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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 연극의 대명사라 불리는 사무엘 베케트. 그리고 그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극찬 받고 있는 실비우 푸카레트.
오지 않을 고도? 아니면 올지 모른다는 고도? 사람들은 언제나 고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고고와 디디 그리고 포조와 럭키 지지리 궁상들이 짝 짝으로 등장한다. 궁상맞고 외로울지라도 그들은 하염없이 수다를 늘어놓기도 하며 서로에게 기댄다. 고독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혼자를 피하기 위해, 서로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그들. 서로를 추켜세우기도, 헐뜯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한 순간인 듯 영원한 그들의 주고받는 말은 시계처럼 따박 따박 맞추어져 흘러가는 시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순간 느끼는 행복이나 삶의 한 조각을 문득 회상하는 것처럼 순간순간을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어느 순간 그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궁상스럽기까지 하다. 원작 자체가 가지고 있는 궁상 짝꿍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도록 빈약한 무대와 앙상한 가지들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등장하는 또 다른 여인. 무대감독으로 볼 수 있는 이 여인은 무대 위 또 다른 공간에 등장하여 다른 배우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 혹은 책을 읽고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 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자못 흥미진진하지만 기존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도움이 되는 존재도 아닌, 어쩌면 불필요하게 보이기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처음 무대에 등장하고 관객들이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치 그녀의 고도를 기다리듯이.
달이라고 하지만 눈을 찡그릴 만큼 자극적으로 빛나는 백열등은 익숙한 달빛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름답게 지는 저녁놀 또한 그저 환한 배경 속에서 조명만을 이용하여 잿빛처럼 허무하게 그려놓았다. 달 속의 토끼들처럼 토끼분장을 한 악단의 음악은 아름답지만, 필요 이상 길어진 연주는 흥겨움과 지루함 사이의 모호한 지점에서 그저 쉬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기다림은 기대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루하기 짝이 없고 궁상맞은 일상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삶을 포기하고 싶더라도, 그래도 계속 이어나가야할 그 무엇을 ‘기다림’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궁상장이 짝꿍 고고와 디디의 기다림의 모습에도 슬쩍 미소가 지어지면서 동시에 안타까움과 애잔함이 밀려드는 것을 어쩔 수 없나 보다. 우리에겐 낯선 루마니아 극단의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지만, 대사의 전달이 자막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어 몹시 아쉬울 따름이다.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 / 사무엘 베케트 작/ 실비우 푸카레트 연출/ 루마니아
글 : 박순덕 hobbang95@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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