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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2-3rd 「리타 길들이기」-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시, 소설, 연극을 통해 더 나은 ‘나’ 되기 혹은 자기 계발하기!

 

 

공연 예술을 감상할 때마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공연 시작할 때 아주 잠깐 암전이 되잖아요. 그때 우리는 수다 떨기를 멈추고 복잡했던 머리를 비우고 자잘한 세상일들 따위는 다 팽개쳐버리고 무대 위만을 집중해서 쳐다봅니다. 마치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은 다 사라져버리고 마치 저 서너 평 남짓의 무대 하나만 있다는 것처럼요. 순간 집중이 극대화된 때죠. 무대 위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잔뜩 궁금해 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보죠.
근데 조명이 들어오고 무대 위가 환해지면 어느새 텅 비었던 무대 위에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단 몇 초 만에요. 그때 배우들은 어떻게 소리도 안 내고 그 짧은 시간 안에 거기에 와서 천연덕스럽게 있는 거죠?
저는 암전된 틈을 타 배우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잔뜩 귀를 기울이거나 숨을 들이 마셔가며 코로 냄새를 맡아보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뭐, 어린 시절 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근데 매번 실패입니다. 올빼미의 눈, 돌고래의 귀, 돼지의 혀, 개의 코를 갖는 건 불가능한가요? 아무래도 감각을 날카롭게 하는 연습을 더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진정한 자기 계발은 바로 시와 소설과 연극 같은 예술을 통해서 가능하다!
무대 위로 환한 빛이 비추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한 대학 교수의 연구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치 작은 도서관처럼 예쁜 그 연구실 1,2층은 벽마다 책장이 놓여 있고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합니다. 오른쪽 벽에는 좀 야한(?) 명화도 한 점도 걸려 있고요.
그 연구실의 주인인 프랭크 교수(박용수)는 위대한 문학 작가들인 엘리엇, 에머슨, 유리피데스, 디킨스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뭔가 중요한 단서를 찾는 것만 같습니다. 엄청 고상한 학자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골똘히 고민하는 것이 문학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 같죠. 하지만 그건 모두 오해입니다. 우리의 예상이 빗나갔음은 금방 밝혀집니다. 그는 어느 작가의 책 뒤에 술을 숨겨두었는지를 찾고 있었던 거죠. 그는 영문학과 교수로 한때는 시인이었지만 지금은 알코올중독자입니다.
그때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뭐 조금만 더 모른 척하면 문을 때려 부술 것만 같은 기세입니다. 개방대학에 수강신청을 한 리타(이승비)가 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온 거죠. 달랑 학생 한 명! 수업 첫날입니다.
그녀가 등장하자 무대 위로 리타가 발산하는 신선한 에너지가 확 퍼집니다. 갑자기 공기마더 신선해지죠. 이후로 중반까지 리타는 등장할 때마다 계속 문을 우당탕탕 쾅쾅 두드리며 때려 부술 것처럼 하거나 세게 박차거나 밀고 들어옵니다. 젊고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이 잘 담겨 있습니다.
리타는 스물여섯 살 아줌마 미용사입니다. 그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좀 상식적이지는 않은 일입니다. 돈이나 열심히 벌어서 가정경제에 일조하거나 아이나 여럿 낳아서 키우는 게 딱이죠. 하지만 그녀는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아닌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갖기 위해 과감하게 선택했습니다.
"옷을 사 입을 것인가, 개방대학에 들어갈 것인가?" "그래, 선택했어. 개방대학에 들어가는 거야!"
리타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천진난만하고 구김 없고 쾌활하고 생생하고 도전적이고 에너지 넘치고 호기심 넘치고 학구열 넘치는 좀 나이 많은 학생입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깨닫게 되면 미용실에서 퍼머 약을 바르다 말고 숨을 헐떡이며 깡충깡충 뛰어와 이야기할 정도로 배움의 욕구가 넘치죠. 그저 아르키메데스처럼 벌거벗은 채 목욕탕에서 뛰어나와 ‘유레카‘라고 외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뿐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좌충우돌 개방대학의 수업은 시작됐고 계속됩니다.

