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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도덕적 도둑’이 가진 소통의 방식들

 

 

우리는 통(桶)자 인생이다. 통 속 같은 아파트에서 자고, 통 속 같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나와 통 속 같은 지하철을 타고, 통 속 같은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마침내 통 속 같은 관(棺)속에 들어가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의 궤적임을 주지시키는 어느 시인의 말이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주말 대학로는 통 속 같은 소극장에 모인 통자 인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결핍의 충족을 바라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웃음과 풍자 등의 코드로 관객과 소통에 성공한 ‘도덕적 도둑’은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관객과 한통속으로 가는 첫 번째 방식은 웃음이다. 불륜, 스와핑의 소재를 세련된 코미디 형식으로 구성한 다리오 포의 원작 자체가 강한 흡인력을 발휘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연출가 왕용범은 재기발랄하게 원작을 재해석하여 더욱 과감하고 실험적인 무대연출과 캐릭터 설정으로 웃음을 배가시킨다. 무대 배경에 불과한 줄 알았던 창문을 통해 [Don’t worry be happy]를 들으며 난입하는 도둑의 등장은 신선하다. 이후 국회의원 최종구와 그의 정부가 등장하면서 도둑은 옷장 속에 숨게 되고 서로 연인이면서 부부인 관련 인물들의 시의적절한 등장을 통해 긴장을 끈을 놓치지 않는 스피디한 전개를 이끌어간다. 웃음의 원천이 되는 인물들은 국회의원 최종구와 그의 정부, 그리고 그 정부의 남편이다. 국회의원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우월계층을 특유의 과장된 연기로 보여준 최종구(이성환役)는 상황에 따라 담대함과 심약함 사이를 오가는 이중적인 모습을 잘 형상화하여 관객에게 큰 웃음을 준다. “나 정말 전철타기 싫어~!”를 외치며 자신의 몰락을 염려하는 그의 희극적인 면면들은 도덕적 ‘도둑’이라는 타이틀이 의아해질 만큼 압도적이다. 팜므 파탈의 유혹적인 동작과 이성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성적 자극을 받는 등의 엉뚱함을 유연하게 보여준 최종구의 정부(구옥분役), 속사포같이 쏘아대는 대사와 경박스러운 언행을 개성 있게 소화해낸 정부의 남편(류경환役)도 객석과 무대의 유쾌한 소통을 위한 매개로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두 번째 방식은 대상을 비하시키는 웃음, 바로 풍자이다. 풍자된 인물상을 통해 관객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다시 인식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 권위의 대상이 손상되지는 않지만 관객들은 우습게 다뤄지는 국회의원 최종국을 보며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최종국의 허위는 낱낱이 폭로된다. 불륜은 기본이요, 비례대표선출자임에도 선거포스터는 당당히 방에 걸려있고, 정부에게 선물로 준 목걸이도 사실은 짝퉁이며,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가는 외줄 타기는 그의 전매특허이다. 이만하면 정부에게 성감대인 무릎을 능욕당하는 최종국의 모습은 애교라고 할 수 있겠다. 극히 도덕적이어야 할 국회위원은 땅으로 추락하며, 반대로 도둑의 위치는 상승한다. 권력층(국회의원)-일반인-범죄자(도둑)의 일반적 계급구조는 전복되어 오히려 도둑이 박수갈채를 받는 올곧은 존재로 그려진다. 국회의원 최종국과 동일시를 이루며 극을 감상한 관객은 극소수 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중 여성들은 남성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남성들은 그녀들에게 복종하는 것에 사력을 다한다. 그녀들의 권력을 형상화시키는 방식들도 흥미롭다. 국회의원 부인은 걸걸한 사투리에 위엄 있는 풍채로 남편을 압도 하며, 도둑부인은 남편의 세 배는 되 보이는 몸집에 보안시설업체 요원으로서 권력의 상징인 제복을 입는다. 그녀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남성들과 코끼리 마취제를 맞고도 회생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수갑을 성적쾌락의 도구로 삼는 국회의원의 정부 또한 국회의원은 물론 그의 남편을 압도한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지르는 명령조의 일갈과 강렬한 붉은색 드레스, 그리고 하이힐은 캐릭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상대적으로 여성을 남성의 상위에 놓는 연출은 트렌드의 반영임과 동시에 아직은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에 대한 인식에 그 원인이 있다. 이로 인해 관객과의 소통은 더욱 원활해졌으며(남성들은 뭔가 찜찜함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관객들은 그녀들의 입장에 서서 국회의원이기도 하고, ‘남성’이기도 한 최종국의 풍자된 모습들을 피도 눈물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더운 여름, 팍팍한 일상. 그럴수록 관객들은 웃을 수 있는 연극을 원한다. 짜임새 있는 희곡과 연출가의 영민함이 돋보이는 이 연극 하나. 통 속에 갇혀, 생각마저 통조림처럼 꽉 막혀버렸을지 모를 당신을 위한 작품이다.


이정완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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