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춤평론가회(회장 장광열)는 춤 비평활성화를 포함한, 한국 춤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포럼을 봄 여름 가을 겨울 4회에 걸쳐 연속으로 개최한다. 2009년 첫 포럼의 주제는 ‘변화하는 춤 환경과 지원정책’이다. 춤 비평을 포함 춤계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 춤 전용극장 운영방안 등이 무용가를 포함한 현장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폭넓게 논의된 결과다.
2. 춤 지원정책, 재설계가 필요하다
(1) 30여 년간의 춤 지원정책, 무엇을 기조(基調)로 해왔나
대한민국무용제가 시발되던 1979년을 기점으로 춤 지원정책의 효력이 적극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고 보면, 춤예술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공적(公的) 지원시스템은 30년 이상 유지되어왔다고 하겠다. 물론 그사이 춤예술계는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2 춤의 해를 거쳐 1990년대 후반 IMF의 파고를 넘어왔다. 그렇게 현재에 다다른 오늘의 시점은 2009년, 21세기도 벌써 10년 가까이 지나고 있다.
최근 출간한 문예연감의 자료는 현재 국내 춤 예술의 총 공연 횟수를 1,700회 내외로 산출하고 있다. 이 수치는 정확해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 이것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하루에 전국 단위로 매일 4~5회 춤 공연이 벌어지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일 여기에 제대로 보고되거나 집계되지 않은 여러 유형의 춤공연들을 합계에 넣는다면 그 횟수는 훨씬 상회될 수 있다. 더불어 우리의 춤공연 시스템이 서구와 같이 레퍼토리공연에 의존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특히 이들 공연 중 상당 부분은 ‘신작(新作)’이기 때문에 어쩌면 춤 신작의 생산에 있어서 한국은 세계 예술춤의 최상위 권에 들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런 중에 벌써 10년 이상의 역사를 갖게 된 CID의 서울세계무용축제, 개방된 형태의 현대무용협회의 모다페축제, 서서히 연륜을 쌓고 있는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여기에 가세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무용프로그램들의 강화 등에 의해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 우리춤의 국제교류와 국제적 감각도 매우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사상누각(沙上樓閣)인 것 같은 허망한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왜냐하면 춤예술의 그 같은 활동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조망하며, 춤의 공적 지원시스템을 적어도 5년 단위로 재평가하고, 또 재디자인하는 노력이 매우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곧 대부분의 춤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시스템은 ‘관행’에 의해, ‘전년도 대비(對比)’로 조금씩의 변화를 주는 그 수준에만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등의 주요 지원기구에서 춤 지원책의 담당부서나 관련 부서원(고작 1명 정도)은 있어도 실제 춤의 현장과 문제점을 꿰뚫고 있는 전문인력은 전혀 배치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매해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해도 그것을 대충 덮어가며 눈가림식으로 허물을 덮는 수준에 머문다. 그런 가운데 공연과 관련한 제작비용 항목들(대관비, 무대세트비, 조명디자인비, 의상비, 기타 여러 무대인력 경비)은 계속 증대되어, 춤 예술가들의 공적 지원금 의존도를 계속 높여가고만 있다.
그 결과, 춤계는 제작지원금이 없으면 어떤 단독 공연이나 춤 기획행사도 할 수 없는 그런 형국이 되었다. 따라서 공적 지원금의 배분이나 심의와 관련 춤집단 간의 건강치 못한 긴장관계나 갈등이 수시로 불거지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재 이 모든 춤 지원정책은 어떤 가치의 기조 위에 서 있는 것일까? 아니, 춤 정책의 철학과 방향성이 있기나 한 것일까?
내가 알기로는 그 30여 년간 춤 지원정책은 단 한 번의 변화밖에 갖질 않았다. 즉 두 단계 정도의 변화만 가졌다. 그 하나는 2000년대까지 형평성의 원칙에 의해 소액다건주의를 지향해오면서 일종의 춤예술과 문화의 ‘터다지기작업’을 해온 것, 이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1990년대부터 해오던 창작활성금작업과 좀 다른 방식으로 일부 ‘집중화사업’을 펼쳐온 것이 그것이다.
현재 이 집중화사업에는 3년 단위로 된 전문춤단체 연속 지원사업과 지난해 3억 예산을 집행한 전문안무가 육성프로젝트(재교육사업)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간 사후 평가에 의한 레퍼토리작업에 대한 항목도 거기에 포함될 수 있겠지만, 지금은 흐지부지된 상황으로 보인다. 또 그와 달리 여러 예술 장르의 활동이 혼합되어 있는 다원매체 장르의 신설(여기에 물론 무용도 포함될 수 있다) 정도가 있다. 변화는 그뿐인 것 같다.