근데 프랭크 교수와 리타의 수업시간 대화를 들어보면 두 사람은 서로 아닌 척하지만 유혹당하고 유혹하는 모습입니다. 리타는 약간 높은 톤으로 어린아이처럼 어리광 말투를 사용하는 귀염둥이죠. 매번 등장할 때마다 몸에 딱 붙는 예쁜 옷들을 입는 것이며 천진난만하게 눈을 수시로 깜박이는 것이며 또각또각 소리 내는 구두를 신고 종종 걸어 다니는 것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관객은 그런 모습을 보는 걸 재미있어 하면서 즐기지요. 관객은 처음부터 두 사람이 서로 연결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건가요? 그렇게 기대하게 만들어야 더 재미있는 거죠? 그렇죠?
프랭크 교수는 리타의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리타도 의식하지는 않지만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고요. 하긴 세상에 그 어느 교수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저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죠." 하고 말하는 제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는 무기력하고 지겹고 무미건조했던 인생 안으로 참새처럼 짹짹거리는 수다쟁이 제자가 들어온 것에 대해 감사해야지요. 그는 리타에게 시, 문학, 연극을 가르쳐줍니다. 리타는 차츰 문학을 이해하고 교양 있는 사람이 돼가죠. 그러면서 점차 독립적이 되고요.

연극 「리타 길들이기」는 분명 연애 이야기가 아니긴 하지만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밀고 당기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가 주는 재미 말고도 또 하나의 재미가 있습니다. 바로 액자 안 액자가 담긴 그림처럼 연극 안에 다채로운 세계 문학과 문학가들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는 거죠. E. M. 포스터의 『하워즈 엔드』, 헨릭 입센의 『페르귄트』,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등. 다채로운 문학 이야기가 풍성하게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흥미진진했습니다.
대학시절 선후배들과 모여 밤새는 줄 모르고 시며 소설이며 연극이며 이야기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땐 시 한 구절을 놓고도 몇 시간이고 열띤 토론을 하곤 했죠. 연극 「리타 길들이기」는 연극 안 문학 이야기를 통해 교양을 전달해주고 지적인 재미를 전해줍니다. 음, 그래서 말인데요. 아무래도 이 작품을 ‘교양 자기 계발 연극‘ 「리타 길들이기」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요?
연극 「리타 길들이기」는 제목만으로 보면 ‘길들이다‘란 말이 들어가 있어서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 속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이 있어.”
하지만 ‘리타 길들이기’에서 길들이기는 그 길들이기가 아닙니다. 원제는 「Educating Rita」입니다. 음, 리타 길들이기보다는 리타 가르치기가 더 낫지 않았을까요? 참, 그리고 리타의 본명은 수잔입니다. 리타라는 이름은 그녀가 읽은 소설 『욕망의 도시(원제 : 루비 열매 가득한 정원)』의 저자인 리타 메이 브라운에서 따온 거죠. 리타는 공부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면서 리타라는 이름을 버리고 수잔이라는 본명을 씁니다.

사랑만한 최고의 자기 계발이 또 없죠! 사랑은 서로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이끕니다!
다시 사랑 이야기 잠시 하겠습니다! 완벽한 사랑은 서로를 더 발전시키고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해주죠. 그걸 미켈란젤로 현상Michelangelo Phenomenon이라고 부릅니다. 미켈란젤로 현상이란 마치 미켈란젤로 조각품처럼 서로가 서로를 이상적인 자아 즉 위대한 작품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예술가가 돌덩어리를 쪼아내고 다듬어내듯이 서로 상대방을 쪼아내고 다듬어주는 망치와 끌의 역할을 합니다. 길거리에 널려 있던 평범한 돌덩어리는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나는 거죠.
프랭크는 리타에게 문학 강의를 하는 것으로 그녀 안의 지적 욕구와 안목을 끌어내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합니다. 이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죠. 프랭크 교수가 리타를 사랑한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아름다운 여자 갈라테아를 조각한 뒤 그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굳이 나이 많은 지적인 남자 프랭크 교수와 나이 어린 지적 능력이 한수 아래인 여자 미용사 리타의 사랑 이야기라고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비슷한 이야기인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히긴스 교수는 길거리에서 꽃 파는 여자인 일라이자 토리틀에게 개인교습을 해주다가 결국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맙니다). 그런 플롯은 지금의 시대상에 맞지도 않고요. 물론 이 작품에서도 맨 마지막에 프랭크 교수가 리타에게 프러포즈나 다름없는 제안인 호주에 같이 가자고 하긴 합니다. 하지만 과연 리타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리타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에 한 표를 걸겠습니다. 하여튼 그냥 그 상태에서 열린 결말로 끝냅니다.

