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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올리는 거작, 연극 ‘한여름밤의 꿈’

 

연기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독백 모음집 ‘백세개의 모놀로그.’ 이 책의 저자 최형인 교수가 어느 새 정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한국 연극계 거장이 연극 인생의 중요한 어귀에서 선택한 작품은 400여 년 전 살았던 또 다른 거장의 작품이었다. 바로 최고라는 수식어가 당연하게 따라붙는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이다. 최형인 교수는 1992년 ‘사랑의 연극제’에서 이 작품으로 번역상을 수상했고, 95년에는 제자들과의 공연으로 큰 인기를 모은 적이 있다. 2009년 예술의전당, 또 한 번 그 유쾌한 꿈을 들려주기 위해 그녀가 제자들과 함께 돌아왔다.

- 과연 셰익스피어, 실타래처럼 얽히고 얽힌 사랑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다

네 젊은이들의 어긋난 사랑은 이를 바로 잡아주려던 요정 퍽의 실수로 오히려 얽히고 얽혀 들어간다. 여기에 결혼식을 앞둔 귀족과 축하 연극을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 부부싸움을 한 요정들의 왕과 여왕 등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잔뜩 꼬인 연인들의 상황과 마을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연극에서 빛을 발한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무릎을 치며 웃게 되는 희극성뿐만이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등에서 그러하였듯이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보편성이 자리한다. 라이샌더는 그의 연인을 ‘사랑스러운 나의 허미어’에서 ‘난쟁이 똥자루 같은 여자’라고 부른다. 마음의 변덕이 바라보는 시선을 얼마나 크게 바꾸어 놓는지 꼬집어 놓은 셰익스피어의 통찰력에는 탄성이 나온다. “사랑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 그래서 날개 달린 사랑의 천사 큐피드는 장님으로 그려져 있는 거지”와 같은 대사 하나하나는 400년이 지난 오늘날의 관객들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 ‘그들’이 연기하는 몽환적인 한여름 밤

이 공연은 화려한 캐스팅으로 주목을 받았다. 15년 전 ‘한 여름 밤의 꿈’을 성공으로 이끈 이문식, 안내상, 홍석천 등이 훌쩍 성장한 연기력과 함께 돌아왔다. 게다가 여기에 든든한 배우 최용민, 류태호, 김효진, 최진영 등이 가세했다. 사실 요정, 왕과 여왕, 사랑의 묘약 등의 소재는 자칫 유치해질 수 있다. 게다가 거의 시를 연상시킬 정도로 세공되어 있는 셰익스피어 극의 어투는 최근 공연과 비교하면 길고 무겁다. 요즘 오르는 많은 셰익스피어의 극이 장르나, 내용, 문체의 변형을 거치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변화보다는 고전을 그대로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을 택했다. 만약 ‘그들’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련한 배우들의 탄탄한 발성과 딕션으로 대사는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 특히 허미어와 헬레나의 캐릭터가 잘 만들어졌다. 엄청난 키 차이만으로도 훌륭하게 코믹적 요소가 더해진다. 허미어가 바닥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칭얼거릴 때나 헬레나가 긴 다리로 도망가다가 시원하게 날려주는 발차기 한 방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배우 최용민과 안내상 등이 연기한 마을 사람들도 한껏 힘이 풀린 여유로운 대사처리로 아는 것 없는 시골 촌부들의 느낌이 전해져 온다. 또 퍽과 오베론 등 요정들의 가벼운 움직임과 리듬감이 가미된 대사는 인상적이다.

- 오랜 시간을 거쳐 온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

공연은 굉장히 ‘한여름밤의 꿈’답다. 몽환적인 분위기와 동화 같은 캐릭터들을 잘 살려내어 어느 연령대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종이를 무대 천장부터 가득 늘어뜨리고 바닥에 소품을 흩뿌려 놓아 숲을 표현한 무대는 아기자기하다. 넓은 무대 사용과 자유로운 등퇴장은 특히 젊은이들이 쫓고 쫓길 때, 파크가 등장할 때 흥미진진함을 살려준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뭔가 확실히 다른 ‘한여름밤의 꿈’을 보고 싶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쓸데없는 바람일까? 고전에 대한 완벽하고 적절한 해석인지, 실험성과 독특함을 간과한 무대인지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 각자에게 맡겨둔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이 정도의 즐거움을 선사해준다면야 퍽의 말대로 한여름 밤 선잠에 꾼 꿈이라고 기분 좋게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백 년이 지나도 셰익스피어가 계속 공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년을 앞둔 최형인 교수가 15년 만에 ‘한여름밤의 꿈’을 다시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대 위에 오른 이번 연극 ‘한여름밤의 꿈’은 창고에서 찾아낸 오래되고 두꺼운 동화책 한 권을 떠올리게 한다. 빛바랜 한 장 한 장이 캐캐묵고 먼지가 쌓였는데 오랜 보물과 같아 더 넘겨보고 싶다. 몽롱하게 기분 좋은 그 매캐한 냄새가 자리 잡고 있는 공연. 바로 그 느낌이 이 공연이 오르는 이유이자 매력일 것이다.


백수향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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