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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WHO?’, 당신이 기억하는 것이 전부 진실인가요?

 

세 남자의 낮은 외침, 뮤지컬 ‘WHO?’는 국내 창작뮤지컬로는 유일무이한 미스터리 심리극으로 자기 색깔이 분명한 남문철, 이훈진, 최재웅 이 세 배우만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기억상실이라는 흔한 소재로 선과 악, 진실과 거짓, 그리움과 증오의 본 모습을 치밀하게 파헤친다. 인간의 밑바닥 본성을 건드리는 미스터리 뮤지컬 ‘WHO?'이다.

기억, 기억, 기억.....어두울수록 빛나는 당신의 기억
사실 이 작품은 간결한 인물구조다. 기억을 잃은 한 남자(재우)와 그 기억을 되찾으려는 남자(호영), 이 두 남자 사이의 또 다른 한 남자(준서), 그리고 이들이 모두 찾고 있는 한 여자(진희)가 전부다.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는 그리 신선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매우 독특하고 세밀하게 그려 내고 있다. 결국, 그 끝에 ‘재우’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드러난다.

짙은 청록색을 띤 음악
외로운 피아노가 전부다. 하지만 간결한 멜로디라인에 비해 화려한 화성진행과 낮은음에서 이루어지는 빠른 싱코페이션(syncopation, 당김음) 리듬은 매우 새롭다. 전반적으로 음악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이 연극적인 성향이 강한 탓에 음악의 간결함은 오히려 무채색의 화려함으로 다가온다.
피아노 반주는 멜로디라인과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타악적 움직임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특히 극의 초반, 조심스럽던 피아노 반주는 극의 중 후반으로 갈수록 역동성을 띤다. 인물의 감정이 몰아칠 때는 저음의 빠른 도약과 리드미컬한 진행으로 음악이 쏟아내는 분노가 극에 달한다. 이는 작품의 드라마틱한 연출과 맞닿아 있다.
피아노는 저음에서 같은 음이 반복되는 진행이 많다. 이 반복은 강약이 감각적으로 조절되어 지루함을 피해가며 이들의 기억처럼 어둡고 차갑게 느껴진다.
대사와 노래의 연결이 자연스럽다. 배우들은 노래의 음정을 짚어 간다는 느낌 보다는 훑어간다는 느낌이다. 대사하듯 노래하고 대사하듯 움직인다.
극에 충실한 음악이다. 하지만 극과 대등함을 보인다. 결코 앞서가지도 뒤처지지도 않는다. 가장 음악적 효과가 도드라졌던 부분은 장박사의 솔로곡 장면인데(인간을 실험하는 본인 연구의 타당성을 노래함) 처음 시작은 그의 평온한 여유로움과 외로움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되나 나중에는 장박사의 이기심을 드러내면서 매우 불안정한 화음으로 난데없이 끝난다. 이 장면처럼 대부분의 음악은 작가의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다.

극 초반, 땀을 흘리는 ‘치밀함’
극의 초반에 작품을 읽으려는 관객들이 안정감을 찾기 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린다. 특히 ‘재우’의 고통스런 내면을 인지시키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여 서두가 길다는 느낌을 받는다. 배우의 동선과 액션이 그리고 음악의 간결함이 한 씬에 함께 드러날 때는 지나친 간결함이 무대를 다소 비어보이게 했다. 배우들의 대사나 노래만으로 꽉 차있는 긴장감을 표현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온다. 그리고,
‘재우’의 잃어버린 기억은 ‘빛’으로 표현된다. 감옥의 문이 열리고 빛을 따라 다시 칠흑 같은 일상 속에 던져진 그에게 ‘빛’이란 단순히 ‘밝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의 '빛'은 파닥거리는 형광등 같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이 무형(無形)의 존재는 따뜻함보다는 사나워진 빛이 되어 이 세 남자의 심장을 찌른다. 그 암울한 빛의 건조함이 그들을 더욱 몰아세운다.

진실로 이들이 비(非)정상이라 할 수 있는가?
여기 이 세 명의 남자는 놀랄 만큼의 '솔직한' 눈빛과 목소리를 지녔다. 즉, 분명한 캐릭터는 배우들이 가진 개성과 결합되면서 최적의 만남을 보인다. 게다가 등장하지 않는 제 3의 인물들 또한 관객들의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준서’, 현실을 부정하는 ‘재우’, 자신이 곧 현실이라는 ‘장박사’, 이들은 모두 '일반적임'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은 인간의 대중적 본성을 그려내고 있다. 단지 극대화되어 표현되어졌을 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나태와 부정(不淨), 의심, 자만, 가식, 이기심 등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향을 모두 드러낸다. 물론 그것은 작품이 다 끝난 후에야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이 작품이 결코 소수 마니아들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무대 아래로 흐르는 인간들의 차갑고 보편적인 일상이 머리로 느껴진다.

자, 그렇다면 이 작품이 현 시대에 던지는 것은?
우선, 실험적이고 독특한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두 손 들고 진심으로 환영한다. 의식 있는 크리에이터와 스태프, 그리고 역량 있는 배우들이 땀 흘려 만들어낸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에는 단지 사회적인 메시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뮤지컬과 연극의 장르적 혼돈이 생길 수도 있는 극 전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왜 뮤지컬이어야 하는지’를 매우 절묘하게 드러낸다. 단지, 치밀한 시나리오에 비해 극 초반 관객들이 몰입하기 힘든 요소들이 있어 다소 아쉬움을 남겼지만 파동(波動)을 남기는 이들의 첫 발걸음은 매우 성공적이다.
만약, 당신이 이 작품 마지막의 기막힌 반전을 미리 알아버렸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기억한다’의 기억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기억이란, 세상에 존재한 모든 것을 말한다. 인간은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기에 어떤 물음에도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진실이라 믿고 있는) 나의 기억에게 갑작스런 단절을 느끼는 순간 느끼게 될 것이다. 인생은 잊고, 또 그만큼 잊힌 채 살아가는 것임을.
번짐과 스밈, 거짓 푸르름, 흥얼댐, 입체적임, 건조한 나무질감, 간결함, 진실의 진창, 흩뿌려진 어둠, 이 모든 수식어가 어울리는 작품, 뮤지컬 ‘WHO?'이다.


공연일_1월 17일 이다 2관
연출_최중민
cast 장호영박사 역_ 남문철, 강재우 역_최재웅, 한준서 역_이훈진
제작_이다엔터테인먼트


공정임 기자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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