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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가 그리는 동그라미의 꿈, 연극 ‘모범생들’

 

이쯤하면 ‘모범생’이 아니라 ‘뭐? 범생?!’이라 불러야 할 정도다. 젊은 창작집단 토마토의 첫 작품 연극 ‘모범생들’에는 비열함의 끝을 보여주는 모양만 모범생들의 이야기다.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모범생의 개념이 말 그대로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라면 그렇다. 당장 눈앞의 성적에 조바심 내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학력고사를 치러야 했던 연극 ‘모범생들’ 속 학생의 모습은 좀 더 다급하고 각박하게 그려진다.

연극 ‘모범생들’은 욕망과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엘리트들의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다. 사건의 시작점은 ‘그저 딱 한 과목만’ 조금 더 편하게 공부해보고자 시작한 컨닝 시도다. 수학 중에서도 가장 골치 아프다는 미분, 적분 범위를 눈 한번 딱 감고 반반 나눠 공부하자고 한 명준과 수환의 시도가 운동선수 출신 종태에게 흘러들어가며 점점 사건이 커진다. 소문이 소문을 낳고, 일이 일을 벌려 수학 시험 컨닝 모의에는 반장 민영까지 합세하는 것도 모자라 반 전체가 동참하는 사태가 된다. 그러나 평소 ‘모범생’이라는 명찰은 명준과 수환에게 면죄부를 주고, 결국 그저 의리밖에 없었던 종태에게 모든 누명이 씌워지게 된다.

전개가 이렇다보니 흔히 예상 가능한 이야기들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성적비관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오매불망 자식만 바라보는 부모님의 얘기가 거론되고, 어느 곳에나 어김없이 꼭 한명쯤 있는 아웃사이더가 등장한다. 뭘 해도 1등인 아이와 무슨 짓을 해도 2인자인 아이도 빠질 수 없는 소재다. 그러나 이 예측 가능한 소재와 캐릭터들이 흥미로운 점은 그로부터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다. 성적과 모범생 지위에 대한 화두가 10년 뒤 그대로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씁쓸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극 ‘모범생들’이 종일 무겁고 절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작품은 아니다. 자칭 ‘연극계의 F4’ 배우 홍우진, 이호영, 김슬기, 김대종이 갖는 각자의 중량감이 균형을 잘 이루는 덕에 작품은 극에 치닫다가도 곧 쉽게 제자리를 찾는다. 캐릭터들은 자신의 색을 분명히 전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웃음 코드를 간과하지 않는다. 하물며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조차 웃음을 이끌어내는 센스가 발휘될 정도다. 연극 ‘모범생들’은 웃으면서 하고 싶은 말하기, 그것이 가장 무서운 설득력을 갖는 방법이자 젊기에 가능한 가장 쿨한 화법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관객의 청각과 시각을 자극하는 미묘한 기교도 인상적이다. 무대는 답답하고 심심한 느낌을 주며 무심하게 서 있는 회색 캐비닛이 무대 전면을 채우고 있다. 소품도 책상 네 개와 의자 네 개가 전부다. 소품과 세트가 최소화 된 작품을 꽉 채우는 것이 바로 청각적 요소다. 암전 사이에는 팝적인 요소가 강한 음악들로 이전 장면의 긴장을 이어가고, 야구 배트를 치는 소리도 제법 현실감 있게 구성되었다. 또한 반 전체가 컨닝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흡사 현대무용을 떠올릴 만큼 감각적이다.

연극 ‘모범생들’은 모던하고 젊은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곱씹을수록 들큰거리는 메시지에 있다. ‘모범생들’을 만나러 가기 전 ‘정직’과 ‘성실’이 그들을 대변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연극 ‘모범생들’ 속 그들은 온갖 구질구질함과 씁쓸한 끝을 맛보게 해주었다. 네모난 학교와 교실 속 네모난 칠판을 보며 네모난 책상에 앉아 그리는 동그란 꿈. 그 꿈이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그리는 꿈이라면 더 큰 원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일침이다.  


조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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