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년 만에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강수진의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이토록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다. 정갈한 화려함, 감정의 밀착, 객석 끝까지 전달되는 드라마, 그것이 관객의 가슴속까지 빨려 들어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온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듯 보인다.
수식이 필요 없는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은 한 마리의 강인한 나비처럼 가볍게 무대를 휘어잡았다. 뛰어오르는 그녀의 발동작은 세계 최고의 품격 높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탄생시켰다. 단 한걸음도 허투루 걷지 않는 걸음걸이, 안무의 완벽한 구성과 동선으로 국내 팬들을 매료시켰다. 강수진은 물론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모두가 그 명성답게 최고의 기량을 국내 관객에게 선보였다.
많은 관객에 3000여 석의 객석을 가득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무대와 나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고요한 아름다움, 작은 숨소리까지 조심하게 되는 이들의 무대는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모자랄 정도다. 관객들마저 마음의 자세를 갖추며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한다.
사랑스런 서곡은 조용하고 감미롭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절정의 낭만주의에 정점을 달리며, 그 드라마틱의 절정은 무용수들의 감정연기를 도와준다. 이들의 음악은 대사가 되며 무용수들의 날개가 된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음악 연기는 아쉬움을 남겼다. 무용극에서 음악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데, 좀 더 나은 기량으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명성에 함께 했다면 더욱 좋았겠다.
1막의 발코니 신은 가장 절정의 아름다움을 지녔는데, 불꽃 같이 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매우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감정의 수위를 자유자재로 조율시키며 객석의 관객에게 그 감정 전달에 최고의 기량을 보인다. 무대 위 아무것도 그들의 몸짓보다 화려하지 않다. 특히 줄리엣이 로미오의 품에서 팽그르 도는 장면은 감정의 절정에서 펼쳐지는 명장면이다. 애절한 발코니 이별 신에서 실제 연인의 감정을 완벽히 표현해 보는 사람까지도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장면을 연출한다.
2막은 화려하지만 독창적이고 다양한 군무가 더욱 돋보인다. 광장에서의 즐거운 한때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드러내며, 상상력을 통하여 다른 작품에는 없던 장면을 연출한다. 고난이도 안무는 주역 무용수뿐만 아니라 군무에서도 보여 진다. 무용수들 모두 주역의 기량을 발휘한다. 특히 군무에서 빠른 공간적 변화는 무용극에서의 스팩타클을 매우 감각적으로 표현하며 절정을 이룬다.
로미오와 줄리엣 중 가장 친근한 캐릭터인 유모와 신부는 우스꽝스런 모습보다는 품위 있고 지적인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광장에서 유모와 로미오 친구들이 벌이는 실랑이는 통통 튀는 음악과 조우하면서 그 익살스러움이 강조되었다.
이 작품 중 가장 높이 사는 부분은 극의 드라마틱한 감정의 뛰어난 ‘전달’이다. 대사 없이 음악과 몸동작만으로 충분했다. 기쁨과 슬픔, 떨림, 긴장, 분노 등 이런 추상적인 단어들의 표현은 단연코 최고다. 손짓 발짓뿐만 아니라 무대 위 그들 사이로 흐르는 공기까지 그 감정으로 가득한다. 이런 감정의 세밀한 표현은 객석의 관객을 그들의 드라마에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도록 도와준다.
흔들리기 쉬우며, 늘 존재하는 것도 아닌 사랑은 축복인 동시에 고통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들의 사랑과 ‘사랑한다’의 사랑은 왠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특별해 보인다. 400여년전의 러브스토리가 이 시대 우리에게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랑의 그 변치 않는 가치에 있다. 놀랄 만큼 솔직한 눈빛과 몸짓,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완벽한 드라마틱함으로 관객들은 오랜만에 사랑에 관한 그 ‘해답’을 찾았다.
공정임 전문기자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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