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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performance]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평화로운 몽마르뜨 언덕의 아침은 어제와 다르지 않게 시작한다. 언덕 귀퉁이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구걸을 하는 거지나...신문을 돌리는 신문팔이나... 과일장수 여인네나...쳇바퀴 돌듯 정시 정각에 시작하는 공무원 ‘듀티율’에게도...

눈치껏 요령껏 일하는 동료들과는 다르게 앞뒤 꽉 막힌 ‘듀티율’의 일상은 5시 퇴근 후 화분에 물을 주고 저녁을 먹는 거 이외엔 특별할 게 없다.
그런 그에게 벽을 뚫는 능력이 생겼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기적이 생겨버린 것이다. 특별한 삶을 원하지 않는 ‘듀티율’에게 그런 능력은 거추장스러울 뿐 이었지만 한눈에 반해버린 운명의 그녀 앞에선 생각이 달라진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즉, 그녀에게 알리는 것! 이리하여 ‘듀티율’의 그 답지 않은 대범한 모험들은 시작된다.

브로드웨이 작품의 화려한 안무나 조명과는 또 다른 매력...프랑스 뮤지컬만의 감각 있는 연출과 우리의 정서와도 상충되는 풍자와 위트가 있다. 아직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대사가 전부 노래로 되어있지만 특유의 리듬감으로 지루할 틈 없고 ‘듀티율’이 보여주는 발칙한 재주(?)에 내내 눈은 즐겁다.
남주인공 ‘듀티율’의 솔로 신이 많아서 그의 역량이 극의 집중력과 설득력에 지배적일 수 밖에 없지만 각각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시너지 효과가 매우 큰 작품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알코올중독 정신과 의사, 부패한 경찰, 변호사의 3역을 소화해낸 김성기 배우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그 밖에도 1인 다역을 하는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는 극의 활력을 불어넣고 템포를 적절히 이어간다.
작년에도 '이사벨' 역할을 했던 해이 씨는 올해 여주인공과 공무원의 1인 2역으로 상반된 이미지를 한 무대 위에서 감상 할 수 있게 해준다. 촌스런 말단 공무원 역할을 어찌나 사랑스럽게 표현하던지 '이사벨' 보단 그쪽이 더 잘 어울리는 듯도 하다.

이 작품에 욕심이 많았다던 남경주 배우는 작년 타 배우에게서도 느낀 발음의 부정확과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느껴지는 체력적인 아쉬움을 이번에도 버릴 수 없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조명이 벗어난 곳에서조차 살아있는 표정 연기와 어느 한 순간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집중력은 이름 석 자에서 오는 내공의 힘과 대중의 믿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벽을 뚫고 들어간 빵집에서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았던 ‘듀티율’처럼 우린 갖지 못한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과 집착을 갖는다. 반면, 이미 가진 것과 평범한 것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답답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했던 ‘듀티율’에게 벽을 뚫는 능력은 과욕이나 일탈 그 자체보다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용기를 내어 마음을 전하고 사랑을 얻은 ‘듀티율’에게 너무 아름다워서 영원할 수 없었던 현실은 참으로 냉혹하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며 비극이라고 말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듯하다. 그 자체로 사랑은 아름다웠으며... 연인은 함께였으니...

몽마르뜨 언덕 위 어딘가에... 동숭 무대 위 ‘이사벨’의 집처럼 발코니가 보이는 2층 창가에는 행복한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겠지?

그 웃음소리가 다름 아닌 ‘듀티율’과 ‘이사벨’을 닮아있기를 바라는 맘은 이 이야기가 결코 끝이 아닐 것 같은 아련함 때문일 것이다.



글_ 장해경 bibiana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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