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6.8.27 목 10:30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리뷰] 쉬어 매드니스, 네 안의 추리본능을 깨워라!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기위해 벌이는 숨 막히는 추리극, 연극 ‘쉬어 매드니스’는 1980년 보스턴에서의 초연이후 지난 28년 동안 관객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공연계의 빠른 트렌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처럼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매일 ‘같지만 다른 작품’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관객참여형 연극의 완벽한 구조를 보인다. (소극장)무대가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극 전개 방식은 관객의 단순한 극 참여를 넘어선다. 즉, 이들은 작품의 중요한 크리에이터이자 또 한 명의 배우로 ‘관객’을 선택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들지만 이 작품은 완벽히 그것을 이뤄낸다. 늘 같은 상황과 대사로 시작하지만 그 결말은 매일이 다르다.

또한 중간 중간 섞인 블랙코미디는 관객의 극 참여에 따르는 고단함을 단번에 풀어주는 열쇠로 작용한다. 가령, 상류층 귀부인 ‘한보현’이 자신의 남편 ‘박용호’를 소개하면서, “회사의 경영진이긴 하지만 딱히 하는 일은 없어요”라고 말하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박용호는 이 작품의 제작사 대표의 이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내가 살인누명을 쓸지도 모른다’는 용의자들의 불안한 심리와 행동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을 나타냈다. 그들은 사건 전까지는 매우 돈독한 친분을 자랑했지만, 살인이라는 사건 앞에서 그 친밀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서로를 범인이라고 지목하기도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범인을 잡아내는 사람은 ‘관객’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관객이 용의자 중 한 명을 범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관객이 던지는 ‘소중한 한 표’가 그(녀)를 살인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개의 결말을 가진 이 작품은 그날의 전개와 내용에 따라 매일 다른 결론이 이루어진다.

 

때문에 배우들은 몇 배의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 어떠한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며, 어떠한 돌발 질문이 쏟아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관객들의 무관심한 태도도 슬기롭게 이겨내야 한다(감사하게도 관객들의 참여는 적극적이다). 관객의 의견을 극과 융합시키는 역할을 하는 박형사(김대종)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고도의 순발력과 재치를 보인다. 관객들이 온갖 추리력과 기억력을 동원해 의심스러운 용의자들을 궁지로 몰지만, 그들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설명하는데 아주 비범(?)한 능력을 보인다. 이것은 작품에 임하는 배우들의 치밀한 사전 준비와 그에 따른 능숙함이 매우 탁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관객들 또한 놀라운 추리력을 보인다. 용의자들이 한 행동은 물론,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 잊지 않고 잡아낸다(작품을 여러 번 본 관객도 있었겠지만). 하지만 관객은 연습을 한 것이 아니므로 그 빈틈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엉뚱한 질문에 극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시간을 빼앗길 때도 있고, 했던 질문을 또 하는 관객,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관객 등 배우들이 헤쳐 나가야 할 고비들은 늘 그들과 함께 한다.

이 작품은 그래서 특별함을 지닌다. 배우는 배우의 역할을 넘어서야 하며, 관객 또한 관객의 역할을 넘어서야 한다. 극 중 ‘송채니’가 매일 연주하던 라흐마니노프(그는 피아노의 기능을 최고로 끌어낸 작곡가로 유명하다)의 피아노곡처럼, 빠르고 밀도 있는 전개로 단 한순간의 루즈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을 다른 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만약, 오늘 당신이 ‘쉬어 매드니스’를 만나 그 살인자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면, 아마도 “대체 내일의 범인은 누구일까”하며 밤잠을 설칠지도 모른다.


공정임 전문기자 kong24@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