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 동안 우리들은 사막을 건너는 낙타와 같다. 건조하고 메마른 일상을 돌고 돌면서 무의식은 조용한 소리로 웅크린다. 그러다 문득 퇴근길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노크가 들린다. 빗소리는 점점 세어지며 굳어있던 마음을 주무르고 말랑 말랑해진 마음 사이로 젖은 안개 같은 기억이 유리창에 서린다.
우리는 마음이 젖어든다고 표현을 한다. 하얀 종이에 물감이 스며드는 것처럼 번진다는 것, 어디든지 닿을 수 있다는 것, 갈라지고 터진 마음이 적셔주는 치유의 시간이다.
비가 닿으면 먼지가 쌓여 제 빛을 내지 못하는 마음들이 먼지를 털어내고 제 색깔을 찾는다. 선명하고 아름다웠던 처음의 색깔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비가 내리는 시간은 잠시 우리에게 마법을 걸어준다. 그 순간 동안 잠시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 호흡을 고르듯 메마른 가슴에 촉촉한 빗물을 선사하는 공연, “ 사랑은 비를 타고” 를 지금부터 들여다보자.
날이 선 마음을 껴안는 핑크색 부드러움
극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는 추적추적 빗소리가 들리고 빗줄기가 실제로 무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며 비가 내리는 공간을 관객에게 인지 시킨다. 관객은 어느새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핑크색벽지로 꾸며진 한 가정을 배경으로 감정을 이입하기 시작한다. 물은 언제나 모성을 상징하듯 비가 흥건하게 내리는 도시에 한 남자는 어머니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식구들을 기다린다. 자신은 독신이면서 시집 간 여동생을 자식처럼 챙기는 그는 여동생의 야한 속옷을 스스럼없이 접고, 7년 만에 찾아온 남동생에게도 핑크색 잠옷을 입혀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비가 우연히 창문을 노크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연히 찾아든 그의 남동생은 한 눈에도 야성적인 느낌을 풍기며 형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 7년 동안 바다를 떠돌면서 “나는 잘 있어” 라는 짧은 한마디만을 엽서에 적어 보내던 그는 한 손에는 검은 장갑을 들고 꽤 두툼한 현금 뭉치, 그리고 칼을 가지고 온다. 핑크빛의 여성성으로 비유되는 형과는 반대되는 동생은 오래전 형의 순정적인 희생이 싫어 형의 울타리를 벗어난 반항적 캐릭터다. 하지만 지금, 형과 동생은 조금씩 빗물로 인해 씻겨나가는 먼지 낀 마음들을 서로에게 드러내고 이해받고, 용서를 구하기 시작한다. 긴장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무대를 지배하던 핑크빛 온화한 평화가 음악과 함께 점점 감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행복한 삼각형 구도
서로가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한다는 말처럼 밑변에 존재하는 꼭지 점이 완전한 삼각을 이루기 위해서 그 둘을 초월한 꼭지 점이 있어야 한다. 극에서도 그러한 존재가 등장한다. 바로 집을 잘못 찾아 이벤트를 여는 바람에 8시간 만에 해고 된 발랄한 22살의 여자 유미리. 그녀는 등장부터 요란한 몸짓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짧은 미니스커트와 탑을 입고 행복한 마법사처럼 형과 동생을 이어주는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유미리를 연기한 배우의 목소리는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노래가 시작될 때 그녀가 가진 하이 톤의 음역과 긍정적인 에너지는 주어진 캐릭터를 연기한다기보다는 배우 김소향이 가진 내력인 듯했다. 극중 유미리는 형과 동생을 이어주는 부드러운 빗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스타카토 식으로 떨어지는 경쾌한 빗방울처럼 따끔하게 두 사람을 일깨우는 팔방미인 역할을 맡는다.
갈등과 화해 사이, 아쉬운 디테일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는 관객들에게 신뢰감을 주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갈등이 섬세하게 고조되지 못하고 쉽게 화해로 끝을 맺는 장면이었다. 형과 동생이 서로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는 것은 바로 피아노 연주. 배를 타다 사고로 신경이 끊어진 동생과 말초신경이 마비되어 음악을 하기가 힘들게 된 형은 서툴게 거실에 마주보고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효과음이 아닌 배우들의 실제 연주음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좋았지만 상반되는 캐릭터의 특징을 살려서 자잘한 갈등을 좀 더 세부적으로 건드려 주었다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사.비.타”는 따듯하고 훈훈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시선을 가진 공연이다. 빗물이 쓸고 간 거리를 걷는 것처럼 상쾌한 공기를 채워주는 '사랑을 비를 타고'.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강현진 aldur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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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아트센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