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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와 음악이 함께, 극 속에 녹아들다. 박정자의 뮤지컬 ‘19 그리고 80’

 

이 뮤지컬을 볼 때, 가장 귀에 쏙 들어오는 단어가 ‘유기농’이다. 요즘 저마다 몸에 좋다면 비싸더라도 우리는 사먹는 것이 유기농 음식이 아닌가? ‘모드’는 술, 담배, 나까지 모두 유기농이라고 말한다. 뭐가 유기농일까? ‘모드’가 죽는 그 순간까지 유기농을 찾고 있는 유기농 뮤지컬은 어떤 뮤지컬일까?

- 순수한 사랑, 플라토닉 러브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살며시 생기는 그런 사랑, ‘모드’와 ‘해롤드’의 사랑이 아닐까? 늘 말썽을 피는 ‘해롤드’, 목을 매고 총을 쏘고 학교 실험실에 불을 내는 그는 늘 죽음을 좋아하고 장례식 가는 것도 즐기는 괴짜이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드나드는 ‘모드’를 만나 인연을 맺는다. ‘해롤드’의 엄마는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여 아들의 결혼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는 매번 자살 소동으로 엄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그런 ‘해롤드’가 갑자기 80세 할머니 ‘모드’와 결혼하겠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과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해롤드’는 그 때만큼은 활기차고 밝은 모습이다. ‘모드’는 그저 한 그루의 나무를 키우듯 ‘해롤드’를 대한다. 그녀는 조심스레 심어놓은 나무(해롤드)가 잘 자라길 바라며 그런 ‘모드’를 보며 ‘해롤드’는 점점 인생의 깊은 의미와 사랑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다.

- “넌 내가 키운 나무야”
‘모드’는 한 마디 한 마디 말로 ‘해롤드’를 점점 자라게 했다. 80평생을 살아오면서 그녀가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그냥 옆에서 이야기해줬을 뿐인데, 그것을 받아먹은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모드’는 사람이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중에 가장 어렵다고 하는 숟가락을 가지고 춤을 추며 ‘해롤드’와 함께 흥겨운 시간을 보냈으며, 유기농 샴페인, 유기농 담배도 ‘해롤드’와 함께 나눈다. ‘모드’는 ‘해롤드’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반지도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한 채 죽음이라는 다음 단계를 위해 이렇게 하나 둘씩 정리해 가고 있었다.

- 대사와 노래가 함께
전체적 음악 구성이 복잡하지는 않다. 하지만 조금은 특별하다. 멜로디와 악기가 함께 움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곡의 진행이 일반적이지도 않다. 그래도 전혀 낯설지 않음은 왜일까? 마치 이 뮤지컬이 특별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에 잘 와 닿는 것처럼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불협화음이 늘 나타나고 악기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멜로디도 귀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독특하다고나 할까? 특히 점음표와 쉼표로 이루어진 불협화음은 무언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해 주는 것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아니었다. 이렇듯 음악은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은 채 중도를 지키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리듬과 멜로디는 굉장히 간결하고 가벼웠다. 프레이즈가 길었다면 무거울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기에 훨씬 돋보였다. 이 뮤지컬은 대사 끝 노래 시작이 아닌 것도 큰 장점이었다. 아마 배우들의 연기력도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모드’의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가면 어느새 클라리넷의 선율이 들어와 있고, 가끔은 노래를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렇듯 대사와 노래는 함께 공존하며 관객을 때로는 흥겹게, 때로는 진지하게 이끌었다.

- 위대한 배우 박정자와 함께 한 그들
정말 이 뮤지컬은 이 시대에 필요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모드’역할의 박정자는 그녀가 가진 인생의 깊이를 더하여 그 역할을 소화했으며 그랬기에 아마 이 뮤지컬이 더 관객들에게 깊이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뮤지컬이 전해 주는 진중함은 1인 다역으로 출연하는 이건명, 배해선의 역할 때문에 조금은 가볍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더할 나위없는 연기력과 노련함으로 그들의 역할들을 잘 소화했으며, 이 역할이 주는 코믹함은 극 전체를 무겁지 않게 해 주었다. 이런 코믹함이 어쩌면 이런 진중한 분위기를 어지럽히고 집중력을 흩Em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배우의 연기가 지나치지 않고 적절했기에 오히려 코믹적인 요소들이 극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고 할 수 있다.

- “이제 나가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해줘”
겉으로 보기에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모드’는 전쟁 중에 가족 모두를 잃었다. 사진이 없는 사진틀을 보아도 그 사람들이 보일만큼 계속 사진틀을 간직하고 있는 그녀였다. 겹겹이 살아온 세월만큼 ‘모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많은 것을 ‘해롤드’와 우리에게 주었다. 그녀는 24시간을 30시간처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냥 잠시 쉬어가는 게 어떠냐고 한다. 자유주의자이고 무소유주의적인 ‘모드’는 세상에 임자가 어디 있냐며 그냥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우리는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때로는 표출하고 우리의 감정을 나눠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해롤드’가 ‘모드’를 사랑한 것처럼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모드’는 말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태양아래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나무그늘이 될 수 있는 휴식 같은 뮤지컬, ‘19 그리고 80’이다.


백수진 기자 psj12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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