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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힙합론 37] ‘이름 빨 주의(명성주의)’에 대한 푸념 2 - (1)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에서 “저자란(본인은 예술의 총체적 의미에서 ‘작가’라고 얘기하고 싶다.) 중세를 벗어나자마자 영국의 경험주의와 프랑스의 합리주의, 종교 개혁의 개인적인 신앙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의 명성을, 좀 더 고상하게 말한다면 ‘인격(personne humaine)’이라는 것을 발견 후에 개인(individu) 생산된 현대적인 인물이다. 그러므로 문학 안에서 저자의 ‘인간(personne)’에 최대의 중요성을 부여한 것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요약이자 귀결인 실증주의라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이다”라고 말했다.

즉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이라는 글에서 본인의 생각인 명성주의라는 점과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다. 즉 작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텍스트 자체와 독자의 해석만이 남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의 능력은 이야기를 텍스트로 그저 ‘필사(얘기를 글로 옮기는)’하는 존재로서 독자로 하여금 배제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작가의 유명세에 고립되어 해석하지 않고, 독자 자신의 순순한 견해로써 텍스트를 자유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본인식대로 얘기하자면 이름 빨에 휘말려서 작품을 해석하지 말고 작가의 명성을 배제한 채, 순순한 자신만의 고유한 해석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공연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 관객의 순수한 해석만을 위해서 작가자체의 이름이 사라져야 한다면 단순하고 극단적으로 예술작품 자체에 이름의 등기를 삭제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요즘 시대의 작품 팸플릿에 안무자의 프로필에 하나라도 더 쓸려고 하는 것이 현실인 데 작가(안무가, 연출가, 출연자) 이름을 팸플릿에서 삭제 한다면 예술가들이 난리가 날 것이다. 자본주의 예술체계에 맞지 않는 처세일 것이다. 당연 예술가는 힘들게 만든 자신의 예술작품 속에서 보상심리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 역시 익명으로 저서를 발표했다면 과연 어떠한 리뷰를 들었을까? 본인이 말한 명성 즉 이름 빨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그의 이론과 글들이 무명작가들에 비해 빨리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인정받았을까? 만약 책이나 모든 예술품에 이름을 등기하지 않는 다면 당연 작가의 이름 빨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작품만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의 보상인 명성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혼자 하고 혼자 좋아하는 자위행위나, 죽 써서 개 준다는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고대 그리스의 대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가 다른 작가가 쓴 거라면, 그는 죽어서도 얼마나 억울할까. 그것을 ‘신통기’의 저자 헤시오도스가 썼다고 알려진다고 친다면 그 자체가 죽 써서 헤시오도스에게 준 것이다. 만약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의 저자도 아닌데 구전이나 잘못된 역사서에 의해서 호메로스가 저자라고 됐다고 한들, 그 알려지지 않은 원 저자도 죽 써서 호메로스에게 준 것이다.

이름 빨로 인해 작품의 판단기준이 변한다는 본인의 생각을,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 중 하나로 인용해볼까 한다. “저자(작가)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에 안전장치를 부과하고, 최종적인 기의를 제공하고, 글쓰기를 봉쇄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비평에 아주 걸 맞는 것이다. 비평은 작품 아래에서 저자(혹은 그 위격<位格>에 해당하는 사회, 역사, 심리, 자유 등)를 발견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삼는다. 그리하여 저자가 발견되면 텍스트는 설명되고, 비평은 승리한다.”

바르트 자신도 본인의 이름 빨에 의하여 자신의 이론이 효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본인은 전적으로 예술 작품에는 저자의 이름 빨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은 그것을 판단하기 전 어떠한 자서전적 교육적 지평에 의해 판단하므로 절대적으로 저자의 이름 빨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피카소는 원숭이가 그린 그림을 미술 비평가에게 가져가 이것이 자신이 그린 새로운 그림 스타일이라고 철학적으로 둘러댄 다음 비평을 의뢰하니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장면을 피카소는 몰래 비디오로 찍어 방송에 내보내며 비평가들을 조소하였다고 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비평가에게서도 그 저자의 이름 빨에 따라 원숭이가 그린 그림이 위대한 그림이 될 수도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 주는 내용이다.”

이점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예술 작품은 작가의 절대적 이름 빨이 적용된 다는 것은 예술의 가치파단과 상업적인 물질의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는 한, 이러한 것들이 사라지기 전까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뒤샹의 샘인데, 이것이 어찌하여 예술사와 미학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하고 작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것은 작가의 명성인 ‘이름 빨’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보겠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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