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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몸짓으로 이룬 순례의 여정, 홍신자의 ‘순례자’

 

10년 동안 15 개국에서 공연된 홍신자의 1997년 작 ‘순례’가 10여년 만에 ‘순례자’로 새로이 태어났다. ‘순례자’는 1997년 세계연극제에서 초연된 45분 길이의 ‘순례’를 70분짜리로 다시 만든 작품이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든지 우리의 삶 자체가 순례이며, 우리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영적 깨달음을 찾아다니는 순례자들’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신비하고 원시적이면서도 모던한 이미지로 담아냈다.

작품 ‘순례자’는 그 이름처럼 인간의 삶과 여정을 순례로 비유한 무용작품이다. 그러나 하나의 몸짓이라고만 하기엔 보는 이의 시각을 다양한 색체와 미(美)로 강하게 사로잡았다. 이 작품은 조명, 의상, 무대, 효과가 어우러져 시각적 쾌락을 극대화 하면서도 무용의 기본인 몸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이번 공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의상과 조명, 몸짓의 만남이다. 홍신자와 새롭게 힘을 합친 디자이너 이상봉과 조명감독 ‘마사루 소가’의 어울림은 한마디로 환상적이었다. 색채가 살아있는 조명과 그 조명 속에서 격렬하게 물결치며 변신하는 의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2미터에 달하는 이상봉의 의상은 길고 풍성하지만 단순한 패턴을 사용하여 정적인 동작들을 극대화 시켰다. 절제되어 있으나 화려함을 잃지 않았다. 또한 빛을 담고 반사하는 각각 다른 소재를 사용해 의상의 실루엣은 조명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1막의 의상은 빛을 빨아들이는 자연의 미색을 사용하여 초록, 노랑의 조명을 흡수해 자연 속에서 시작되는 태초를 느낄 수 있었고, 3막에서 사용한 의상은 조명과 어우러져 영롱하게 빛나며 각각의 무용수가 하나의 별이자 무지개와 같이 느껴지는 효과를 주었다. 이는 ‘땅에서부터 시작된 순례의 고통’과 ‘하늘에서 맞이한 환희와 기쁨’이란 주제를 쉽게 드러낸다. 이러한 효과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용은 어렵고 추상적이다’란 인식을 탈피하게 한다.

의상과 조명이 극대화된 아름다움이었다면 반투명 스크린을 사용하여 주제를 부차적으로 드러낸 것은 새로운 시도의 참신함 이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반투명 스크린을 사용하여 빗방울과 빛의 소용돌이를 비추었다. 빗방울이 비추어질 때는 마치 무용수들이 물속에 잠기어 몸부림조차 치지 못하며 가라앉은 모습을 표현한다. 순례자들이 겪는 고통과 침잠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궁극의 목적을 향해 느릿한 걸음으로 물속을 한발 한발 나아가는 활 없는 궁수의 모습은 순례의 끝에 찾아올 그 무엇인가에 대한 시들지 않은 열망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스크린에 빛의 소용돌이가 비추어 질 때는 의상에 머금어진 빛과 미려히 빛나는 조명이 더해져 순례의 끝에 찾아온 환희와 기쁨이 시각적으로 생생히 살아났다. 무용수들의 몸짓은 처음과 같이 느리고 지속적이며 반복적이나 단 한번 격렬한 움직임의 카니발을 겪고 나서는 고통이 환희로 변하듯 그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삶을 순례에 비유한다. 그러므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순례자이다. 이것은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기에 그 끝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환희가 존재한다. 이런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해 더욱 깊고 심화되어 진 안무가 개인의 삶도 엿볼 수 있었다. 무거운 족쇄와 같은 그 신발을 끝까지 벗을 수는 없었지만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삶을 살아온 이들만이 얻을 수 있는 구도의 미를 인생과 함께하여 무대에 올린 홍신자의 성찰에 박수를 보낸다.    

이 작품은 시각적 탐미자들에게 참으로 매력적인 공연이다. 무용수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흘러내린 옷자락이, 반짝이는 치맛단에 내리 쪼이는 조명과 무용수들이 이루는 그림자들 까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철저히 잡아매고 있다. 그러나 무용수들의 잦은 실수와 일치하지 못한 동작의 부조화는 그런 아름다움을 놓치게 한다.

‘순례자’가 걸어야 할 순례의 길은 이제 시작이다. 홍신자는 이번 작품을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작품을 목표로 창작에 임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포부처럼 이 작품의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좋아지리라 기대한다.


조아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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