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발마에 불과했던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아-’ 소리가 하나에서 둘이 되고, 둘에서 셋이 되니 화음이 된다. 또는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 선이 모이니 하나의 완전한 면을 이룬다. 이것이 ‘북천(北天)에 잠들다’가 보여주는 확장과 결합의 미덕이다. 더불어 이 작품은 소리와 움직임 각자에 대한 탐구임과 동시에, 그 둘의 결합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작품의 시작은 미미하다. 동그란 핀 라이트 조명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이루고, 세 명의 무용수는 그 꼭짓점을 빙빙 돌며 ‘아_’하고 단음의 소리를 낸다. 기호학 상으로는 ‘ㅇ’에 ‘ㅏ’를 더한 같은 형태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면 각자가 내는 소리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소리는 공중에서 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하나로 뭉쳐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낸다. 화음이라 하기에는 다소 거칠지만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진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현대무용가 밝넝쿨과 인정주 그리고 소리꾼 이자람, 이 세 젊은 아티스트들이 보여주는 센스는 단순히 소리와 무용의 결합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의상에서도 상의는 턱시도 형식의 연미복을 채택하고, 하의는 개량한복을 연상시키는 바지는 입음으로써 단순하지만 동서양이 공존하는 분위기의 의상을 만들어냈다. 소리와 무용의 결합이 그러했듯 의상에서 보여준 동서양의 결합도 결코 어색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
특히, 작품이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서로의 몸이 한데 뒤엉켜 구르는 장면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언어가 다른 각가지의 동물소리를 내는 무용수들이 살갗을 부딪치며 구르고 뒤엉키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서로를 어루만져주기에 이른다. 여기에서는 이 짧은 순간의 장면으로 인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조화의 느낌이 관객석에 따스하게 내려앉는다. 서로를 어루만지던 손을 떼어내도 그 손끝에 남겨진 따뜻함은 여전하다. 무용수들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손끝에 간직한 따뜻함이, 그리고 두 눈에 간직한 애틋함이 오묘하게 관객석을 휘감는 매력이 느껴진다.
작품이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조명이 큰 역할을 한다. 삼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한 세 곳의 핀 라이트 조명이 어느새 서로서로 이어져 세 개의 변이 존재하는 삼각형을 만들고 또 어느새 그 삼각형이 밝은 빛으로 채워져 삼각형 면을 만들어낸다. 또한 작품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서는 세 무용수의 동선을 따라 그려지는 조명이 별 모양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하나의 도형으로 완성되는 분명한 점진적인 조명의 변화는 개개의 요소들이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어떻게 또 하나의(하지만 아주 큰) 개체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조명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서로를 엮어주고 있다는 느낌 역시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무용수들이 서 있는 거리감을 하나의 공간으로 좁혀주는 것이 조명이기 때문이다.
소리꾼 이자람과의 공동 작업으로 터질 듯 시원한 이자람의 소리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 전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작품이었기에, 이자람은 역시 소리꾼으로서가 아니라 작품 구성원의 일부로 동화되어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것은 소중하고, 함께하는 것은 아름답다.
오! 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의 ‘북천(北天)에 잠들다’가 전하는 짧지만 강하게 던지는 작품의 메시지가 참으로 포근하고, 그만큼 긴 여운을 준다. 또한 그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주는 소통임과 동시에 8개월간의 공동 작업을 거친 밝넝쿨과 인정주, 이자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이야기이기도 한 듯 하다.
조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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