즉 지원단체와 지원금액을 정하고 가장 중요한 지원심의제도도 문화예술진흥원에서 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뀐 3년간에도 그 골격에 있어서 어떤 변화도 없었고, 그와 함께 오늘의 급변하는 춤예술 환경을 분석하고 짚어볼 그런 심도 있는 정책입안자와 현장 예술인들과의 열린 대화의 시간도 그간 매우 드물었다. 혹 있었더라도 요식적으로 지나갔다.
그런 사이 그 같은 지원정책에 대해 비교적 민감했던 무용평론가집단만이 이른바 세미나의 이름을 붙여 정책의 여러 사항들을 비판하고, 대책을 제시․건의했을 뿐이었다. 나는 2002년, 노조의 등장, 급격한 제작비의 앙등, 극장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한 9개 사항으로 된 나 나름대로의 ‘춤 지원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본 바 있었다.
1) 적어도 20년 이상의 이미 상당한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고, 또 그에 걸맞게 공연예 술적 질을 확보한 기성 예술단체의 경우, 그들의 정기적인 활동을 조건 없이 가능한 한 5년간 연속 지원할 것.
2) 다수의 비평가들에 의해 예술적 성장이 예견되고 있는 30-40대 사이의 개인이나, 혹은 그가 이끄는 예술단체의 경우, 3-5년 동안 지속적 지원을 원칙으로 할 것. 그 리고 그 이후 자체평가를 해볼 것.
3) 대학 동인제나 아마추어 예술집단의 경우, 또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예술활동의 경 우, 까다롭게 선별하여 최소한의 수준에서만 지원할 것.
4) 전시효과를 노린 이벤트성 공연이거나 상업성을 강하게 띠는 공연의 경우 지원을 철 저히 배제할 것.
5) 연극, 무용 등에 대해 자체 기획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면서 순수한 전문적 공연장 의 성격을 가진 극장은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
6) 공연예술의 기록·정보화 및 연구사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장기적인 지원을 할 것.
7) 심사위원으로서 공연예술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이들이거나 관련 실기 교수들은 가 능한 한 그 명단에서 배제할 것(포함하더라도 공정한 의식을 갖춘 자로서, 심사위원 인원의 3분의 1을 넘지 않게 할 것).
8) 지원 프로그램의 예술행정 인력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뤄지는 예술가들의 집요한 로비나 청탁 압력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기를 것.
9) 최소한 5년마다 엄정한 자체평가를 거치면서 지나치게 지원금의 혜택을 많이 받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구별해내고, 변화하는 예술계의 동향을 살펴 공연예술 환경 의 변화나 시대에 맞는 예술정책을 마련할 것.
여기서 중요하게 제시되었던 1)의 항목은 전문춤단체 집중육성이란 이름으로 정책에 반영되긴 했지만, 그러나 당시 선정위원들의 선정에 있어서 역사나 규모를 갖춘 전문춤집단보다는 이른바 40대 중심의 독립 춤단체들이 대거 뽑히는 나의 생각과 다른 결과를 낳았고, 내가 비중 있게 지목한 7)의 항목, 즉 심사위원 구성 비율은 아직까지 전혀 지켜지지를 않고 있다.
더불어 지적한 5)의 항목도 소극장, (공연 가능한) 스튜디오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없이 그저 공간 지원이란 명목 아래 이미 배정되어 있는 적은 금액 안에서만 분할·변용해 쓰려고만 하고 있다.
글 쓰는 비평가로서 내 스스로 적용되길 간절히 바란 6)의 항목의 경우, 정책기구들은 그것의 필요성을 아직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나는 9개 사항의 이상론적(理想論的) 견해만 펼친 셈인데, 과연 그럴까?
그 연장에서 본다면, 춤 정책의 두 번째 단계인 이른바 선택과 집중에 의한 집중지원정책도 별 효과를 볼 것 같지 않다. 단지 몇 단체만 짧은 기간 안에 혜택을 보는 그런 상황에 머물 것 같다.
문제는 전체를 ‘구조적으로 보는’ 정책의 시각과 지원정책에 대한 ‘전문적 안목’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달리 말해 현재의 춤예술계는 소박한 의미로 나눠주기식의 단순한 지원책에 만족할 수 없으며, 어느 부분들만 불균등하게 살찌울 수만은 없다. 더불어 그렇게 지원된 항목들이 동시에 창조적 생산력을 발휘해 지원의 실효(實效)를 높여야만 한다. 즉 춤 지원정책은 구조적으로 재설계되면서, 창조의 효능성을 실천적 측면에서 높여야만 한다.
글. 김태원_『공연과리뷰』편집인. 춤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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