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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을 무서워하는 건 딱 두 부류뿐입니다. 너무 많이 가진 자. 너무 많이 휘두르는 자. 문제는 주제파악 못한 과한 욕심이 만든 ‘너무 많이’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도둑이 무서워서 각종 첨단장비를 동원한 경비업체에 가입하고 경호원들을 동원하지요. 남들보다 많이 가진 것들을 빼앗길까봐 밤에도 두 발 뻗고 잠도 못 자고 전전긍긍해 하고요. 뭐, 가난한 소시민들이나 갑남을녀 평범한 사람들은 도둑맞을 것도 없고 해서 도둑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홍길동이나 임꺽정처럼 민중의 사랑을 받는 도둑들도 있었고요. 그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하고 통쾌한지요. 웃음이 저절로 납니다.
우리 시대 민중의 심리타점에 정조준해서 쏜 날카로운 언어의 화살! 이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 앞에는 항상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3초마다 웃음이 터지는 정말 웃기는 연극’ 이번 공연에서도 그 수식어는 제값을 했습니다. 너무 웃다가 배꼽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끝내주게 웃깁니다. 다 웃고 나면 속이 확 풀리고요. 배우들과 혼연일체가 돼 웃다 보니 함께 공연을 보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공연이 끝나고 헤어질 때는 아쉬웠습니다. 요즘 국제정세도 어지럽고 시국도 어수선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갑갑한 일들도 많죠. 이 연극 보면 한방에 날아갈 겁니다. 특히나 그 날카로운 언어의 화살은 우리의 심리 타점에 정 조준돼 있었습니다. 심리타점이란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합니다. 이 연극은 우리의 심리타점, 즉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정조준해서 쏘아 맞히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의 가려운 곳을 박박 긁어주지요. 우리의 마음을 어쩜 그렇게도 잘 알고 콕콕 집어서 이야기하고 비판해내는지요.
너무 오랜만에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나 다루는 작품이 아닌 사회를 정말 제대로 비판하는 눈빛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멋진 작품을 만났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너무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연극이란 게 이런 맛 때문에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잘못된 것들을 불러다 야단치고 구린 놈들을 맘껏 희화화시켜 비웃어주고요.
고희를 맞은 늘근도둑과 환갑을 맞은 덜 늘근도둑은 인생의 절반 정도를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그들의 죄라고 해봤자 생계형 자질구레한 것들이지요. 공문서 위조라고 해봐야 식권 위조이고 도둑질이라고 해봤자 마늘 몇 개 도둑질한 거고요. 사실 도둑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 정도의 도둑질은 다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교통회수권 반으로 잘라서 두 번 사용하고 과수원에 가서 과일 서리하고요. 하여튼 그래도 그들은 명색이 도둑이니 감옥에서 나온 뒤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도둑질을 하러 간 겁니다. 노후대책용이지요. 근데 그곳은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 털기에는 아주 적당한 곳입니다. ‘그분’의 개인 미술관에 들어갔으니까요. ‘그분’은 너무나 엄청난 권력을 누리고 너무나 많은 돈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그 미술관에는 유명 미술작품들이 널려 있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어리바리 도둑들은 그 미술작품이 얼마나 값어치가 나가는 건지 전혀 모릅니다. 금고처럼 생긴 미술작품 하나를 금고라고 착각하고는 그 안에서 돈이나 꺼내갈 생각이고요. 도둑들이 미술작품을 금고라고 착각하는 것도 정말로 한심하고 웃기는 일이고요. 거기다 아직 돈이 생긴 것도 아닌데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개가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술 한잔하다가 한때 잘나가던 시절 얘기에 빠져버리고 완전 취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두 도둑은 애초의 목표를 잊어버리고 옥신각신하다가 그만 경비견에게 걸려 수사관의 심문을 받게 됩니다. 워낙 대단한 ‘그분’의 미술관에 잠입했으니 별 볼일 없는 잡범이 아닌 무언가 불손한 의도가 있을 거라고 의심받고 특별 취조를 당합니다. 있지도 않은 배후를 불라고 윽박지르고 혹시 빨갱이가 아니냐고 추궁을 받게 되고 그러한 윽박지름과 추궁에 한심하고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해서 관객들을 시원한 폭소의 세계로 이끌어갑니다. 뭐, 또 다른 형태의 우문현답이죠. 개 짖는 소리에는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대답이 딱이니까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도둑 같지 않은 도둑입니다. 도둑보다는 무슨 신선들 같습니다. 일부러 행색을 초라하게 하고는 세상 구경하러 내려온 신선들 말입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 얼마나 멋진 촌천살인 풍자의 대가들인가요? 사회를 한눈에 통찰해는 데도 귀신같고요. 그 정도를 하려면 젊은 도둑으로는 택도 없습니다. 늘근도둑이라야 가능한 거죠. 늙었다는 것은 지혜롭다는 의미잖아요. 우리가 아주 예전 공동체를 이루고 살 때는 나이 많은 분들은 가장 지혜로운 분들로 대접받았잖아요. 무슨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 늙은 분들에게 찾아가 조언과 자문을 구했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 짖는 개는 누구를 상징하는 걸까요? 늘근도둑과 덜 늘근도둑이 붙잡혀서 수사를 받을 때 수사관의 소리가 개 짖는 소리로 환치됩니다. 결국 그분의 미술관을 지키는 개나 수사관 등은 국가 권력 기구 혹은 권력자를 의미합니다. ‘그분’으로 상징되는 지배계층에 대한 칼날 같은 비판을 담고 있지요. 이 연극이 한참 전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고 그 비판은 유효합니다.
보조석까지 매진! 유료 객석점유율 104퍼센트 기록! 재 앙코르 공연 확정! 이 공연이 너무 잘된다고 난리입니다. 「늘근도둑 이야기는」2007년 1월 4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연일 매진행렬을 이어가고 있고 보조석까지 없어서 난리였습니다. 공연 비수기인 시기에 소극장 연극으로서는 놀라운 일이었지요.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많은 화제가 됐습니다. 한솔원더스페이스(구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 극장) 184석의 정좌석을 모두 채우고 보조석까지 매진되는(유료 객석 점유율 104퍼센트) 기록을 세웠으니까요.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3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앙코르 공연을 시작했는데도 그 인기가 식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시 재 앙코르 공연이 예정돼 있을 정도입니다. 그건데 공연이 너무 잘되는 것을 마냥 좋아만 해도 되는 건가요?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고 희화화하는 것이 대중적으로 크게 각광받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 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뭐, 지금 이 사회가 문제가 많긴 많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을 통해 조금이라도 그 문제점을 인식해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이 공연은 더 잘돼야 합니다. 노련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현란하고 위트 넘치는 애드립이 끝내줍니다. 아직도 못 보셨다면 서두르세요. 못 보신 거 후회할 거예요.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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