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프루프’는 한 천재 수학자와 그의 딸에 대한 이야기다. ‘수학’을 소재로 두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 작품은 ‘골치 아픈 수학’이 아니라, 살고자 몸부림치는 삶의 ‘갈등과 치유’를 이야기 한다. 이들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들은, 낡고 헌 책의 표지를 살피듯 조심스러운 듯 성큼성큼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프루프는 현재와 과거, 환상과 실재를 소극장 무대에서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이 작품에서 과거를 지나 현재에 서서 미래를 향해가는 ‘시간’의 의미는 무의미해 보인다. 차가운 무대와 인물들의 무거운 대화에도 불구하고 진중함과 유머 그 중간을 잘 찾는다.
‘수학’이라는 소재에 관객들은 먼저 눈부터 찔끔 감아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 작품은 ‘수학의 고단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인간적이다. 차가웠던 캐서린(서은경) 마음의 빗장이 너무나도 쉽게 열리는 순간, 천재 수학자 로버트(남명렬)의 어처구니없는 농담, 헤럴드(정원조)의 어수룩한 말투와 행동, 이 모든 것이 관객에게 친근하다. 즉, 그들과 우리는 아주 가까이 있다.
수학 천재인 로버트, 그의 딸 캐서린과 클레어(이경선), 그리고 헤럴드. 이들은 각자의 삶의 방식에 대한 정당성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물론 누구하나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모두 다 잘못되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너의 주장에 대해 증명해 보라”며 다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혹은 그 반대로) 안간힘을 쓰는 내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피곤한 시대에 살고 있다.
때문에 “수학자들은 다 미치광이!”라는 클레어의 대사는 왠지 슬프다. 그녀는 천재 수학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를 잃었고, 남은 동생 캐서린마저 잃을까 전전긍긍한다. 차갑던 이성 아래에 그녀가 묻어 두었던 아픔이 보인다. 물론 캐서린은 언니의 그 끊임없는 의심이 미치도록 싫다. 게다가 믿었던 헤럴드마저 자신을 의심하자 그녀는 절망한다. 그리고는 곧 모두를 포기한다. 이들이 갖고자 한 ‘증명’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자신들이 무엇을 증명해 보이려고 그렇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 것일까. 그들은 모두다 그 목적을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
완벽할 것 같지만 남은 ‘1’만큼의 아쉬움이 너무나도 간절한, 캐서린 그녀의 숫자는 ‘9’다. 전부 다 가진 것 같지만 마지막 남은 ‘1’의 빈틈이 두려운 삶, 바로 천재들의 삶이다. 하지만 물론 천재가 아니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삶이 지닌 복잡한 공식은 풀린다. 물론 언제나 끝이 맞아떨어지는 수학 공식은 실제 우리 인생과 크게 다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접근, 그리고 (진부하긴 하지만) 명석한 결론이 내려졌다. 언제나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아마 많은 관객들 또한 자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연극 프루프는 매우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겨울을 앞둔 늦가을 사람들의 기분 같다. 아직 오지도 않은 겨울이 무척 두려운 그 늦가을 말이다. 이 작품은 천재 과학자인 주인공의 삶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가족 혹은 친구 간의 이해와 위로를 담고 있다. 차가운 이성을 지닌 사람들의 뜨거운 감성을 부르는 연극 프루프, 우리 삶은 그렇게 늘 뜨겁다는 것을 알려준다.
공정임 kong24@hanmail.net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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