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레와 친숙하지 않은 일반 관객들에게 모던 발레는 난해하고 다가가기 힘들다는 느낌을 준다.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신데렐라’는 달랐다. 연극, 뮤지컬 못지않은 탄탄한 플롯구성과 마이요만의 생기 넘치는 안무는 마치 한 권의 팝업 동화책 같았다. 사람 냄새나는 캐릭터들의 담백함, 거기에 현실성을 가미한 신비함까지··· 스토리의 ‘뒤틈’과 몸의 언어에 맞는 캐릭터의 창조적 발상이 단연 압권이다. 김지영과 김주원, 그리고 최태지 단장의 재회 역시 발레의 관객지향성과 고급문화의 대중화에 극점을 찍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안무와 음악
한마디로 쉽고 재미있는 발레였다. 마치 스웨터 짜듯 한올한올 엮어내지는 한 편의 마임 같았다. 고전 발레처럼 ‘틀’이나 ‘정형’이 강요되지 않았으며,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의 모던 발레처럼 너무 이탈된 움직임의 해석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태초 혹은 순수의 실개울이 계곡의 곡선을 따라 움직이듯 음악과 감정이 몸으로 그냥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말 언어’보다 더 정확하고 풍부하게 전달한 ‘몸 언어’ 속에 관객에 대한 깊은 배려가 돋보인 공연이었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음악 역시 ‘몸 언어’에 자연스레 흡수되었다. 과장된 움직임으로 표출되는 ‘계모’의 욕망, 질투는 빠른 템포와 높고 날카로운 현악을 만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이렇게 캐릭터와 딱 맞는 선율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토리에 몰입을 돕고 ,자연스레 작품을 받아들이게 했다.
-새로운 캐릭터 창조와 사실적인 묘사
캐릭터의 창의적인 해석이 돋보였다.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신데렐라’는 능동적이다. 순수함을 넘어 무기력한 모습을 모이기도 하지만, 이는 자신의 감정과 순수한 욕망을 적극적 표출하는 능동적 캐릭터로 보이게 한다. ‘요정’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도 신선하다. ‘요정’에 ‘신데렐라’의 죽은 엄마 이미지를 전입시켜, 그녀가 ‘신데렐라’를 적극적으로 인도 한다는 설정 역시 그러하다. ‘요정’은 공연 내내 극을 압도하는 관능적이면서 몽상적인 캐릭터다. 세상 너머의 시선으로 극을 통찰하는 ‘요정’은 신비이며 혹은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일상 동화 속 정신적 지주이다.
사랑의 색깔은 다양하게 투영된다. ‘아버지’와 ‘계모’의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으로 대유, ‘왕자’와 ‘신데렐라’의 막 이성에 눈을 뜬 사랑까지··· 다채로운 사랑의 색깔에 성인 관객층까지 수용하는 동화로 탄생되었다.
-많이 빼고 많이 지우면서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맨 살을 그대로 드러내는 의상과 여백이 가득한 무대, 바로 이 부족함의 미학이 ‘신데렐라’가 보여주는 핵심이다. 하얀 막 들로만 이루어진 무대는 언뜻 심심하고 허전 하다. 하지만 이 여백은 다양성이 내재된 무궁무진한 백지이다. 이 백지의 무대는 마치 물감이 도화지에 흡수되어 그 색을 비춰내듯, 조명만으로 다양한 장면을 그려내는 화가로 변신한다. 동시에 판막의 움직임만으로 시공간을 분할하여, 한 무대에서 두 이야기의 시간을 동시적으로 드러낸다. 스토리의 흐름역시 막 자체의 전환이 아닌 한 무대 안에서 판막의 움직임만으로 이루어진다. 판막을 사용한 시공간의 연속성은 스토리 노출의 진부함을 입체적으로 배치하여 극의 긴장감을 불어 넣고 극에 몰입을 도와주었다. 또한 해석의 심층과 다양성의 문을 열어준다.
-해석을 하면 할수록 상징성이 묻어난다
‘맨발에 뿌려진 금가루’와 ‘유리구두’의 차이성과 유사성은 무엇일까? ‘맨발’은 그 어떤 가식도 아닌, 순수한 그 자체를 상징하고, ‘금가루’는 물질의 상징이 아닌 변화지 않는, 가치에 대한 찬미로 해석될 수 있다. ‘유리구두’는 신분의 상징이고 현대문명의 욕망을 대변한다. 두 개념의 ’차이‘는 욕망을 벗어 회귀하는 것(맨발의 금가루)과 욕망을 획득해 얻고자 하는(유리구두) 것이다. ’유사성‘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가치와 위치의 진정성이다. 원작보다 더 뛰어난 상징적 해석이 돋보인다.
이정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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