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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민자씨의 황금시대’, 반영구적인 친구 하나 부여받다

 

 

내 인생에 황금시대가 있었던가. 아니면 아직 안 온 것인가. 고된 하루에 잠시나마 위안이 되는 이 ‘황금시대’라는 단어에 살짝 미소를 지어본다. 약간의 과장됨이 있기는 하지만 또, 그래서 설레기도 한다. 황금시대, 내게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어보면서 말이다.
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는 10년 전 딸을 버리고 간 카바레가수 박민자가 딸의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배우 양희경과 김태형 작가, 그리고 파임커뮤니케이션의 야심찬 창작 작품이다. ‘엄마’스럽지 않은 엄마 박민자와 ‘딸’스럽지 않은 딸 홍미아, 그리고 4차원 완소남 철수, 눈물 나는 밑바닥 인생 탈출기 사라와 남실장의 인생이야기다. 남의 이야기라고? 천만에, 가족을 생각했을 때 가슴 먹먹하지 않은 사람 누가 있는가?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사람의 가슴팍을 파고드는 속 깊은 햇살 한 줌 같다. 눈물 나게 따뜻한 가족 아니, 내 동반자 이야기 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다.


인생, 그 숲은 입구부터 가파르다

어떻게 이렇게 아프고 고단할까. 여기 모인 가족, 친구, 직장동료들은 모두 다 아프다. 인생이 다치고 곪았다. 손톱만한 밴드하나로 겨우겨우 흐르는 피를 막는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인생이라는 숲은 깊고 왠지 나에게만 더 가파른 것 같다. 되돌아가자니 눈앞이 캄캄하고 무작정 전진하자니 여기저기 두려움이 앞선다. 이미 내 마음은 만신창이인데 말이다.
여기 ‘상처’하면 할 말 많은 인생들 다 모였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저마다 각각 고단한 인생을 쉬어가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민자’와 ‘철수’에게는 ‘미아’가, ‘미아’에게는 꿈이, ‘사라’에게는 ‘남실장’이 있다. 그것이 이 작품의 구심점이다. 그렇다, 아무리 힘든 그 삶도 살아가야할 의미가 누구에게나 있는 법. 이 작품은 가장 보편적인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자씨의 황금시대’는 마지막에 관객들에게 상큼 발랄한 봄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도 쉬어갈 만한 곳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물론 이미 그 대답은 관객들이 극 속에서 했다.


엄마 부대, 객석을 점령하다

엄마, 그 두 글자에는 특유의 기운이 있다. 여자이면서도 강한 그 이름 엄마다. '미아'는 ‘민자’에게 결코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줌마!”라며 툭 쏘는 한마디에 그동안 쌓인 설움이 복받친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엄마, 그 불가항력 두 글자에 무대와 객석은 서로 몸을 비빈다.

‘민자씨의 황금시대’ 객석엔 우리시대 엄마들이 많이 모였다. 자식과 갈등 없는 부모 어디 있는가? ‘민자씨’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이해하는 그들의 눈물 한 방울이 바로 진한 감흥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그 힘은 아직 살아있다. 우리들의 엄마 아빠로 가득 찬 객석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먹고 살기 바빠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들과 소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민자씨’의 철없는 인생이 우리 엄마 아빠를 움직이고 있다.


균형, 작품하나를 새로이 짠다

작품의 사실감과 리얼함에 관객은 웃음을 짓는다. 물론 양희경의 ‘양희경다운’ 연기가 가장 큰 빛을 발하였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균형이다. 양희경은 혼자 돋보이지 않는다. 딸 ‘미아’역의 심이영은 가장 많은 감정을 표출하는 배역이다. 그만큼 에너지를 쏟으며 성숙함을 보였다. 물론 신인인 만큼 다른 배우들에 비해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아쉽다. 하지만 그녀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오랫동안 문을 닫고 살았을 멍울진 꿈의 속내가 보인다.

이 작품은 무겁지 않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감상이 없다. 아픔을 강요하고 감동을 강요하는 불편함 없이 편안하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를 꾸려나가기 위해 선택한 소소한 재료들, 가령 분장실의 뿌연 거울, 이모티콘 문자, 비누방울, 화장실이라는 공간, 발톱깍기, 그리고 간결하고 깔끔한 피아노 음악, 이 모든 것이 제 몸을 풀어 자식을 채우는 우리들의 ‘엄마’와 닮았다. 이런 것들은 TV나 영화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다.

이렇듯이 관객들이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아주 사소한 곳에 있다. 이런 디테일함은 마음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이들의 대화처럼 꾸밈이 없고 투명하다. (물론, 갑자기 퀸의 Don't stop me now가 흘러나올 땐 깜짝 놀라긴 했다.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지 찾게 되었다.)


“청춘, 나를 청춘이라 불러주세요”

극 중 ‘철수’의 꿈은 시인이다. 이 독특한 청년은 자신을 청춘이라 불러달란다. 이 작품은 ‘철수’의 이런 모습에 작품의 대부분을 담았다. 그러고 보니 대사하나하나가 시 같다. 한 글자 한 글자 함축적이고 은유적이며 또, 아침 같고 저녁 같다. 툭 던지는 잡담 같은 이들의 대화는 우리의 인생을 길들인다. 불타고 식으면서 이어지는 엄마의 못 다한 꿈처럼 말이다.

“내 몸은 아직 잎도 돋지 않았는데 파란 꽃이 먼저 피었네”, 철수의 시는 한 생명을 살린다.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었지만 그만큼 또 울기도 했다. 그렇다. 이 작품은 사람들의 이해와 용서와 위안을 구할 진솔한 멋진 시 한 편 이었다.


가족, 당신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형광등이 켜질 때 왜 깜박거리는지 아는가? 정답은 바로 발열이 아니라 방전에 의한 발광이기 때문이다. 우리사이 흐르는 전압 높은 전류, 그 희생의 보상은 빛이다. 인간은 혼자 울지 못한다. 누군가와 부딪히고 깨진다. 그렇기에 인생에 완전함이란 없다. 하지만 그 깜박거리는 사이 우리들의 눈부신 ‘황금시대’가 성큼 가까이 온다. 그 중심에 가족이 있다. ‘가족, 당신의 의미는 무엇인가요?’하고 이 작품이 묻는다. 그리고 곧 대답한다. ‘의미? 그런 건 없어. 그냥 가족은 가족이야’라고.

“우리, ‘딸과 엄마’ 말고 친구하자”는 민자의 말이 이 작품을 훌륭하게 마무리 한다. 우리가 원하는, 그러나 유치하지 않은 결말이다. 바로 그 한마디로 친근한 위안이 되었다. 숨 찬 인생 숨고르기, 올 봄 우리 공연계는 이 푸짐한 민자씨愛 빠졌다.


공정임기자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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