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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힙합론 39] ‘이름 빨 주의(명성주의)’에 대한 푸념 2 - (3)

 

“세계의 유명한 미술관 다섯 군데 정도에 전시돼 있다. 원래부터 복제품인 뒤샹의 오리지널은 진작 없어지고, 어차피 복제품이니까 다섯 군데도 가능하다. 그게 미술사에서 이야기 하는 ‘파운드 아트의 정신’이기도 하다.” (박성봉,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의 예술’ 중)

이렇듯 진품은 사라지고 복제품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 것일까? 나는 ‘샘’을 보고 도저히 ‘아우라’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느낄 수 있었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기술 복제와 재생산 시대의 ‘아우라’의 몰락을 전적으로 설명해주는 작품은 바로 뒤샹의 ‘샘’인 듯싶다. 즉 순수 예술은 죽고 대중, 보편적인 예술이 살아난다는 뜻의 예술, 아니면 모두를 조롱하는 예술……. 아니다 본인은 새로움을 제시하는 예술로 받아들일 것이다. 현재의 새로운 몸의 예술인 힙합처럼 말이다.

고전적으로 말하는 ‘오리지널 아우라’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거기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시대적 배경(당시는 세계1차 대전이 발발했었다)에 대한 반항적 이미지를 예술이라는 것으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반항적 이미지의 예술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본인의 감각 속에 ‘아우라’를 느낀 것이리라.)

당시는 전쟁에 대한 반발로 인해 예술의 정체성이 흔들렸으며 ‘다다이즘(dadaism∙과거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비합리성·반도덕·비심미적(非審美的)인 것을 찬미하는 예술 양태)’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었다. 뭐 유행이라기보다는 예술가들이 모여 이렇게 저렇게 예술을 표현하자하고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전통을 무너트리고 독특한 예술로 표현된 것이리라.

선두주자인 뒤샹도 이에 뒤질세라 자신의 반항적 이미지를 예술로 표현했고, 모든 예술은 전쟁에 의해 무너졌다. 이것은 예술에 대한 예술로써의 ‘반항’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반 미학의 다다이즘 정신일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힙합의 정신과 상당히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당시 평론가나 예술가들에게 ‘엿 먹으라’는 증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전쟁으로 인해 죽음과 피비린내로 뒤덮여 있던 상황 속에서도 이면에서는 파인 아트인, 순수예술만을 강조하며 전쟁과는 무관하게 예술에만 전념하는 이들에 대한 강렬한 ‘엿의 펀치’를 날린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뒤샹은 당대 예술의 지배계층이나 귀족들에게 기발한 방식으로 엿을 먹인 것이다. 자기는 욕먹지 않고 그들에게 찬사까지 받으며 속으로는 비웃음으로 응수 했던 것. (소변기 밑을 보면 1917 R. mutt라는 회사이름을 가장한 바보, 얼간이, 개라는 단어가 적여 있다.)
이것은 예술성이라는 껍질을 앞에 높고 그 배후에는 모순된 신날한 조소가 담겨 있는 것이다.

전부터 얘기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바로 ‘이름 빨’ 이다. 뒤샹이란 명성이 있는 인물이 했으니까 예술작품이지, 본인이나 무명작가가 했으면 전시장에 전시도 못했을 뿐더러 미친놈 소리나 듣고 욕만 죽도록 먹었을 것이다. 즉 획기적인 예술의 작품 가치의 기준은 작품에서 나오는 것보다는 작가의 이름 빨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본인은 강력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름 빨이 생기기전 그 만한 명분에 맞게 실력을 갖추기도 하였겠지만, 부정에 의한 오류 된 평론의 과찬이나 대회 입상으로 뜻밖의 이름 빨을 가진 예술가들도 비일비재하다. 그러한 이유는 예술은 실증적으로 입증하기 힘든 가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명성을 얻은 예술가는 게을러져서 명성만을 믿고 작품에 소홀해 작품의 질(質)을 훼손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에 관해 영국의 설치미술가 데미안 허스트는 (미술의 역사를 5부작으로 소개하는 방송에서 현대의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를 찾아 그의 예술과 미적가치로 인정받은 작품을 소개하고 그에게 인터뷰를 응하였는데) 이렇게 말했다. “일이 잘 되어 갈 때가 오히려 힘들죠. 게을러지면 쓰레기 같은 작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사게 쉽게 만들거든요. 그런 걸 경계해야 되요. 저는 항상 존경하는 영웅들을 생각해요, 그들은 상황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끊임없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죠. 가장 어려운 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에요.”

그도 예술가들이 자신의 명성을 찾아 결국에는 명성을 얻은 예술가들 중에는 게을러져서 그 명성을 악 이용해 명성에 걸맞지 않은 작품을 발표하여 돈 벌고, 비평가에게 인정받고, 대중에게 명성을 쌓아 간다고 말했다.

그러한 악행을 막기 위해서는 예술가 자신의 명성에 맞는 진실함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이름 빨’ 있는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명성에 안주하는 것에 회한을 품고, 그도 그 자신에게 명성에 대한 따끔한 충고를 해주고 있는 듯하다. 미술에서는 특히 일반적인 사물들을 알아 볼 수 있게 만드는 보편적이고 일관성 있게 표현하는 실증주의적 작품보다는 내면성을 표현하는 작품인 초현실주의나 설치미술(더욱더 많겠지만)의 추상적 작품은 더욱더 이름 빨에 의해서 미학적 가치나 예술로서 인정받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보편적인 관점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설명될 수도 없고, 확연히 나타나기 보다는 확연하지 않은 것이 나타나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치기준은 지극히 난해하기 때문에 명성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경우가 허다하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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