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광주’는 다양한 양식을 빌어 우리 앞에 재현되고 있는 서사의 원천들 중 하나이다. 역량 있는 작가 최치언의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또한 당시 광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니, 하고 있지 않다. 허장세를 비롯한 3인의 보험사기단을 주축으로 하는 서사는 절정에서 비켜 서 있다. 직접적으로 당시의 슬픔과 허무에 대하여 논하지 않고 작고 비루한 인물과 그들의 삶을 정면에 부각시켜 모든 것을 아우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거대서사의 힘이 미약해지고 있는 현재의 실상에 알맞은 서사양식이며 이에 관객들은 연일 객석을 완전히 메워 귀를 기울였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광주에서 민주주의, 사회운동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보험사기단 3인의 보험금을 얻기 위한 투쟁.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의 기본 골격이다. 사기를 치기 위해 서울에서 광주로 옛 친구들을 찾아온 허장세와 그에게 동조하는 두 친구로부터 시작되는 미세서사는 극이 진행될수록 군대, 경찰, 간호사, 정보부요원 등과의 갈등을 통해 그 폭을 넓혀간다.
간헐적으로 창문에 영상으로서 투영되는 항쟁의 모습들은 사기단을 동조시키지 못한다. 그들의 관심은 이 혼돈 속에서 교통사고 보험사기를 통해 한 몫 단단히 챙기는 데 있을 뿐이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하는 희생양인 방세는 사고 직후 실종되어 버리고 그를 찾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야전병원, 경찰서 등에서 남은 장세와 광세는 당시 광주의 폭력적 실상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한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주인공들의 광주에 대한 인식의 확장과 소통은 희미하다. 보험사기단은 철저하게 ‘보험금을 얻어내야 한다!’ 라는 절대적인 명제아래 자신들의 목적달성에 사력을 다한다.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광주의 슬픔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훈적이며 관객을 한곳으로 이끄는 거대한 서사구조는 부각되지 않는다. 극은 그 빈자리를 위트 있는 대사와 희극적인 코미디로 채워 당대를 재조명한다. 절정에서 어느 정도 비켜서 관조적 자세를 견지하는 작가의 원근법은 오히려 정면으로 충돌할 때보다 의미 있는 성찰을 불러온다. 중요 모티프가 되고 있는 ‘문어대가리 외계인’은 전두환 대통령의 비유적 표현으로 읽혀지며 광주에 외계인의 침략처럼 난입한 군대와 다르지 않다. 희극적인 상황아래 종종 내뱉어지는 “광주가 온통 찾아야 될 사람들로 가득 찼어, 목적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나빠”, “왜 때리는지 모르고 아군이 누군지, 적군이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지” 등의 대사들 또한 위의 원근법에 기반을 두어 의미를 더한다.
몇 십년 만에 만난 세 친구 사이에는 욕과 폭력이 난무한다. 사회에서 낙오된 열외인간들이자 문제적 인물들인 그들은 몇 가지 결함을 가진 비루한 인생들이다. 기회주의자적 면모가 다분한 범죄자의 표본 장세, 외계인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는 정신병자 방세, 노름으로 심신이 파탄지경에 이른 광세, 근묵자흑이라 했던가. 죽마고우였던 이들의 낡고 병든 삶은 보험금이라는 목적으로 서로 지탱하지 않는다면 금방이라도 붕괴되어 버릴 만큼 위태롭다. 작은 방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소박한 음모에 절로 우스워진다. 소시민으로서 대표성을 가진 이들의 비루함은 이 극이 가진 작은 서사에 걸맞은 옷이다. 입에 딱딱 붙는 욕과 저급한 언어, 순수에 가까운 어리석음, 완숙한 세 배우의 연기는 시대를 외면해 버리는 주인공들에게 오히려 끝없는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감정선은 계속 이어져 정보부 요원과 보험사기단 사이의 대치상태에서 우발적인 사격으로 인한 총질과 죽음이라는 결말에 깊은 울림을 준다. 우발적인 사격의 원인이 창문 밖 광주운동의 큰 함성 때문이라는 사실에서도 작가의 영민함을 엿 볼 수 있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 연극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그 비루함의 미학을 잘 살린 수작이다. 시원하게 웃을 수 없는 희극 아닌 희극이기에 웃음 속 슬픔을 여실히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정완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택아트센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