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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느끼는 일상의 정서는 무엇일까? 오늘 하루를 보내며 서로에게 총을 쏘거나, 자살하거나 사랑의 열렬한 맹세를 하지는 않았나? 매순간 현명한 언행과 진지한 사유로 온 하루를 말끔히 정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일상은 ‘연극적’이지 않다. 무대 안과 밖의 괴리는 점점 멀어지며 그 정서는 너무 넘치거나 혹은 왜곡될 뿐, 일상의 잔잔한 평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늘 체홉을 본다. “삶의 일상적 흐름 속에서 본질적으로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을 때에 삶의 완성된 드라마를 보았다”는 희대의 극작가가 있었다. 그의 작품 중 최고의 완숙미를 자랑하는 연극 ‘벚꽃 동산’이 친숙한 일상의 정서를 가득 안고 우리 곁을 다시 찾아왔다.
일상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에는 우선 ‘웃음’이 있다. 연극, ‘벚꽃 동산’은 극이 진지함, 엄숙함, 갈등의 최고조 등의 영역에 이르는 것을 철저하게 막는다. 체홉은 실제에 가까운 극중 인물을 창조하고자 고심했으며 일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과 동시에 코믹한 인물을 등장시켜 희곡의 극적 효과를 얻고 있다. 이는 무리한 번안보다는 원작에 충실하려 했던 구태환 연출의 ‘벚꽃 동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씀씀이가 헤퍼 빚에 내몰린 채 벚꽃동산을 경매에 넘겨야 하는 라네프스카야의 두 딸 아냐와 바랴는 수중에 돈이 없는 것에 대해, 몇 달 뒤에는 벚꽃 동산이 팔리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한다. 무거운 표정과 우울한 톤의 대사들 일색인 이 장면은 로파힌의 “음매애~”하는 소 울음소리와 함께 갑작스런 분위기 전환을 맞게 되고 다시 일상의 웃음과 평화의 세계로 회귀하게 된다. 이외에도 트로피모프와 라네프스카야가 심한 언쟁 후 트로피모프가 분노하여 뛰쳐나가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장면 역시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갈등상태를 웃음으로 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가예프의 진지한 성격과 현학적인 언변술을 한낱 조롱거리로 취급하는 일가족들의 양상도 웃음과 함께 그들이 가진 삶의 양상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라네프스카야 일가의 삶을 더욱 친숙하게 느낄 수 있었던 계기는 탁월한 무대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직접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진 않지만, 막이 바뀔수록 전환되는 원본에 충실한 무대는 감탄을 자아냈으며 본래 희곡이 가지고 있는 서정적인 일상의 정서들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냈다. 벚꽃 나무들의 형상을 실제로 무대 배경에 세우고, 그 뒤로 벚꽃 나무의 벽화를 추가하여 입체감을 더했다. 1막은 그러한 벚꽃 동산 앞에 사각액자틀 형식의 대형 구조물을 놓아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였으며 자그마한 식탁과 의자, 오래된 책장, 말모양의 장난감 등을 배치해 ‘아기방’을 꾸몄다. 이 방은 라네프스카야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방으로 자신의 행복하고 순수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매개가 된다. 공들인 무대는 라네프스카야의 과거에 대한 애상적 그리움에 관객이 동참하는 일을 수월하게 만들었으며 각각의 등장인물에게 또는 관객들 그 자신에게 벚꽃 동산이 의미하는 바를 고민케 하는 동기가 된다. 2막의 무대를 보면 기존의 벚꽃 동산 배경 하에 야외의 쓸쓸한 정경을 느낄 수 있다. 세월을 흔적이 감지되는 우물과 낡은 벤치, 앙상한 벚꽃 나무들은 라네프스카야 일가를 포함한 옛 것들이 몰락할 것을 암시하며 스러져 가는 대상들이 가진 황폐함과 쓸쓸함의 정서를 풍겨낸다. 차곡차곡 쌓여진 삶의 편린들이 이루어낸 시간의 위력을 은연중에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이는 2막에 차분하고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황색계열의 지배적인 조명과 함께 강화된다. 폭발시키고 뿜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잘 제어해 내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원작의 미덕을 오롯이 살리며 그 해답을 찾은 연극, ‘벚꽃 동산’,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임이 분명하다.
이정완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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