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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1908년 11월 15일 원각사에서 공연된 이인직의 신연극 「은세계」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근현대극이 뿌리 내린 지 10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에 100주년을 기념 행사의 개막작으로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1993년 6월 18~24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됐던 「남사당의 하늘」을 선정해 2008년 3월 27~4월 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재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새가 깃털을 통해 하늘을 날 듯 우리는 남사당으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예인들을 통해 하늘에 오를 것이다! 한국연극 100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남사당의 하늘이 선정됐다는 것도 그 상징하는 바가 남다릅니다. 이 작품은 미천한 신분으로 평생 무시와 모멸을 당하면서도 민중의 정서를 대변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던 경기도 안성 먹뱅이 남사당패를 그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바우덕이는 역사상 유일한 남사당 꼭두쇠(우두머리)이자 줄타기의 달인이었던 실존 인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남사당패의 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설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춤), 덜미(꼭두각시놀음)의 여섯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남사당패는 재워주고 먹여주기만 하면 더 이상 돈을 받지 않고도 밤새워 놀면서 민중의 한과 설움과 꿈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민중과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놀이 안에는 민중 지향 입장에서 기존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패러디를 내용이 담겨 있었고요. 이번에 공연되는 「남사당의 하늘」 역시 안성 먹뱅이 남사당패를 그 모델로 하고 있기에 실제로 남사당패의 놀이 중 어름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 무대에서 재현됩니다. 극단 미추 단원들과 연희단 버들소리 단원들과 국가중요무형문화제 전수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초연 당시에는 남사당놀이의 철저한 고증과 완벽한 재현을 위해 출연자 전원이 현존하는 유일한 남사당패인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6개월 이상 기예를 전수받았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극단 미추의 창단 동인이자 초연 때 공연했던 김성녀(바우덕이), 윤문식(곰뱅이쇠), 김종엽(김노인), 정태화(경화)와 1992년 입단한 한혜수(어린 덕이)가 그대로 캐스팅됐고 중앙국악관현악단 등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제작 역시 당대 대한민국 최고의 장인들이 다 모였습니다. 윤대성 극작과 손진택 연출을 비롯해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가 국수호의 안무와 예술 무당이라 불리는 박범훈 작곡입니다. 연극판에서 뼈가 굵은 관록 있는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와 장구, 북, 꽹과리, 소고, 태평소, 피리 등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신명나게 하는 우리 농악과 굿거리와 춤이 흥을 돋웁니다.
여전히 서정시가 어울리지 않는 이 시대에 예술가로 산다는 것! 이 작품의 대본은 원래 1980년대에 씌어졌으나 오랫동안 공연되지 못하고 있다가 1990년대 들어서 뜻밖에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비로소 1993년에 무대에 오른 작품입니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었다면 대본으로만 남아 있었을지 몰랐던 작품이지요. 바로 그 작품이 한국연극 100년 기념 개막작으로 선정되기까지 했습니다. 막이 오르고 처연한 곡조에 따라 남사당패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고단하고 힘든 인생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남사당패의 모습이 눈에 아프게 들어옵니다. 그리고 우리 악기와 우리 가락으로 들려오는 귀에 익은 아름다운 선율들은 마음에 아프게 깊게 스며듭니다. 이어 어린 덕이가 꼭두쇠 김노인에게 어름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꾸만 줄을 타는 것이 무섭다고 하면서 안 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김노인이 대답합니다. “하늘이 받아주는 날까지 육신의 재주를 다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위로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우리 남사당인 게여.” 김노인의 말은 이 시대에 예술가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아마 어쩌면 그 사명으로부터 그 운명으로부터 도망가서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남사당패가 된 이상 예술가로 삶을 살기 시작한 순간, 어깨에 무겁게 지워진 사명감과 운명은 묵묵히 감당해내야 할 몫이 되고 맙니다. 지금 이 시대의 예술가들 역시 아주 오래전 남사당패가 해왔던 것처럼 민중의 슬픔과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힘나게 해줄 예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예술가의 운명이고요. 극작가 윤대성은 ‘저자의 말’에서 “내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전통유산으로 남사당이란 광대패거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광대란 누구인가? 더 나아가서 예술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란 물음을 묻기 위한 것이다. 세속적인 편안한 삶을 외면하고 고난의 삶을 택한 사람들, 놀이판에만 서면 신명이 하는 사람들, 세속적인 인연에 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 이들이 바로 광대이고 오늘날의 배우가 아닐까?”라고 했습니다. 극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충실하게 예술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술가란 누구인가?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예인의 삶을 소재로 예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담아낸 작품! 어느 새 장면이 전환되고 바우덕이는 줄타기의 고수로 성장했습니다. 바우덕이는 하늘 가까이 놓인 줄 위에서 줄을 탑니다.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다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바우덕이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육체를 단련해서 최고의 장인이 되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침내 하늘에 오르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예술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체득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한곳에 정착해서 편안하게 살라고 제의하는 부잣집 도련님의 구애를 뿌리치고 남사당패에서 머물기 위해 나이 많은 경화에게 시집을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 최초로 꼭두쇠가 됩니다. 그녀가 꼭두쇠가 되던 날 남사당패 식구들, 아니 이 나라 모든 예인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하늘나라의 사람이었음을 애써 믿읍시다. 그리고 다짐합시다. 남들이 우리를 비웃으면 우린 더 크게 웃읍시다. 우리가 배고프고 고달프면 주린 배를 신명으로 채웁시다. 그래도 서럽고 괴로우면 징을 치고 꽹과리를 울리고 신명으로 신명으로 한바탕 놀아봅시다.”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의 현실적 삶은 비참하고 비루합니다. 높은 예술적 경지를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요. 더욱이 남사당패가 추구했던 우리 가락, 우리 신명, 우리 춤, 우리 놀이는 개화바람에 휩쓸려 현상 유지 보존하기조차 힘들어집니다.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요. 하지만 바우덕이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켜나갑니다. 그리고 회의주의와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이 나라 지식인 젊은이 봉섭이에게 민중의 삶과 함께하는 예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한밤중에 줄을 타다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녀는 죽으면서도 “남사당을 없애지 말아주세요”라는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그녀의 숭고한 희생과 마지막 당부는 화인(火印)처럼 우리 마음에 새겨집니다. 슬픔에 잠겨 있던 남사당패는 곧 정신을 차리고 함께 힘을 합쳐 바우덕이가 저승 가는 길에 춤추며 가라고 장단을 맞춥니다. 풍물소리는 슬픈 곡조에서 어느덧 흥겨운 곡조로 바뀌고 바우덕이는 하늘로 승천합니다. 공연을 보는 동안 숭고한 비장미와 진한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객들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집중했고 객석의 공기는 몰입이 가져온 긴장으로 팽팽했습니다. 힘 있는 박수와 열광과 휘파람이 이어졌고요. 끝으로 연출을 맡았던 손진책의 ‘연출의 글’ 중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예술이, 연극이 구원을 위한 기도이며 예술가는, 연극인이 바로 해당 분야의 사제로 서품을 받은 성직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4년 전, 초연되었던 「남사당의 하늘」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연극을 하겠다는 나의 결심을 확인하고 또한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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