근데 저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리타와 같은 그런 멋진 캐릭터를 만들었을까요? 저자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저자인 윌리 러셀Willy Russell은 1974년 런던비평가상, 1984년 골든 글로브상, 1985년 이보르노벨르상을 수상한 실력 있는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입니다. 그는 영국 리버풀 근교 위스톤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용사, 창고 노동자, 포크송 작곡가, 가수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관념들을 뒤집는 통찰력 넘치는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습니다. 그는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복잡 미묘한 심리와 욕망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이 작품 『리타 길들이기』는 저자가 실제로 6년간 미용사로 일하면서 야간교육대학에 다니면서 시와 노래가사를 쓰던 경험담입니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인 셈이죠. 따라서 가난한 노동자 계층의 한 사람이 자아를 찾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낮에는 일하면서 밤에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이야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자들이 못 다 한 공부에 대한 미련이 더 많은가 봐요. 우리나라의 김밥 할머니들이 유독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곳들을 다 제쳐주고 돈이 너무 많아 재벌이나 다름없는 대학에 기부하는 걸 보면요.

누군가에게 종속되거나 지배당하지 않고 홀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사랑을 다룬 책들을 읽다 보면 자기 인식과 자부심이 높아야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프랭크 교수와 리타가 스승과 제자 관계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랭크 교수와 리타는 수업을 해나가면서 차츰 가까워져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됩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 삐걱거리며 갈등을 겪게 되죠. 그건 프랭크 교수가 변해가는 리타를 탐탁지 않아 하기 때문입니다. 프랭크 교수는 리타가 책을 읽고 대학생들과 토론을 하면서 점차 자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안해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불안은 초반부 리타의 남편이 리타가 공부를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리타의 남편은 리타가 공부를 하면서 독립심을 키우고 자기주장을 하게 될까봐 불안해하다가 결국은 리타를 쫓아내버리잖아요.
진정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누가 누구에게 지배되거나 종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홀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리타 역시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해야만 합니다. 무식한 남편의 지배에서 벗어나 학식 있는 프랭크 교수의 지배에 들어간다는 것이 발전은 아니니까요. 정신적 독립을 할 수 있어야 진정 제대로 공부하고 교육받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랭크 교수의 교육은 어느 정도 성공한 셈입니다. 리타는 인생이란 험난한 길을 향해 독립적인 첫발을 과감하게 내딛었으니까요.

이 작품은 1980년 6월 런던 코벤트 가든의 웨어하우스 극장에서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 의해 초연됐습니다. 첫 공연은 큰 인기를 얻어 같은 해 9월에는 피카딜리 극장으로 옮겨 3년 동안 장기공연을 했고요. 1984년 콜롬비아 영화사에 의해 영화화도 됐습니다. 이후 3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 일본 등 12개국에서 계속 공연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2002년 영국 리버풀의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을 할 때는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개작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에 윤주상, 최화정, 이승철 주연으로 첫 공연된 후 1994년 앵콜 공연과 1997년 전도연 주연 공연과 2004년 이태란 주연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번 연극 열전2의 세 번째 작품인 「리타 길들이기」도 1980년 6월 초연된 버전과 2002년에 새롭게 개작된 버전을 모두 공연하고 있습니다. 최화정 윤주상 팀은 초연 대본으로 공연하고 이승비 박용수 팀은 개작 대본으로 공연했습니다. 그래서 두 팀의 공연은 각각 다른 작품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죠.

자, 저는 이 연극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책장 정리를 했습니다. 그동안 저 높은 곳에 처박아두었던 먼지 쌓인 시집과 세계문학을 손이 잘 닿는 곳에 꽂아두었죠.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다시 펼쳐서 읽어보려고요. 뭐, 분명히 앞으로도 계속 어리석은 일들을 저지르고 나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자학할 게 뻔해요. 그때마다 다시 펼쳐서 읽어보려고요. 인생의 조언을 구하고 정신 차리고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어보려고요.
이 세상에 시, 소설, 연극 그리고 예술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는 분명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똑똑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한 지혜와 지식을 배웠기에 또 거기다가 더 새로운 지혜와 지식을 보탤 수 있답니다. 그게 모두 시, 소설, 연극 그리고 예술 덕택이지요.
오늘 아침에는 분명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깨어난 거겠죠.

PS. 내친김에 후속작으로 「프랭크 길들이기」도 만들어주세요! 프랭크 교수 역을 맡았던 박용수가 연극의 프로그램 북 안 배우의 말에서 프랭크에게 말합니다. “근데 당신 참 못났어. 그렇게 엄청난 인문학 공부를 하고서도 그렇게밖에 못살아?”
머릿속에 책만 집어넣은 지식인들이란! 그렇게 엄청난 인문학 공부를 하고도 인생을 그런 식으로 살다니요! 도대체가 살아 있는 펄떡이는 이해와 공감이 부족합니다. 생활의 지혜란 하나도 없는 박제된 지식일 뿐이죠. 리타와 비교해 프랭크 교수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무능력합니까? 리타에게 진짜 인생에 대해 배우는 ‘(호주에서) 프랭크 길들이기’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조재현 프로그래머님, 부탁해요!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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