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20주년 기념 초연작, 연극 몽연(夢戀)은 ‘사랑’과 '삶' 대한 한 남녀의 이야기를 깊은 무대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매일 밤 꿈 속에서 죽은 남편을 기다리는 한 여자를 통해 ‘죽음’이라는 단어의 재해석을 시도한다. 주인공 ‘인우’(임정은)는 너무도 사랑했지만 죽은 남편을 만나러 매일 밤 꿈을 꾼다. 하지만 꿈은 그녀가 바라는 대로 꾸어지지 않는데..
- 첼로, 인간과 가장 비슷한 소리
인간의 소리와 가장 비슷하다는 첼로의 음색은 따뜻함만을 품고 있지 않다. 마치 인간의 본성처럼 말이다. 지극히 철학적인 이 작품 속에서 첼로주자의 비중은 무척 크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작품의 중심에 서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모습으로 관객을 대한다. 첼로주자는 일종의 안내자 같다. 관객을 극 속으로 안내하기도하고 여주인공 ‘인우’를 꿈속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인우’의 분신처럼 늘 그녀를 맴돌고 함께하지만 섣불리 충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다르다. 편안한 음색으로 관객을 극 속으로 인도하기도 하며 거기에다 ‘가르침’의 역할을 더 한다. ‘죽음’을 통한 삶의 방식을 말이다.
- 인간의 환생, 인간은 인간을 낳고
‘인우’의 죽은 남편(이재훤)은 ‘죽음의 공간’에서 마태복음 1장을 반복해서 말한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이 생명이심을 알리기 위해 사도 마태가 생명 낳음의 신비를 알려주고 있는 부분이다. 성경책과 욕조뿐인 남편의 ‘공간’은 음산하기까지 하다. 물속을 걷는 듯 느리고 무게감이 느껴진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자 ‘남편’은 욕조에서 다음 생을 기다린다.
이 작품에서 생명의 탄생과 환생은 매우 밀착되어 있다. 인간의 ‘환생’은 불교에서 온 것으로 기독교에서의 ‘영생’과는 다른 개념이다. 환생과 마태복음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남편의 ‘공간’에서 ‘욕조’는 환생의 도구다. 엄마의 자궁 속처럼 편안하게 몸을 웅크려 앉으면서 다음 생을 기다리는 곳, 삶의 자궁과도 같다.
-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성찰
죽음과 삶, 전혀 공존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이 두 단어는 인간이 그것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어느 누가 삶의 반대말이 죽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은 죽어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사는 게 재미없어 죽음을 선택했던 사람들도 막상 저승의 문턱에 서서는 다시 간절히 살고자 한다. 죽음이후의 인간의 삶은 어떨까? 그것이 궁금하면서도 가보기는 싫다. 그 본성이 참으로 ‘인간’답다.
- 직설적 화법, 이들에게 사랑은 곧 삶
‘인우’의 달콤한 꿈은 새벽을 깨우는 닭과의 실랑이로 끝나버린다. ‘닭’의 출현은 직설적이다. 실생활과 꿈 속을 ‘닭 울음’으로 경계를 나누지만 그 표현은 지극히 만화적인 상상력이다. ‘닭’은 ‘인우’에게 충고하고, ‘인우’를 나무란다. 깊은 향내 가득한 이 작품은 많은 철학적 언어로 쓰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무척 간결하고 직설적인 화법이다.
-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아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이다. 여기서 이들의 ‘사랑’은 곧 ‘삶’이다. ‘인우’가 스스로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실은 그녀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꾸어 말하면 그 ‘일상’이 곧 ‘사랑’이라는 말이 된다. 이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는 그렇게 인간에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지금의 내 삶과 내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주고 있다. 이 작품은 아주 희미한 빛을 가졌다.
인우는 결국 남편을 따라 저승으로 가지만 남편을 만나지는 못한다. 그녀는 오히려 남편과 이승의 일들은 다 잊은 듯 하다. 이제는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제 그녀는 이승으로 다시 태어나기위해 긴 여행을 준비 중이다.
12월 8일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 공연
cast_임정은, 이재훤 등
공정임 kong24@hana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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