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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남자와 다수의 여자. 그 관계가 매우 궁금해지는 뮤지컬 ‘나인’이 시작됐다.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황정민이 출연하여 더욱 궁금해지는 뮤지컬이기도 하다. 22일, 뮤지컬 ‘나인’의 시작을 관객석에서 함께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매우 흐뭇한 일이었다.
공연이 끝나갈 즈음의 공연은 익숙해진 배우들의 노련함을 즐길 수 있지만, 첫 공연은 긴장감이라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이날의 공연은 배우도, 스텝도, 관객들도 모두 무사히 공연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반숙의 공연을 반기는 사람들은 많지는 않겠으나, 공연이 무사히 끝난 후 뿌듯함과 공허함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배우들의 감정과 같지 않을까?
-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수 ‘9’ 누구나 그렇듯이 모든 건 자신에게 달려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아주 쉬운 결론이다. 9라는 숫자는 10에서는 하나 부족하나, 한 자리 숫자로는 가장 큰 수이다. 결국 9(나인)는 귀도 자신을 의미 한다. 스스로를 외롭다 여겼던, 누군가 필요하다 생각했지만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만 하는 주인공 귀도를 뜻하는 것이다. 귀도라는 인물은 어떠한 사람인가? 그가 가진 어릴 적 상처는 일종의 피해망상증이 아닐까? 그는 그저 영화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미치광이 예술가일 뿐일지도 모른다.
- 혹시 남자들을 위한 판타지? 한 남자 주변에 셀 수 없이 많은 여자들이 있고, 그녀들은 한 남자를 애타게 원하고 있다. 이 어찌 남성을 위한 성적 판타지라 할 수 없겠는가? 게다가 그 여인들의 캐릭터도 다양하다. 섹시하며,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자신의 외도까지도 이해해 주는 엄마와 같은 존재.... 아마도 페미니스트라면 상당히 불쾌해 마땅한 설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속은 또 다르다. 귀도는 마치 여자의 노예처럼 보인다. 몸은 40세이지만 머리는 9세 꼬마인 귀도는 쉴 새 없이 자신을 불러대는 여자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는 그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안절부절 못하는 처량한 남자에 불과하다. 결국 여자 좋아하는 한 남성의 판타지는 너무도 그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시달리는 현실적 난관에 부딪친다.
- 현실과 이상. 그 경계에 선 배우 많은 여성 틈에 둘러싸인 귀도 役의 황정민의 연기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볼거리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연기력이야 정평이 나 있는 그이지만, 눈앞에서 확인하기는 흔한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부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강아지 손을 하며 베니스로 떠나자고 조르는 모습은 정말 흔한 광경이 아니다. 그러나 귀도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연기뿐이 아니지 않는가? 그의 가창력은 역시나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연기만큼이나 대극장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느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귀도의 부인 루이자 役의 김선영 배우에 대해서는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 해 뮤지컬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모두 꿰찬 김선영의 파워는 어디로 갔는지 무대 위에는 심심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만이 존재했다. 루이자는 ‘나인’에서 유일한 현실적인 여성인데, 환상 같은 여인 칼라에게 가려져 그저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려져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칼라 役의 정선아는 무대에서 강한 임팩트를 발산한다. 우리나라에서 칼라 역할을 그리 능청스럽게 잘해내는 여배우가 몇이나 있을까 싶다. 통쾌함을 가져다주었던 그녀의 활약이 무대에 활기를 띠게 했다.
- 화려하려면 확실하게... 대극장이라 하면 화려함을 빼놓을 수 없다. 공간을 채워주는 무언가가 없다면 그 넓은 곳은 낭비에 불과하다. 일단 ‘나인’의 무대세트는 시각적인 만족을 채워준다. 천사가 그려진 분수와 길게 내려뜨린 커튼, 그 위로 보이는 나비 문양은 제법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무대가 가진 색채는 귀도의 환상만큼이나 몽환적이다. 또 귀도의 어린 날과 현재가 교차하는 연출 또한 빈 공간이 없다. 특히 귀도의 아픔이 있던 성당 장면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장면의 연결성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귀도와 꼬마 귀도와의 결합은 그제야 귀도를 이해하게 되어 조용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그러나 화려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앙상블은 의아스러움을 남겼다.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인형 같은 외모를 한 여인들은 도대체 무용수인지 가수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정확히 그 어느 것도 완벽하다 말할 수 없다. 무릎조차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발레를 하고,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넘버는 그녀들의 존재 이유를 불명확하게 만든다.
- “이것도 내 영화의 일부인가요?” 어쨌거나 많은 여자와 사랑을 나누지만 귀도는 진실한 사람이다. 그는 한 여자를 대할 때만큼은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저 그 여자의 수가 많을 뿐이다. 그러나 온전히 그를 가질 수 없는 여자들은 언제나 외롭다. 결국 자신을 떠나려는 여자들로 인해 귀도는 자신의 고질병을 치유하기 시작한다. 간단히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것도 내 영화의 일부인가요? 영화 소재로는 나쁘지 않았어요.” 라고 던지는 그의 말은 조금은 서글프게 들려온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인생보다 영화를 더 사랑한 것은 아닌지... 그에게 이해라는 것이 시작된 후, 드디어 성장한 그의 성공이 무엇보다 관객들을 뿌듯하게 했다.
공연일자 : 2008.01.22. 공연장 : LG아트센터 제작 : ㈜오디뮤지컬컴퍼니, CJ엔터테인먼트 캐스트 : 황정민, 김선영, 정선아, 양소민 외
김유리 기자 yuri40021@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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