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돌아가겠어요.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고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돌아볼 틈도 없어요. 안녕, 세상이여. 안녕, 그로버즈 코너즈, 엄마, 아빠, 똑딱거리는 시계, 엄마의 해바라기, 맛있는 음식, 커피, 그리고 갓 다림질한 옷, 뜨거운 목욕, 잠자리에 드는 것,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아, 지구여, 네가 얼마나 멋진 곳인 줄 알았더라면...
고등학교 때였나.. 당시 가장 유행했던 우스갯소리 중 하나는 “지구를 떠나거라”였다. 이 말을 유행시킨 배추머리 개그맨이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정치, 사회적 세태를 논평한 후 항상 특유의 억양으로 “지만� 떠나킷鏶굡箚� 마무리 지으면 보는 사람들은 소리 내어 웃을 만큼 후련함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슬프고도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이 때 “지구를 떠나거라”라는 과거 유행어가 문득 떠올랐다. 실상 이 말은 그 안에 얼마나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는가...
몇 년 동안 집 주변으로 지하철 공사가 진행 중이라 깔끔했던 길의 기억을 잃었었다. 그런데 공사가 거의 끝나는 시점이다 보니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조금씩 정리가 되어 새 모습을 드러내는 주변을 목격할 수 있다. 거기 한 켠에 핀 5월의 장미가 산뜻함을 더한다. 아직까지는 내게 살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보다는 살아있기에 누리는 혜택이 감사와 기쁨을 준다. 도스도예프스키가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왕의 특사로 사형을 면한 실화는 퍽 유명하다. 이 이야기를 우연히 지하철 역사에 걸린 사랑의 편지라는 게시물에서 읽었다. 그리고 그 며칠 후 들고 다니던 책에서 또 읽게 되었다. 그 때문일까? 내게 주어진 삶이 새로운 시각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생명의 가치, 살아있다는 환희, 살아서 시절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음이 새삼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의 순간들이 모여서 삶이라는 큰 덩어리를 이룬다는 평범한 진리를 시시각각 잊어버린다. 큰 순간에 잡착한 나머지 반복되는 일상, 작은 순간의 소중함을 무시해 버린다. 일상의 소중함. 손튼 와일더의 <우리 읍내 Our Town>는 살아서 이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있음에 감사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얼마 전 우리가 만난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과 이 작품은 연극양식 면에서 대표적인 극장주의 작품으로 꼽힌다. 즉 관객에게 지금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현실과 마찬가지라는 환영(illusion)을 주는 대신 그들에게 연극을 하고 있는 중임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다시 사는 것이 연극이니 가능한 이유일 테다. 그래서 연극이 아닌 진짜 삶이 더욱 소중한 지도 모르겠지만.
현대 미국연극사에서 사실주의 연극과 비사실주의 연극이라는 두 개의 큰 흐름이 발견되는데 손튼 와일더(Thornton Wilder, 1897-1975)는 비사실적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빈 무대와 소품 생략, 마임을 활용하여 모든 것을 연기에 의존하고 있다. 즉 마치 바닥에 분필로 그려놓은 듯 구분된 등장인물의 영역(영화 <도그빌>을 보면 이런 수법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에서 배우들은 소품 없이 때와 장소를 암시하는 효과음에 의존하여 마임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가 이 작품의 초연에서 밝혔듯이 무대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대 위에 두 개의 울타리를 세웠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사실주의적 무대를 사용하지 않았다. 무대장치가 없음으로 해서 관객은 세트의 세부사항이 아닌 인생의 세부 사항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객석에 앉아 있던 배우들이 마을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신문배달 소년이 가상의 신물을 던지고, 아이들은 가상의 음식을 먹고, 조오지는 가상의 공을 던졌다가 받았다. 3막에 등장하는 죽은 사람들은 참을성 있게 평범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조문객을 가리고 있는 커다랗고 까만 우산이 장례식을 의미했다.
여기에 해설자, 극중 인물, 작가의 대변자로서 무대감독이 등장하여 극의 이해를 돕는다. 이러한 독창적 기법을 통해 손튼 와일더는 인간 삶의 영속성과 평범함의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일상적으로 행하는 행동을 제시하여 관객에게 공감하게 함과 동시에 그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즉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 실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며 인생의 순간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임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재삼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각 막마다 일상생활, 사랑과 결혼, 죽음이라는 부제를 단, 총 3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그로버즈 코너즈라는 작은 읍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상생활이라는 부제처럼 1막은 깁스가와 웹가를 중심으로 1901년 어느 봄날의 전형적인 하루를 보여준다. 2막에서는 비가 내리는 1904년 여름날, 조오지와 에밀리의 결혼식 장면과 그들이 장래를 약속했던 과거의 어느 날, 모오건씨의 약방에서의 회상장면이 나온다. 역시 구혼과 결혼이라는 일상적 사전에 중점을 둔다. 3막은 1913년 여름 에밀리의 장례식이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죽은 에밀리가 무대감독에게 요청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가운데 12번째 생일인 1899년 겨울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관찰자로서 자신이 어떻게 가족이나 이웃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를 바라보다가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깨닫고,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듯, 건성으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괴로워하며 돌아가겠다고 절규한다.
결국 이 극은 1901년 5월 7일 그로버즈 코너즈라는 평범한 동네의 얘기가 곧 인간 경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출생, 결혼, 죽음이라는 원형적 차원으로 확장되면서 늘 되풀이되어 일어난다는 보편성과 영원성을 지님으로써 손튼 와일더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어제, 오늘, 내일... 깨닫지 못하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며 그렇게 소중한 일상은 소리없이 훌쩍 떠나버린다. 때문에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스트린드베리의 <꿈의 연극 Dream Play> 마지막에서 말 그대로 “지구를 떠나”기에 앞서 아버지의 배려(?)로 인간 생활을 맛본 인드라 신의 딸이 떠나기를 아쉬워하며 인간들에게 전하는 대사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시간이 됐어. 내 친구여. 너의 손을 이리 줘.
잘 있어. 당신네 인간들, 몽상가들, 시인들
살아가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들.
땅 위에 날개를 달고 솟아오르면
기분 좋게 의식을 잃고
먼지덩이에 빠지지 않고
대신 가볍게 스치고
지금 내가 떠나야 할 때
안녕이라고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있으라고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며
미워했던 모든 것들을 후회하고
지금, 바로 지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네.
나는 인간이 되는 고통을 느낀다.
너는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을 그리워한다.
회복될 수 없는 그릇된 행동을 유감스러워하고
너는 떠나기를 원한다. 너는 머무르기를 원한다.
충돌하는 희망과 망설임, 의심으로
너의 마음은 이끌리고 나누어지고 찢긴다.
안녕, 나의 친구여! 네 친구들에게 전해.
내가 어딜 가든 그들을 기억할 것이며
네 이름으로 그들의 불평과 항변을 왕위에까지 전할게.
잘 있어!

글. 김지명(극단 <표현과 상상> 무대감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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