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3.5 금 14:24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연극 ‘피카소의 여인들’, 네 명의 여인들이 폭로한 또 한 가지 진실!

 

제 30회 2009 서울 연극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연극 ‘피카소의 여인들(원제: Picasso’s Women)’이 지난 4월 16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피카소가 일생을 두고 사랑했던 8명의 여인 중 네 여인이 등장하여 피카소와의 사랑과 삶에 대한 진실 되고 거침없는 이야기를 전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1970년대 피카소의 두 번째 부인인 ‘재클린’으로 시작하여 1920년대 그의 첫 번째 부인인 ‘올가’까지 역순 행된다. 이 네 여인들이 자신들의 속내를 거침없이 폭로하는 무대는 여성의 자궁처럼 따뜻하면서도 때론 냉랭한 기운을 감돌게 한다. 그만큼 그녀들의 인생에 있어서 피카소는 푸른 바다 위를 정처없이 떠도는 슬픈 항해와 같았다.

무대는 단촐하다. 오로지 의자 한 대만 쓸쓸하게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의자는 여인들이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갈 친구 같은 존재였다. 여인들이 피카소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폭로할 때 그 의자는 잠깐 동안 지탱할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가 된다. 또한 무대 벽에 설치된 창문은 여인들의 답답하고 복잡한 심정을 이해하는 듯 보다 넓고 크게 꾸며져 있다. 가끔씩 배우들이 그 창문을 열 때면 은빛 자작나무 숲과 해변이 펼쳐지는데, 그것은 작품 속 여인들을 위해 마련된 마음의 비상구다. 이렇듯 무대는 곳곳에 여인들을 위한 배려가 묻어난다. 이 네 여인들은 관객들에게 피카소와의 추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지만, 결국엔 상처와 아픔만이 전달된다. 그래서 무대는 여인들을 위로해주는 치유의 대상이었고, 동시에 아픔을 대변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이 네 여인들은 하나의 연결 고리처럼 모두 얽혀 있다. 맨 나중에 등장한 피카소의 첫 번째 부인 ‘올가’는 나머지 여인들 ‘마리떼라즈’ ‘프랑소와즈’ ‘재클린’을 모두 알고 있다. 그녀는 피카소를 다른 여인들보다 맨 처음 만나 결혼 하게 된다. 그래서 이후 피카소가 만나는 여인들을 모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극은 역순 행으로 피카소가 죽기 직전까지 함께 했던 여인 ‘재클린’, 다음은 ‘프랑소와즈’ ‘마리떼라즈’ ‘올가’ 순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그것은 아마도 피카소의 첫 번째 부인 ‘올가’가 제일 할 말이 많을 것 같아서 마지막을 장식했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역순행이 극의 흐름을 매끄럽게 했고 더없는 재미를 안겨주었다.

극 중 ‘재클린’은 피카소에게 헌신적이며 절대적인 사랑을 바친 인물로 모성본능을 불러일으킨다. 무대에서 재클린의 대사중 피카소를 ‘나의 파블로, 나의 주인, 나의 신’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만큼 피카소의 인생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이 역할은 배우 김성녀가 맡았다. 김성녀는 이 역할과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졌다. 엄마처럼 푸근한 외모에 따스한 감성으로 열연을 펼쳤다. 그러나 극 중 배역에 감정이입을 잘 실은 반면 대사를 움켜쥐는 흡입력은 다소 부족했다.

다음은 ‘프랑소와즈’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부유하게 자란여성으로 늘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런 ‘프랑소와즈’는 피카소의 이기적인 사고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유일하게 그를 떠난 인물이었다. 이 역할은 배우 배해선이 맡았다. 배해선은 극 중 ‘프랑소와즈’의 개성 넘치는 연기력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냈다. 손짓, 몸짓 등 제스처를 해가며 설득력 있게 드러낸 점이 돋보인다.

그 다음은 ‘마리떼라즈’로 17살 때 피카소를 만난 가장 어린 여인이었다. 그녀의 육체는 아름다웠고 생기가 넘쳐흘렀다. 모든 순정을 피카소에게 바쳤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한 여인이다. 이 역할은 배우 이태린이 맡았다. 짧은 단발머리에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이태린은 젊고 발랄한 ‘마리떼라즈’역과 잘 맞아 떨어졌다. 극 중 파블로가 ‘마리떼라즈’에게 한 말 중 ‘당신은 내가 사랑한 유일한 여성이요’라는 말을 이태린이 대뇌였다. 그녀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와 순수한 표정은 이 대사를 녹아들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여인은 바로 ‘올가’였다. ‘올가’는 발레를 전공한 여성으로서 무대에서 시종일관 우아한 포즈를 잃지 않았다. 걸음걸이도 허리를 곳곳이 세워 위풍당당한 몸짓을 보였다. 극 중 ‘올가’ 역의 배우는 서이숙이었다. 그녀의 등장은 다른 배우들과 달랐다. 객석에서 등장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녀의 음성은 과히 명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언어전달력과 대사 흡입력에서 모두 완벽했다. 잠깐 지루할 뻔 한 무대가 그녀의 등장으로 활기가 전해졌다. 또한 극 중간 중간 그녀가 던지는 위트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안겨주었다. 이렇듯 그녀의 고급스런 말투는 루즈했던 극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모놀로그 형식의 독백을 무대에서 심도있게 그려냈다. 더불어 연극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탁월한 감정이입은 작품의 가치를 한 단계 높였다. 그러나 작품이 무거운 만큼 극의 루즈함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중간 중간 재미를 담는 말이 나왔지만 그다지 큰 역할은 해내지 못했다. 그 부분만 신경을 쓴다면 완벽한 작품이 될 것이다.

피카소를 폭로하는 이 네 명의 여인을 통해 또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여인들은 피카소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많이 찢겨지고 망가졌지만, 아직도 피카소를 잊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녀들은 피카소의 작품을 무엇보다 인정했고, 그의 예술관을 동경했다. 비록 한 여자로서 남자에게 완전한 사랑을 얻지 못했지만, 그가 남기고 간 흔적들은 절대 버리지 못했다. 결국 파카소의 예술세계는 그녀들에게 있어 생명, 호흡과도 같은 존재였다.


박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