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력파 연출 김낙형과 연기파 배우 길해연의 만남만으로도 관심이 된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이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에 한창이다.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러시아 교육제도를 배경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실제 공연은 우리나라 현실과도 진배없는 이야기라 더욱 뜨겁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소련 출신의 작가 ‘류드밀라 라쥬몹스까야’의 1980년 작품인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졸업 시험을 잘 보지 못한 4명의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시험 점수를 고치기 위해 수학선생님 ‘엘레나’의 집으로 찾아온다는 간단한 구조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간단한 구조 속에 들어있는 스토리 전달 방식이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씁쓸하다 못해 경악스럽다. 올곧은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엘레나’와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는 네 명의 제자 ‘발로쟈’, ‘빠샤’, ‘비쨔’, ‘랄랴’가 시험지가 들어있는 금고의 열쇠를 두고 벌이는 팽팽한 논리전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작품 속에서 학생들은 선생님으로서는(특히 엘레나처럼 올곧은 선생님으로서는) 절대 납득할 수 없을 제안을 ‘나름’의 정당한 논리로 설득한다. 엘레나 선생님이 바늘구멍에 코끼리를 통과시키는 것처럼 어이없는 일에 대해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학생들은 그런 일이라도 필요하다면 그 큰 코끼리를 가루를 내는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이렇다보니 연극은 사건의 전개부터 시작해 끝끝내 대화의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이때부터는 단순히 시험지가 든 금고의 열쇠가 아닌 신‧구세대의 좁혀지지 않는 의식 구조의 차이를 보여준다. 양쪽 모두 논리적이지만 타협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말만할 뿐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에 내재된 이기적인 대화 습관과도 연결된다. 자신의 의견만 고찰시키려는 소통의 부재 속에서 오는 대화가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작품은 단순히 교육제도에 대한 일침에 머물지 않는다.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구세대가 정립해 놓은 선(善)과 정의에 대한 가치관이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것인지, 새로운 힘의 논리란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가 한 치의 포장도 없이 적나라하게 이어가는 작품이다.
국내에 소개되기 전 이미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흥행에 성공한 이 작품의 메시지는 시대를 뛰어넘고, 국경을 넘어섰다.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사부일체(師父一體)’의 의미가 땅에 떨어진 2009년 우리나라에서도 큰 시사성을 갖는다는 사실에 못내 씁쓸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길해연을 포함한 5명의 배우들의 연기력도 작품에 큰 몫을 해낸다. 배우 길해연은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엘레나’의 절제됨을 노력하게 소화했다. 또한 4명의 학생을 연기한 배우 김동현과 김종태, 임기정, 송유현은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개성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작품의 신선한 에너지를 더했다. 다만 작품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고르차코프’, ‘인텔리겐치아’, ‘안티고네 콤플렉스’ 등의 단어가 관객들에게 이질감을 주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것 역시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07년 초연 당시 탄탄한 대사와 완벽한 구성으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2009년 아르코예술극장 기획공연으로 선정, 오는 3월 29일까지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조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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