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이다’는 지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시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랜드 피날레를 알리는 보도에 많은 뮤지컬 매니아의 아쉬움에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것이 멈추었고 달라졌다. 2022년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버전의 뮤지컬 ‘아이다’를 다시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선사하는 뮤지컬! 모든 장면이 예술적이고 압도적이다! ’라는 찬사를 받으며 뮤지컬 본고장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뮤지컬 중 한편으로 열렬한 호응을 받았던 작품이기에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그동안 총 5번의 시즌으로 856회, 92만 명의 누적 관람객 기록으로 대한민국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뮤지컬 ‘아이다’. 정말이지 어쩌면 이번이야말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뮤지컬 ‘아이다’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한국 뮤지컬 역사상 최초로 브로드웨이 공연 무대 메커니즘을 100% 공수해 재현했던 최첨단 무대. 40톤 컨테이너 9대 물량의 무대와 4주간의 셋업, 800여 벌의 의상과 60여 개의 통가발, 엄청난 수량의 조명기에서 내리쬐는 섬세하고 강렬한 아름다운 조명, 강인하고 섹시하며 비장함으로 어우러진 완벽한 안무, 무엇보다도 거장 엘톤 존과 팀라이스가 선사하는 모든 음악 장르를 섭렵한 다채롭고 아름다운, 강렬하고 호소력 있는 마법 같은 음악, 디드니 애니메이션을 무대 언어로 완벽 구현한 프로덕션의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다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꼭 뮤지컬 ‘덕후’가 아니더라도 진정 인생의 가장 큰 행운 중의 하나일 것이다.

뮤지컬 ‘아이다’는 현대 박물관의 이집트관, 고대왕국의 여왕이었던 암네리스가 이집트와 이웃 나라였던 누비아의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대의 역사적 투쟁과 그 안에서 꽃 피었던 사랑 이야기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이집트의 여왕이 될 ‘암네리스’, 이집트의 장군 훈남 ‘라다메스’, 당당한 포로이자 누비아 공주인 ‘아이다’ 이 세 사람에게, 거역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순간을 담았다. 

무대는 비장한 사랑 이야기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깔끔하고 완벽한 구조를 갖췄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파도를 넘어, 사랑의 덫에 얽히고 풀리며 팽팽한 긴박감으로 모든 순간을 숨죽이고 가슴 졸이게 한다. 꿈처럼 아름다운 순간들을 조명, 의상과 소품으로 완벽한 무대와 아름다운 미쟝센을 예술적 표현으로 방점을 찍어 낸다. 이를 구현한 최고의 배우들이 가세해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20세기 최정점의 뮤지컬 미학을 그려 낸다.

2019년 뮤지컬 ‘아이다’의 무대를 빛냈던, 관록과 정제된 내공의 완벽한 호흡의 배우들과 실력 있는 새로운 배우들이 합세해 다시 한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장한 사랑 이야기를 자신 있게 선보인다. 먼저 라다메스 역의 배우 최재림은 이미 한국에서 지존으로 통할 만큼 음악적 해석이나 가창에서는 이미 정평이 났다. 연기적 호흡을 가창에 붙여 연극적 상태의 캐릭터 호흡을 가창에 고스란히 묻어내면서 정확한 피치와 상대방과의 화성악적 디테일을 완벽한 음악적 브랜딩으로 끌어내는 그의 음악적 내공과 기량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뛰어나고 믿음직스럽다. 

최재림은 신념 있는 장군부터 사랑에 빠진 남자까지 매력적인 캐릭터의 변화를 구축해 낸다. 
저돌적인 열정뿐이던 장군에서 느닷없이 다가온 사랑의 기류를 간파한 후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 남자의 인간적인 고뇌의 변화를 누가 보더라도 감지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서서히 달라지는 음색과 표정, 몸태까지 변화하면서 연정으로 어쩔 줄 몰라 부정하듯, 여린 듯 소심하게 뱉어내다 마침내 어쩔 수 없이 자신과 하늘에 포효하듯 쏟아내는 음악적으로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에너지를 터트린다. 어떨 때는 누가 봐도 간지럽다가도 통쾌한 음악적 카타르시스로 덩달아 속 시원한 일탈을 경험하게 한다.

아이다 역의 배우 김수하는 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유독 눈에 띄는 명료한 딕션과 가창으로 차세대 뮤지컬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영국과 일본에서 뮤지컬 ‘미스사이공’을 통해 해외에서도 절대 꿀리지 않는 독보적인 실력파 뮤지컬 배우로 각인시켰고, 귀국해 ‘외쳐 조선’과 ‘렌트’로 놀라운 기량의 차창력과 연기를 보여주며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단번에 여자신인상에 이어 이듬해 곧바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모두가 놀랐고 누구나 인정한 신세대 독보적인 주역급 뮤지컬 배우로 급성장했다. 이번 ‘아이다’에서는 공주에서 노예로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의 불사조 역을 당차게 해내며 누구라도 인정할만한 찰진 가창력과 연기로 타이틀롤을 완벽하게 재창조해 냈다.

암네리스 역의 민경아 역시 주목하는 차세대 뮤지컬 배우에서 어느새 대극장 주역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작품마다 성실하게 본인만의 특출난 캐릭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암네리스 역을 맡아 여린 듯 당차고, 도도한 자태를 기본으로 애교 있고 사랑 넘치는 푼수기와 철부지 같은 모습에서 인생의 커다란 풍파를 겪고 난 후, 성숙한 듯하더니 주체하지 못할 분노와 배신의 충격에도 자비를 베풀 줄 아는 한없이 넉넉한 보살 같은 캐릭터를 표현한다. 무대 위 팔색조처럼 마치 모노드라마 하듯이 천연덕스럽게 작품의 중심에서 무지갯빛 호연으로 캐릭터를 구축했다.

조세르 역의 박성환 배우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초반 극의 중심인물로서 위엄과 더불어 다소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어이없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가 느닷없이 돌변하는 맹수 같은 연기적 스펙트럼을 집중과 선택을 통해 무한 활용해 아버지, 정치가의 천의 얼굴로 철벽 조연으로서의 중심을 잡아준다. 라다메스와 암네리스, 아이다의 줄을 잡고 당기고 놓는 키맨의 역할을 맛깔나게 구현했으며, 연기는 물론이고 캐릭터로서 그 나이대의 맞는 목소리 톤과 가창으로 작품의 중심을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역할을 섬세하고 완벽하게 구축했다.

뮤지컬 ‘아이다’는 창작진과 스태프의 세련된 무대 미쟝센과 최전방에서 만나는 주, 조역과 더불어 앙상블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은 최고의 열정과 세련된 기량의 프로덕션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디어 영상과 디지털 기술보다는 다소 아날로그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금세기 최고의 세련된 무대 미쟝센과 아트 뮤지컬 버전의 이번 뮤지컬 ‘아이다’를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포스트 코로나19 펜데믹의 예기치 못한 귀한 선물 같은 자리가 된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유희성 칼럼니스트  he2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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