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이 갖는 감정 중 하나가 ‘억울함’이 아닐까한다.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해주지 못할 때, 딱히 꼬집어 명확하게 표현할 순 없지만 왠지 억울하다.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제목까지 ‘억울한 여자’는 일본 극작가 쓰시다 히데오의 작품으로 2008년 처음 우리나라에서 공연되고 이번에 앙코르 재공연 된다.
평범한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일본 한적한 마을의 한 카페는 모든 이야기가 표현되는 공간이다. 학생인 듯한 젊은 남자의 존재가 희한한 일로 느껴지는, 서로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시골 마을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공간이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에서의 삶처럼.
거기에 유코(이지하 분)가 등장한다. 자기 나름의 세계를 살아가며, 그 안에서 진지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나가고 싶어 하는, 그래서 엉뚱한 이질적인 존재가.
인터넷 동화작가인 다카다(박윤희 분)는 심리학과 동화를 접목하여 사람들을 치유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의 대표작 ‘외로운 사자’는 유코를, 그리고 우리들을 대변한다.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자와 그 사자의 무모함을 놀리는 꽃…그동안 자기를 이해받지 못해서 억울했던 유코는 ‘이 사람이라면’ 진정 자신을 이해해주리라 생각하고, 다카다와의 사랑을 피워 결혼하여 산골로 들어온다.
조촐한 결혼 파티에서 우연히 듣게 된 소문, ‘떨매미’는 유코를 사로잡는다. 사람들은 그저 헛된 꿈이라고, 소문일 뿐이라고 자신이 들은 사실에 대해 확인할 열정도 없이 유코 앞에서는 미온적 긍정으로, 뒤에서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치부할 뿐이다. 떨매미에 집착할수록 유코는 소외되어 가고 짓밟힌다. 그래서 고개를 떨구며 조용히 “억울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결국 다카다는 헤어지자고 하고, 유코는 자신이 이렇게 되었는지 어렸을 때의 유치원 선생님과의 사연, 소풍갔을 때, 고등학교 선생님과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전부터 귀를 닫고 있던 다카다는 그런 유코의 항변에 더욱 더 귀를 닫는다.
이혼한 유코는 떨매미의 발견과 에너지연구소의 유해물질 방출로 사람들이 떠나는 그 마을에 남는다. 그리고 처음에 다카다와 나누었던 결혼에 대한 똑같은 대화를 새롭게 젊은 남자와 나눈다.
유코의 네 번째 결혼과 다카다의 두 번째 결혼, 카페 사장(류태호 분)의 이혼과 말만 하면 모든 것을 썰렁하게 만드는 특기, 다카다 친구인 고니시(정선철 분)의 사차원적 반응, 단조로운 일상에 카페를 찾아 수다를 즐기는 불임주부인 메구미(이선주 분)와 마루야마(이지영 분), 친구의 부인과 불륜을 꿈꾸는 니무라(김문식 분), 누구에게나 친절한 카페 종업원 사이키(김주령 분), 정체불명의 에너지연구소의 영향을 연구하는 솔직한 마시하루(이현배 분). 이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보이지만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자신의 세계에 빠져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우리 안에 들어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그리스 신화의 노상강도 프로크루스테스는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침대의 길이에 맞춰, 침대보다 작으면 늘려서, 침대보다 크면 잘라서 맞췄다. 유코가 하는 이야기와 행동은 사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틀리지 않다. 애초에 떨매미를 찾아 나서기로 한 것도 다카다가 자신 옆에만 붙어있지 말고 무언가를 해보라고 해서 시작된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처럼 할 일 없어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륜을 꿈꾸는 대신 매미가 진짜 있는지 알고 싶어 했을 뿐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소위 ‘사회적’ 혹은 ‘일반적’이라고 하는 잣대를 들이댄다. 유코가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피를 흘리게 된다.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추듯이.
연출자 박혜선은 ‘억울한 여자’는 타인을 바라보는 열린 시선 갖기, 타인의 굴절된 속마음을 이해하는 방법 깨우치기, 나를 타인에게 어필하고 이해시키기, 사회 속에서 모나지 않게 살아가기 등 ‘어른’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무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카다에 공감하다가, 점점 유코의 억울함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양극단으로 대비되는 다카다와 유코의 모습이 모두 내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카다나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는 모습은 표면으로 드러나 있지만, 유코와 같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고자 하는’ 자신은 눌리고 눌려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마을사람 그 누구도, 심지어 그 직원의 부인조차도 그 정체를 모르는 에너지연구소는 눈 앞의 거대한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고 순간의 즐거움에만 골몰하여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신의 에너지 연구소는 무엇인가?
연기파 배우들의 앙상블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사고에 따라 가설을 이야기하는 유코는 어찌 보면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자기가 자초한 일이지, 왜 억울하다고 해?’라고 말이다. 배우 이지하는 미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을 보여주며, 묘하게 결국에는 유코와 공감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박윤희는 부드러우면서도 집요한 유코에 지쳐가는 다카다를 연기하며 연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 외 특색 없는 듯 특색 있는 각각의 배역이 마치 진짜 그 배우의 특성인 양 잘 어우러지며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이번 앙코르 공연에서는 공연계의 중진 세대와 신세대가 만나 절묘한 콤비를 이룬다.
무거운 주제를 던지고 있지만, ‘억울한 여자’는 극본도 탄탄하고 연기력도 탄탄한 재미있는 연극이다. 공연되는 120분 내내 계속 관객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만 극에서 중간에(필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대화는 일상적이어서 좀 지루하고 상투적인 느낌이 들고, 빙 돌려서 얘기하거나 계속 고개 숙여 인사하거나 사과하는 일본의 문화적인 특성에 대한 풍자는 덜 공감하게 되는 면이 있다.
즐겁게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과연 나는 어떤가’라는 물음표를 가슴에 달게 된다. 나는 가해자이기도 하며 피해자이기도 하다. 다시 일상생활에 서서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진실이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글 이종은 abrxasz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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