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돈이다’라는 말을 믿는가? 아마 학창시절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듣던 잔소리가 아니었나 싶다. 어른이 된 지금도 ‘시간’에 대한 각자가 느끼는 속도감과 가치는 다 다를 것이다. ‘시간’은 사회적 지위와 나이, 성별, 인종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것은 아니다.
여기, 시간을 팔겠다는 사람이 있다. 이 ‘김씨’의 말도 안 되는 억지는 ‘봉이 김선달’을 능가하지만 그는 조금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결국 시간과 돈은 결코 같아질 수 없었다.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베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시간을 파는 남자’는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야심찬 신작으로 판소리와 국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주 감각적이며 현대적이다. 패기 넘치는 젊은 국악인들의 이 작품을 단지 ‘퓨전’이라는 단어로 다 채울 수 없다.
움직임으로 ‘요점정리’된 이미지
‘시간을 파는 남자’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움직임’이다. 풍자와 익살을 지니고 있으며 무척 새롭다. 또각또각 타자치는 소리, 복잡한 만원버스, 적두개미떼, 사무실에서의 등을 맞댄 직장인 등 그 상황과 집단의 특징을 요점만 정리하여 캐리커처(caricature)를 그린 듯하다.
또한 배우들의 움직임과 동선에 대한 열띤 탐구를 엿볼 수 있다. 6명의 배우들은 모두 여러 개의 캐릭터를 소화한다. 극 초반에 각인되기 쉬운 배우의 이미지를 없앤 후, 점점 다양한 캐릭터를 새로 입힌다. 물론, 소품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캐릭터에 대한 특징은 동작과 표정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배우들은 그것을 표현하는 힘이 강하다.
이들의 과장된 표현은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는 작품의 특성상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판소리 뮤지컬이라는 점을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다른 작품들과 차별된다. 작품에서 몸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사와 표정으로만 극을 전달하려는 한국에서는 더 그렇다. 극 전달에만 급급하다면 작품은 관객을 뒤쫓아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관객의 인지가 빠르고 그 의미가 정확히 전달된다.
온갖 상상력의 집결, 소품이 드라마를 안고 있다
엉뚱한 곳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다름 아닌 톡톡 튀는 소품이다. 거의 모든 것이 종이로 만들어진 소품들 또한 캐릭터의 표현에 맞물려 이루어지지만 이들의 소소한 아이디어는 작품을 더욱 완성도 있도록 해 준다. 통일감을 가진 그들의 미술적 감각은 음악과 극과 유기적으로 엮여있다. 이들이 주로 사용한 소품은 ‘모자’다. 그 캐릭터의 특징을 담은 모자를 썼다. 또한 아내, 정신과 의사, 공장, 특허청, 상공회의소, 대통령 등 그 집단을 표현하는 소품은 관객의 상상력을 시험한다. 그 엉뚱한 기발함이 돋보인다.
타루의 국악, 우리가 알고 있던 국악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쓰인 국악기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악기들이 아니다. 시계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슬로모션 등 애니메이션 같은 사실적이고 통통 튀는 음향은 국악이 아니면 맛볼 수 없다. 카르멘의 탱고음악을 해금의 간명하고 간드러진 음색으로 들으니 장난기 가득한 애니메이션 같다. 또한 ‘사랑’, ‘인내심’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와 국악기의 음색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특히 중요단어는 리듬과 강약을 담아 반복시키며 통일감을 지닌다. 국악기를 사용한 극 표현은 창의적이며 관객이나 배우들이 가지는 그 상상력은 커진다.
판소리 또한 그렇다. 음색과 조화에 있어 신선한 느낌은 국악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롭다. 국악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고 리듬과 화성은 진화하였다. 창법에서도 가사전달을 위해 과장된 감정 표현을 과감히 절제하고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음색과 리듬을 보인다. 하지만 가사의 전달은 합창부분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판소리 특유의 시원한 음색은 잃지 않았다. 극 중 도창자의 등장이나, 밴드의 추임새, 객석과 무대의 수평적 구조 등은 기존 전통의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이들의 국악은 재즈의 화성과 로큰롤의 리듬을 가졌다. 일렉트릭 베이스와 콘트라베이스의 사용으로 이들의 음악적 표현은 더욱 힘을 싣는다. 재즈의 로큰롤 리듬은 국악의 장단과 의외의 어울림을 보인다. 베이스의 음색과 움직임은 반복, 강약, 빠르기, 도약 등으로 극의 진행과 분위기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짜임새가 밀도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
판소리와 음악과 표현의 창의력의 실력은 기대 이상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노래와 대사의 그 접점을 찾지 못한 듯 하다. 극예술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연기력과 함께 타이밍이다. 즉, 이것은 공간과 시간의 호흡인데 배우와 관객, 배우와 밴드, 배우와 배우, 배우와 소품, 씬과 씬 사이의 유기성을 말한다. 구성진 판소리 가락을 들을 때면 극에 쉽게 동화되다가도 그 다음 씬으로 넘어가는 사이 관객들과의 호흡은 힘을 잃는다. 밴드가 극의 진행에 참여하는 것은 무척 친근하지만 그 부분 또한 역시 치고 빠지는 포인트를 잃어 어색하다. 0.1초의 차이가 작품 전체에 대해 말할 수도 있다.
때문에 관객들의 극에 대한 이해가 먼저인 작품의 초반에는 집중하기 힘들다. 이동무대도 적절한 효과를 보았으나 다른 소품에 비해 디테일한 부분에서 아쉬운 면을 보인다.
“여기서 뭐해!! 시간 없는데..”
‘김씨’가 5분의 시간을 팔기 시작하자 소소한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갔다. 하지만 그 소소했던 기적은 인간의 욕심을 함께 가져 왔다. ‘5분의 자유’는 결국 ‘35년의 허송세월’을 만들었고 개개인의 욕심은 그 본모습을 드러낸다.
돈의 가치가 하락하니 시간의 가치도 하락했다. 이 ‘색감 좋은 동화’는 진정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김씨’의 그 ‘간단한 사업’은 혼란을 몰고 왔지만 그의 해결책 또한 간단했다. 그 안에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날카로운 가치가 숨어있다. ‘김씨’의 인생일대의 꿈이었던 ‘적두개미연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던 날 그도 깨달았을 것이다. 시간은 지금도 누구에게나 공평히 흐르고 있고 인생은 그렇기에 더욱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만약에 정말로 시간을 판다면 당신은 사겠는가? 나는 정중히 거절하겠다.
공정임기자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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