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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폭풍의 언덕」 - 영원불멸의 운명적인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겠습니다!

 

 

제 첫사랑 이야기 해드릴게요. 제가 열다섯 때 사랑했던 첫 번째 남자. 그의 이름은 히스클리프Heathcliff입니다. 그는 악마보다 더 악마 같았고 짐승보다 더 짐승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파멸시켜가면서까지 목숨을 다해 영혼을 다해 단 한 여자에게 격렬하고 열정적이고 순수하면서 종교적이고 숭고하기까지 한 사랑을 바쳤습니다.
그런 그를 미워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고 오히려 굴복해버리듯 무조건 사랑할 수밖에 없었죠. 악마에게 짐승에게 그런 고결한 사랑이 가능하다니요! 그래서 저는 더욱 그 남자에게 온통 사로잡혀 마음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의 슬프고 비극적인 사랑이라는 총탄 하나가 심장을 뚫고 지나간 것 같았으니까요. 제 인생은 『폭풍의 언덕』을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뉘어졌습니다.

사랑의 위대함을 초자연적 비현실적 형이상학적으로 그려낸 가장 독창적이고 기이한 작품!
공연 시작 전 무대 위에는 신비스런 안개가 가득합니다. 격렬한 사랑의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기괴하고 음산하고 황량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죠. 자, 모두들 영원불멸의 사랑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갈 준비가 되셨나요?
드디어 모든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켜지자 캐서린Catherine의 유령이 나타납니다. 사후세계로 가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해서 그 주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유령이란 말보다는 영혼이란 말이 더 어울릴 듯도 합니다. 아름답거든요. 어쨌든 그 유령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과 못 다한 사랑의 회한과 그 고통을 발레 동작으로 표현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져버립니다.
원작에서는 캐서린의 유령이 나타나서 안으로 들여보내달라고 소리 치고 깨진 유리창에 손목을 비벼서 피가 나는 등 다소 18세기 고딕소설처럼 무섭고 섬뜩하고 감정적입니다. 그에 비해 연극 속에서 캐서린의 유령은 감정을 절제하고 있고 발레 동작을 사용해서 춤을 추고 있어 시적이고 우아하고 신성하고 아름답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선악과 생사와 도덕과 종교와 세속적인 사랑을 초월해버리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위대한 사랑의 암시로 적절했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자, 그럼 원작은 다들 읽으셨다고 생각하고 연극을 살펴보기로 해요. 그래도 간단하게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이렇습니다. 참, 그전에 참고로 이름의 의미를 알려드릴게요. 히스클리프란 이름은 히스Heath+클리프cliff의 합성어로 히스 꽃이 핀 벼랑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이란 이름에서 워더링Wuthering은 폭풍이 불 때 들려오는 바람의 웅얼거림을 나타내는 그 지역 방언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곳에 세워진 집이다 보니 그런 이름이 붙게 된 거예요.
다시 아까 하려다 만 줄거리 이야기로 돌아가서! 폭풍의 언덕의 주인인 언쇼는 어느 날, 일이 있어서 리버풀에 갔다가 남자 아이 하나를 주워 옵니다. 언쇼는 그 남자 아이를 예전에 죽은 첫 아들의 이름을 따서 히스클리프라고 부르며 친아들 힌들리보다 더 편애합니다.
힌들리는 아버지의 애정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삐뚤어지면서 히스클리프를 증오하게 됩니다. 힌들리는 아버지 언쇼가 죽은 뒤 히스클리프를 학대합니다. 한편 딸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둘은 항상 붙어 다니죠. 하지만 캐서린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히스클리프는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복수를 꿈꾸게 됩니다.

연극 속에서의 시간적 배경은 히스클리프가 죽기 직전 마지막 날의 새벽입니다. 원작에서 히스클리프는 복수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사흘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마치 캐서린을 만난 것처럼 열에 들뜬 사람처럼 돌아다니다가 혼자서 한밤중에 눈을 뜬 채 웃으면서 죽은 것으로 나옵니다.
그 마지막 사흘 동안에 히스클리프는 아마 캐서린을 만나 히스가 만발한 언덕 여기저기와 폭풍의 언덕 집안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지 않았나 싶어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요. 그는 마치 사랑에 빠져 열에 들뜬 사람처럼 정신을 놓고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녔으니까요.

