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주목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닌 아무도 모를 것만 같은 세상 끝의 구석진 모서리를 보신 적이 있나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 말이에요. 연극 「끝방」은 바로 겨우 두 발 뻗고 누우면 그만인 아주 작은 방 하나에 담겼다가 이제는 아주 멀리 가버린 한 줌 햇살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들과 그 시간들이 만든 추억과 곰삭아 달콤해진 인생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들려주는 어머니와 함께했던 가난했지만 눈부시게 반짝였던 동화 같은 유년의 기억!
이 공연이 작지만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던 건 아들(조현식)이 어머니(정선아)의 인생을 찬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머니와 함께했던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유년의 날들에 대한 찬사랍니다. 그러니까 얘기는 이렇습니다.
아들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을 찾아갑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세상의 힘든 일들을 피하기 위해 그냥 미친 척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미쳤거나 치매에 걸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죠.
하여튼 다행히 그들이 찾아간 요양원에는 마지막 끝방 하나가 남아 있었죠. 그 요양원 끝방에서 아들은 노래 가사를 적어달라는 어머니를 위해 노래 가사를 적고 또 이야기를 해달라는 어머니를 위해 유년 시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머니의 젊었을 때 꿈은 가수였답니다. 어머니는 결혼을 한 뒤 삶의 고달픔 속에서 그 꿈을 잃어버렸다가 늙어 치매에 걸리고 나서야 다시 그 꿈을 기억하고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어머니의 인생이란 게 참 세상 기준으로 볼 때 박복하기 그지없습니다. 대학 다니다 남자랑 눈이 맞아 학교 때려치우고 사랑에 모든 걸 걸고 철없이 덜컥 결혼해버렸죠. 하지만 그 운명의 남자는 가족들을 먹여 살릴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어서 아들 하나 낳아놓고는 바람피우러 집을 나가버립니다.
어머니 혼자서 아들 하나를 어렵게 키워나가게 되죠. 어머니의 인생이란 고단하고 힘든 일들로 가득했죠. 어머니는 방 두 칸 중 마지막 끝방을 세놓아서 그 세를 받아 생활하면서 낮에 일을 해서 아들을 공부시키고 키우는 거죠. 그리고 이제 그 아들은 자랐고 그 어머니는 늙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자신이 일곱 살 무렵이었을 때의 인생입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그 끝방에 세들어 오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들. 그 끝방을 찾아오는 사람들 역시 가난하고 고단하고 힘든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착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술집에서 노래하는 가수 지망생 순옥 누나,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고 대머리 문방구 사장과 결혼하는 이모, 시험공부를 하는 하체 장애자 형 등. 그리고 억척스럽게 삶을 꾸려가는 어머니. 그 한 명 한 명의 인생은 모두 ‘인생극장’에 나올 만한 사연들을 갖고 있죠. 그러나 그들은 인생을 탓하지 않고 착하게 사는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들이랍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았고 또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잘 자랄 수 있었고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함께 산 가족들이라 해도 기억은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극 「나생문」에서 산적, 무사의 아내, 무사의 혼령, 나무꾼의 진술이 다 다르고 영화 「오! 수정」에서 함께 연애를 했던 남자 재훈과 여자 수정의 기억이 다른 것처럼요.
그런데 연극 「끝방」 속 아들의 기억에는 어머니와 함께했던 유년이 가난으로 힘들었던 것보다 함께 있어서 좋았던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건 정말 축복과도 같은 일이지요.
아들은 그 이야기들을 통해 늙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인생은 비록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참 아름다웠어요.”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다들 아들의 그 말을 듣고 기뻐할 거예요. 아들이 심성 바르고 착하게 자란 것만으로도 어머니의 인생은 값진 것이 되고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잠시 마법 같은 환상의 시간이 생겨납니다. 그 요양원 끝방의 치매 걸린 어머니 환영 속으로 아버지가 찾아오는 거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해줍니다. 어머니는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산 아버지마저 이해하고 용서하죠. 인생이란 결국 다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인 거니까요.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그냥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인생을 이해하게 되고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모든 것들에게 상냥하고 부드러워지고 착해지는 거지요.
‘인생은 살아봤자’가 아닙니다. 비록 힘들고 부끄러운 일들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견딜 만하고 지나가게 마련이고 결국엔 의미를 발견하게 되니까요. 이 공연은 바로 그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제작 : 나온컬쳐(주)
작 : 김효진
연출 : 이재준
출연 : 우지순, 진선규, 이희준, 이용헌, 정선아, 박보경, 박민정, 조현식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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