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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늘근도둑이야기, 그 주름진 웃음 속에서 세상사를 읽는다

 

 

한국 연극 100년, 강산이 바뀌어도 10번은 바뀌었을 시간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우리 곁에 다시 찾아온 ‘늘근도둑이야기’처럼 무대 위에서 만나는 인생의 진중함이다. 89년 초연부터 지금까지 명계남, 유오성 등이 출연해 그동안 '정말 웃기는 연극‘의 역사를 세워왔다. 2008년 다시 돌아온 ’늘근도둑이야기‘, 이번에는 명품 배우 박철민, 정경호, 유민상 등이 합세했다.

도둑인데다가 늙었다!
이 작품 속 어수룩한 두 명의 늙은 도둑은 한국이 지난 시간동안 겪어온 불운의 세월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려낸다. 게다가 ‘늙은도둑’이 아닌 ‘늘근도둑’이다. 하지만 한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틀린 받침이 그리 웃긴 일만은 아니다. 그들은 소시민 중에 소시민, 아니 그 ‘시민’의 범주에 속하지도 못했지만 그들이야 말로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다.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소득재분배를(?)
이 두 늙은 도둑은 말도 안 되는 엉뚱함으로 오히려 대한민국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이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가진 자들이 아니라서 더 큰 박수를 받는다. 대통령만 9번 모셨다는 ‘더 늙은 도둑’, 자신은 ‘사기 전문’이라는 ‘덜 늙은 도둑’, 무슨 홍길동이라도 된 양 허풍을 떨지만 밉지 않다. 마치 그들이 힘없는 소시민을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그럴 생각도, 그럴 이유도 없다, 그냥 그대로 존재하는 힘없는(?) ‘도둑’일 뿐이다. 요리조리 심문을 피해가는 도둑이나 좀도둑을 순식간에 간첩으로 모는 경찰관이나 모두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친구이자 이웃이다.

‘알다’와 ‘모르다’
도둑치고는 참 못났다. 도둑질하러 들어가서 음주에 담배까지, 이들이 ‘도둑’으로 한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마냥 처음 하는 ‘도둑질’인양 어색하고 서투르다. 그것이 진정한 ‘블랙코미디’인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모르면서 아는 것, 스스로가 알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냥 살아온 시간 자체가 그들의 ‘아는 것’이 되었다.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알게 된 것들, 우리는 그들의 그것을 단순히 ‘지식’이라 부르지 않는다.

“내가 왕년에 잘 나갈 때는..”
어릴 적 허풍쟁이 할아버지에게 듣던 옛날이야기 같다. 피식하는 웃음을 주고 왠지 믿음이 안가지만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전과전적을 읊어대며 무슨 훈장인양 과거가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들이 전과자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세상에는 원래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는 ‘성선설’이 문득 생각난다.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그들은 인생에 ‘별’하나 단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 건’ 해서 남은여생 편안하게 살고자 했던 이들의 꿈(?)은 그야말로 고단했던 인생의 보상일지도 모른다. ‘사는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덜 늙은 도둑’의 신세 한탄이 그냥 웃고 넘길 대사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웃음 뒤에 온다. 그 진정성
극의 상황은 80년대 한국지만 배우들의 애드리브는 현재의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이처럼 가벼운 표현이 진중함을 가지는 작품은 별로 없을 듯 싶다, 치밀한 드라마가 있는 것도, 머릿속을 확 하고 때리는 명대사도, 화려한 볼거리도 없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 가벼움에 적잖은 동요를 한다.
단 세 명의 배우는 무대 위에서 관객의 반응을 직시하고 여유를 부린다. 실수를 하고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 엉뚱하고 발랄한 노련미는 배우들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현재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누비는 배우 ‘박철민’의 영향은 매우 컸다. 하지만 그의 이름값은 객석에서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톡톡히 치러진다. 관객들은 그것을 충분히 즐긴다.
값싼 소주와 담배를 세상의 낙으로 아는 늙은 도둑, 아니, ‘늘근 도둑’, 관객들은 그 주름진 웃음 속에서 세상사를 읽는다.


공정임기자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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