죽기 직전의 새벽. 히스클리프가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고 해봤자 캐서린과 관련된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의 인생은 온통 캐서린뿐이었으니까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요즘 말로 하면 소울메이트입니다.
그 둘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서로의 모든 것을 낱낱이 다 알고 있고 그래서 장단점까지 꿰뚫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을 통째로 사랑합니다. 단, 그들은 사랑에 눈이 멀었던 게 아니라 사랑에 눈을 떠서 상대의 존재 자체를 환하게 볼 수 있었고 이해했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 둘은 서로가 서로의 모든 것입니다.
연극 속에서는 그 영원불멸의 사랑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어린 시절 그 두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서 짖고 물고 깨물고 쓰다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원작에는 없는 내용인데 원작의 분위기를 상징적이면서 강렬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해냈습니다. 그 장면은 동물적이면서도 그 어떤 이해타산도 없이 순수했던 사랑을 드러냅니다. 처음부터 그 두 사람의 영혼은 그렇게 원초적이고 본능적으로 하나로 묶여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극 무대 위에서 펼쳐진 한 편의 강렬한 사랑과 처절한 절규의 대 드라마!
“내가 히스클리프를 좋아한다는 건 잘생겼다는 그런 하찮은 이유 때문이 아냐. 그는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에드거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변하겠지만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땅속의 바위 같은 거야. 넬리,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히스클리프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은 하나니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고 ‘우리의 영혼은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 둘의 사랑은 그만큼 절대적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서린은 히스클리프 대신 치안판사 집안의 에드거를 선택합니다.
캐서린이 에드거를 선택한 데에는 나름의 명분이 있습니다. 히스클리프의 불행한 처지를 개선해주기 위해서였으니까요. 그녀는 비록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고 해도 히스클리프와의 영원한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죽을 때까지는 물론이고 죽은 이후에도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둘은 하나의 영혼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하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죠.
캐서린이 가정부인 넬리에게 에드거의 청혼을 받았고 그 청혼에 승낙했다는 말을 하면서 ‘내가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내 품위가 떨어질 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맙니다.
그 말을 들은 히스클리프는 엄청난 상처를 받고 집을 떠나버리게 되고요. 사실 캐서린은 그 뒤에 자신이 히스클리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은 히스클리프가 듣지 못했습니다.

3년 후, 히스클리프는 부자 신사가 돼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캐서린은 에드거와 결혼한 상태였고요.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이 변하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하죠. 하지만 그 두 사람은 더 이상 사랑해선 안 될 사이입니다.
히스클리프는 사랑을 방해했던 주변 인물들에 대해 복수를 결심합니다. 가장 먼저 캐서린의 오빠이자 자신을 학대했던 힌들리의 재산을 도박을 통해 가로채고 그 다음으로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꾀어내 결혼하고는 학대하고 멸시합니다. 한 여자를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가 또 다른 한 여자를 그토록 악랄하고 잔인하게 대할 수가 있다는 게 놀랍고 무섭기까지 하죠.
하여튼 그러는 사이 캐서린은 사랑하는 히스클리프를 버리고 에드거와 결혼한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면서 점차 병이 들어 죽어갑니다. 캐서린은 마지막으로 다 죽어가는 상태에서 잠옷 차림으로 히스클리프를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요. 두 사람은 죽음이 곧 그 두 사람을 갈라놓을 거라는 걸 예감하는 가운데 절절하게 사랑의 맹세를 합니다.
히스클리프 역을 맏은 유태웅은 그때의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일그러진 표정과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절절한 목소리로 표현해냅니다. 캐서린 역을 맡은 서은경은 그 슬픔에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요. 캐서린은 마침내 죽고 맙니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죽음에 비통해하면서 더욱더 복수에 집착합니다. 힌들리와 에드거의 재산을 모두 빼앗고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과 에드거의 딸 캐시를 구박하죠. 원수의 아들딸이니까요.
히스클리프는 20년이 지나도록 죽은 캐서린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매일 밤 유령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살아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캐서린을 처절하게 그리워하면서요.
그는 그러다가 학대받아서 일그러지고 굽은 자신의 영혼을 꼭 빼닮은 헤어튼과 캐서린의 딸이면서 캐서린을 거의 빼다 박은 캐시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하고 차츰 변하게 됩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그 두 사람의 사랑은 바로 자기 자신과 캐서린의 사랑과 닮았으니까요. 그 두 사람의 사랑을 보는 것만으로 괴로움은 극에 달합니다.
결국 그는 복수 대신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캐서린의 곁으로 가는 걸 택하지요. 그의 죽음은 마치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싹을 틔우는 것처럼 헤어튼과 캐시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하고요.

