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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in] 가시를 뽑는 남자 ‘김만석’,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고백은 어렵다. 코흘리개 시절, 아무리 졸라도 사주지 않는 과자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 화장대 위에 쪼로록 흩어져 있는 빛나는 동전들을 엄마 몰래 슬쩍 해본 경험이 있는가. ‘아무도 모르겠지’하고 동전들 사이에서 제일 후진 세 개를 의기양양하게 골라 집어 들고 구멍가게로 달려가 찜해놓은 과자를 산 적 다들 있지 않은가. 용케 들키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에는 동전을 훔친 것이 발각되어 눈물 쏙 빠지게 혼났던 추억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처음엔 절대 훔치지 않았다고 잡아떼다가도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에 백기를 들고 마침내는 고백한다. 허나 그런 어린 날의 귀염성 짙은 자백도 ‘한 고집’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시간이 한 65년 쯤 더 흘렀지만 그 천성적인 고집을 꺾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바로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76세의 노인 ‘김만석’이다.

-이상하게 꼬였네 ‘김만석’ 할아버지
‘이상하게 생겼네’로 시작하는 아이스바의 광고 송을 기억하는가. 기억하는 사람은 광고 속에서 만화 ‘고인돌 가족’의 원시인 캐릭터들이 나와 아이스바와 함께 몸을 배배 꼬던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에는 그 원시인의 요사스런 몸놀림과 버금가는 유별난 성격의 할아버지 ‘김만석’이 등장한다. 우유 배달을 하는 ‘김만석’은 우유 상자들을 오토바이에 싣고 비탈길을 오르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 그는 평소 그의 성격대로 우선 한바탕 욕을 퍼붓는다. 그리고 장애물 확인차 오토바이에서 내려 넘어진 할머니‘송씨’와 만나게 된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런 욕을 듣고서 그냥 넘길 수는 없었을 텐데 유순한 ‘송씨’는 그저 ‘괜찮아요’를 연발하며 자리를 뜨고 싶어 한다. 그들이 각자 이 풍진 세상 속에서 어떠한 자세로 세월을 보내왔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꼬인 성격은 어딜 가도 불화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서 그는 남들 보기에 가당치도 않은 러브러브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왠지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주다 엮이는 남녀의 뻔한 연애 스토리와 닮은 것도 같지만 사랑의 시작이라는 게 원래 별스럽지 않은 일이 별스럽게 다가오는 순간임을 관객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꽃분홍 핀에 담긴 곱다란 고백
나이가 들면 점점 아이로 돌아간다고 하던가. ‘김만석’이 그냥 ‘송씨’가 아닌 ‘송이뿐’여사에게 고백하면서 최초로 선물한 물건은 꽃분홍색 머리핀이었다. 요즘은 중학생 아이들도 여가 시간에는 극장에서 최신영화를 보고 생일 선물을 할 때는 옷, 가방, 신발 같은 중,고가품을 산다. 그런데 우리의 성질 급한 ‘김만석’은 다음날 반지가게가 문 여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다. 동네에 문 열은 액세서리 가게를 뒤져서 예닐곱 살 여자 아이의 가냘픈 머리칼 위에 얹어지면 딱 좋을 꽃분홍색 똑딱핀을 샀다. 무대에는 노인 ‘김만석’은 오간데 없고 대신 소년 ‘김만석’이 우뚝 서 있다. ‘송이뿐’의 얼굴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등 뒤로 건내는 고백도 곱다란 분홍빛이다. 관객들은 신혼 첫 날밤을 엿보는 동네 주민들이라도 된 듯 장난기 가득 고인 웃음을 삼키며 볼을 움찔거린다.

- 나 ‘김만석’ 당신의 가시를 뽑아드립니다
심장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 앞에서는 천하의 몹쓸 위인도 천사의 얼굴을 갖게 된다. ‘누구 맘대로 자꾸 쿵쾅거리래!’ 자기 심장에다 대고도 고함을 칠 것 같은 ‘김만석’은 시도때도 없이 자신의 심장을 노크하는 ‘송이뿐’의 포로가 된 상태이다. 쿵쾅거림을 견디다 못해 ‘송이뿐’이 사는 셋집의 낡은 창문에 러브레터를 던지는 그의 심정은 오죽하랴. 칠십 평생을 악착같이 살아왔어도 한치 앞에 놓인 사랑이라는 강을 거스르는 기술은 터득하지 못했나 보다. 심장의 정직한 울림을 억누르지 못하는 ‘김만석’의 발걸음은 정인인 ‘송이뿐’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여기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까칠한 노인 ‘김만석’의 마음의 가시는 큐피드의 화살에 의해 깔끔하게 제거된다. 가시밭길 같은 인생의 길을 걷는 것도 서러운데 우리는 가시가 도친 말과 행동으로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일생의 동반자를 만나려 한다면 일단 내가 다른 사람의 몸에 박힌 가시를 뽑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은 내 몸에 박힌 가시를 뽑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욕쟁이 할배 ‘김만석’의 가시 뽑기 대작전은 관객들에게 때로는 해맑은 웃음을 때로는 목이 매이는 눈물을 선사한다.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월을 잇는다. 그 세월은 돌고 돌아 사람들의 얼굴에 모진 길을 아로 새긴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게 되었을 때 야박한 세월을 원망하기보다는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을 보며 허허 속없는 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도록 마음 밭을 가꿔야겠다. ‘김만석’ 할아버지의 이유 있는 꽃분홍빛 속앓이가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찾는 모든 관객들에게 퍽퍽한 세상살이의 촉촉한 꽃비로 바뀌어 내려지기를 바란다.


연분홍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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