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희곡작가 김태수를 필두로 한 ‘김태수 레파토리’극단의 첫 번째 연극 ‘서울은 탱고로 흐른다’가 지난 2월 7일 대학로 두레홀 2관에서 있었다. 김태수는 지난 198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파멸’이라는 희곡으로 당선되어 데뷔하였으며 2007년 ‘한국희곡대상’을 수상한 이력을 지닌 희곡작가이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연어는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등이 있으며 따뜻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세밀하고 경쾌하게 담아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이 작품에는 내로라하는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여 감칠맛 나고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무대를 빛내주었다. 대한민국 연극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공호석, 박기산 등의 원로배우들과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는 조원희, 수차례 연극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실력파 석호진 등이 그들이다. 작은 규모의 극장 공연이지만 최선을 다해 자존감 있는 연기를 펼친 배우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그 집에 그 집주인 주인공(주윤발)이 사는 곳은 역 근처 산동네 원룸. 막힌 하수구를 뚫으려고 수리 센터에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영 통화상태가 불량한 전화기 때문에 고칠래야 고칠 수 없는 소화불량에 걸린 단칸방이다. 혼자 사는 노총각 방이 반짝반짝 윤이 날것 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힘들겠지만, 도무지 그가 사는 방은 그 너저분함과 불결함이 어쩜 그렇게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지 보기만 해도 고농축 노총각 냄새가 코를 찌를 듯 했다. 그 집에 그 집주인이라더니?! 주윤발은 자신의 주거지 못지않게 불유쾌한 고질병 만성변비에 치질까지 달고 산다. 또한 그의 목에는 끈적한 타액이 항시 장전되어 있는데 때때로 창문 밖 꽉 막힌 벽을 향해 그 부글부글 끓는 누런 탄환을 발사하기도 한다. 그것은 윗입은 활짝 열려 있어서 식욕을 채울 수 있지만 아랫입은 굳게 닫혀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순된 몸에 대한 불만 표출이다. 또한 무엇인가 배출한다는 점에서 배설과 유사한 침뱉기는 배설을 대신하는 임시변통인 동시에 순환장애를 일으키는 자신의 집에 대한 옐로카드인 셈이다. 설사 그 행위가 ‘언 발에 오줌누기’와 같은 식일지라도 말이다. 탱고? 아니 몸부림! 신문사에 기자로 근무하는 주윤발은 사회의 각종 부조리와 맞닥뜨리며 불의한 현실을 폭로하기 원하지만 순진하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 탓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기 일쑤이다. 반면에 그의 애인인 단비는 형편 어려운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일찍이 현실에 눈을 뜬, 세속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우이다. 실속 없이 고지식하기만 한 그와 매사에 실리를 따져보는 그녀는 서로의 다른 점에 끌려 연애를 시작하게 되고 얼마간 순탄하게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소통은 되지 않고 취향만 엇갈리던 그들의 탱고는 처음부터 맞지 않는 춤이었나? 이 닳고 닳은 세상에서 통할 리 만무한 주윤발의 쓸모없는(?) 청렴함은 그를 사회에서 고립시키고 단비를 떠나가게 하는 주요인이다. 직장도 애인도 잃고 하루 종일 먹통 같은 집에서 바닥만 치고 있는 주인공의 인생을 보고 있자니 말문이 막힌다. 그러나 그렇게 그가 수도, 전기, 가스가 모두 끊긴 방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와중에도 윗층집에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삐걱거리는 침대 스프링 소리와 함께 우주의 교합을 도모하는(?) 생생한 소리를 얇은 천장 사이로 방출한다. 한낱 저속한 소음에 불과했던 그 소리에 문득 깨달음을 얻은 그. ‘아! 내가 세상과 겉돌고 있을 때 저들은 서로 어우러지며 소통을 위해 몸부림치는구나.’ 세상과 화해하기를 새롭게 마음먹는다. 피차 엇갈린 스텝의 탱고보다는 열과 성을 다하는 몸부림이 통하는 세상이다. 영웅본색은 아무나 찍니? 주윤발이 겪어왔던 모든 상황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참을 수 없이 분하고 한없이 비참한 상황이다. 그러나 제 3의 인물, 즉 냉랭한 관조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현실은 그저 한 편의 잘 짜여진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삶의 비천함을 탱고를 통해 털어버리고 인생의 열정과 기쁨을 찾아가는 단비가 현대의 바람직한 인간상이 아닌가? 그녀는 뻔뻔스럽지만 단순명료하게 욕망을 쫓으며 사회의 충실한 일원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골치 아픈 신념으로 똘똘 뭉쳐 피곤한 인생을 사는 우리의 주윤발은 세상과 늘 삐걱이지 않는가? 그와 동명의 주인공(주윤발)이 나오는 영화 영웅본색에는 ‘절대영웅, 절대고독’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세상은 비범한 사람을 낯설어 하며 배척한다. 하물며 모든 이들이 우러러 보는 시대의 영웅도 그 범주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 위대한 인간 예수나 간디도 평생을 군중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외롭게 살지 않았는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가장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말에 수긍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주제가 고귀한 것과 잡스러운 것이 온통 뒤섞인 이 세상에 질펀하게 퍼질러 앉아 대충 맞춰 살자는 산통 깨는 메시지는 결코 아니다. 연극의 주인공은 세상과 화끈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의 묵지근한 속내를 대변한다. 당하는 이는 괴롭고 지켜보는 이는 불편한, 상태불량 마크가 꽝! 찍혀 있는 암담한 시추에이션이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아서야 되겠는가? 한번쯤은 묵은 속을 시원하게 쏟아내고 말끔히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울 것을 비운 다음에야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그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법. 누구나 때때로 타인이나 세상으로부터 배반당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마다 우리가 좌절하지 않고 블랙코미디 같은 현실을 담백하게 비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달콤했던 시간도 씁쓸했던 시간도 순간이다. 연극 중간 중간 메타포처럼 등장하는 남녀의 정열적이고도 절제된 탱고가 눈앞을 스친다.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서울은 뜨거운 탱고로 흐른다는데 우리의 인생을 이미 식어버린 과거에 매어두어서는 안되겠다. 연극 ‘서울은 탱고로 흐른다’는 3월 22일까지 계속된다. 연분홍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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