원작에서는 도시인으로 이성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록우드와 건강하고 평범한 가정부 넬리의 이중 시각에서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 이야기가 서술됩니다.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의 입을 빌리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연극에서는 그런 이중 시각을 사용하는 서술방식 대신 히스클리프가 이중 자아, 즉 현재의 히스클리프가 회상을 통해 과거의 히스클리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의 히스클리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현재의 헤어튼과 연결되고요. 그래서 결국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비극적인 사랑은 헤어튼과 캐시의 밝고 따뜻한 또 하나의 사랑과 연결되고요. 새롭고 독창적인 구성 방식입니다. 단연 연출력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이 너무 유명하면 그 원작을 토대로 한 작품들은 늘 원작에 못 미친다는 비평을 받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극에서는 원작의 느낌을 충실히 살려내면서도 무대 위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그 원작의 방대한 시간과 공간을 잘 압축하고 표현해냈습니다. ‘이중자아’ 양식과 발레와 클래식 음악을 잘 결합해낸 덕분이라고 보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배우 유태웅의 히스클리프를 잊지 못할 거예요!
「폭풍의 언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단연 히스클리프입니다. 그래서 늘 누가 히스클리프 역을 맡을 건지는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죠. 사실 저는 배우 유태웅이 출연하는 연극을 많이 본 편입니다. 물론 그의 연기를 좋아하죠. 그가 연기파 배우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잖아요. 공공연한 비밀이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바보라는 뜻인 거 다 아시죠? 하하하.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번에 히스클리프 역을 맡았다는 것을 알고는 약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너무 얼굴도 하얗고 모범생처럼 행동도 바르고 잘생겼잖아요. 그 어떤 구김이나 어둠이나 그늘이 없잖아요. 히스클리프는 집시같이 검은 얼굴에 성격도 잔인하고 극단적일 뿐더러 그 속도 잘 파악할 수 없는 악마적인 인물이잖아요.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저는 공연을 보고 나서 배우 유태웅이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히스클리프 역을 잘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와~ 아주 작심하고 연기를 하는군! 히스클리프는 참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격렬하고 뜨거운 사랑을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서 또한 한없이 얼음처럼 차가운 증오를 품고 있으니까요. 학대당하면서도 학대하고요. 순수하면서도 계산적이고요. 악마적이면서도 신성하고요.
배우 유태웅은 그런 히스클리프의 성격들을 아쉬움 없게 연기로 표현해냈습니다. 사랑과 증오를 가슴속에 품고 있는 고통스런 남자의 모습을 격렬하면서 절제 있게 잘 표현해 냈으니까요. 특히 얼굴 표정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된 것처럼 딱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계산된 연기를 할 줄 아는 영리한 배우였죠. 그러면서도 그 인물 속에 완전 동화돼 있었고요. 아마 그건 오랜 인물 연구를 통해 가능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어보나마나 지독하게 히스클리프를 파고들었겠죠.
거기다 그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무대 위를 꽉 채웠답니다. 또한 맨 마지막 장면에서 죽은 히스클리프가 죽은 캐서린을 만나 번쩍 들어서 안아 올릴 때는 완전 멋진 왕자님이었고요. 분명 이 연극을 본 관객들은 아주 오랫동안 배우 유태웅의 히스클리프를 잊지 못할 거예요.

