 있는 구성과 앙상블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비극은 누구의 잘못인가?

우리는 늘 과거를 짊어지고 산다. 그 과거가 마치 방금 일어난 것처럼 소란을 떨지만 사실 소란 그 자체가 우리의 안녕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햄릿에게 느낀 것은 그것이다. 끊임없는 의심과 부정으로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햄릿은 그만의 고통으로 관객의 이해를 사지만 그 점은 햄릿을 위한 변명이 될 수 없다. 햄릿뿐 아니라 모두가 비극의 주인공이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잘잘 못을 따질 자격이 없다. 그래서 극 중 호라시오가 친구인 햄릿에게 말한다. “친구! 인생에 답은 없어”라고.
결국 모두가 죽고 말았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누구도 죽은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 ‘인생이란 연극 같다’며 호탕한 웃음을 보일 것만 같다.


공정임 기자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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