폭풍처럼 격렬하고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이 우리를 구원해줄 거야!
저는 열다섯 살 때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히스클리프라는 인물 때문이었지요. 그건 그 당시 읽었던 『빨간 머리 앤』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나 ‘초록지붕’ 정도의 귀엽고 발랄한 상상력들을 완전 뛰어넘는 거였습니다.
그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인물의 창조였습니다. 저는 상상만으로 그런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데 대해 엄청 질투를 했습니다. 감히 저는 주제 파악 못하고 영국의 대 문호 에밀리 브론테에게 질투를 했던 거죠. 하지만 제가 다른 작가들을 다 질투하진 않았잖아요. 제가 에밀리 브론테를 좋아했기 때문에 질투도 한 거라고요.
저는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저는 평생을 혼자서 고독하게만 지낸 한 여자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그런 인물이 형상화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상상력이 가능한 거지요? 저는 그 이후로 생각날 때마다 여러 판본의 『폭풍의 언덕』을 읽었습니다. 혹시라도 그 상상력의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지요. 하지만 그 단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개의 ‘작품 해설’이나 ‘역자의 말’에서는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상상력이라는 감탄의 말만 나오더라고요. 정말 그녀는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상상력만으로 그런 인물을 형상화해낸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찾았습니다! 2006년에 푸른숲 출판사에서 간행한 청소년 징검다리 클래식 안에 들어 있는 『폭풍의 언덕』 발문에 나와 있었습니다. 히스클리프의 실제 모델이 있다고요! 찾았습니다! 잠시만 소개할게요.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아버지 패트릭이 들려준 증조할아버지 이야기를 토대로 해서 만들어졌답니다. 에밀리의 고조할아버지가 리버풀에서 주워 온 아이가 바로 웰슈입니다. 에밀리의 할아버지 휴는 바로 그 웰슈 삼촌의 양자로 들어갔고요. 웰슈는 바로 히스클리프의 모델이 되는 인물입니다.
웰슈는 영리해서 고조할아버지의 편애를 받았고 주위의 시기를 얻었습니다. 고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웰슈는 쫓겨났고요. 하지만 웰슈는 몇 년 뒤 부자가 돼 다시 돌아왔답니다. 그리고는 집안의 모든 토지와 가옥을 합법적으로 차지하고 휴의 막내 고모와 결혼하고는 나머지 가족들을 무지막지하게 학대했다고 해요. 히스클리프가 그런 것처럼요.
웰슈는 히스클리프와 아주 유사한 인물이죠. 그러니까 에밀리는 아버지 패트릭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다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 소설을 써내려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세계 문학 속에서 참으로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 하나를 읽을 수 있게 된 거고요.

잘 아시다시피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살았던 브론테 집안의 세 자매-샤롯, 에밀리, 앤-는 영국 문학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긴 위대한 작가들로 평가받고 있죠. 에밀리의 언니 샤롯은 그 유명한 『제인에어』의 작가이고요. 막내 앤이 언니들인 샤롯이나 에밀리보다는 명성에서 많이 떨어지긴 하지만요.
그 세 자매 중에 에밀리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해요. 사실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을 쓰기 전에 193편의 시를 쓴 시인입니다. 그전까지는 소설을 쓰지 않았어요. 소설은 이 작품 딱 한 편만 썼고 이 작품을 쓰고 나서 1년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시인이 쓴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시적이고 격정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고요.
그녀는 북잉글랜드 요크셔 지방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그곳은 계절 변화가 심한 곳이었습니다. 봄에는 들판에 히스가 자라나지만 겨울에는 매서운 논보라가 몰아치는 곳이었죠. 그런 환경적인 특성은 작품 속 인물들의 성격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됐을 때 비평가들은 내용이 너무 어둡고 사악하고 비도덕적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멜빌의 「백경」과 더불어 영어로 씌어진 3대 비극이자 세계 10대 소설로 평가받습니다.
이 작품이 발표됐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이성과 질서를 우선시하던 때입니다. 다른 자각들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내용을 주로 쓰고 있었죠. 그런 시대 상황에서 완전 별개로 떨어져 나온 이 작품은 “뭐야? 외계인이 쓴 거야?” 할 정도로 독특하고 개성적이었습니다. 그 개성은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감정적인 감동을 선사하는 러브 스토리의 고전이 되도록 한 힘입니다.

ps.
자, 이제 제가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인내심 많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위대한 성공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위대한 사랑을 원하시나요?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말이에요. ……. 근데 왜? 왜? 그렇게 금방 대답을 못하시는 거죠?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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