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우스 신은 제게 그런 법을 내리시지는 않았습니다. 저승의 신들과 함께 사는 정의의 신도 그런 법을 우리 인간에게 정해 놓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전 당신의 그 법이 우리 인간 세상에서는 신들의 확고한 불문율을 넘어설 만큼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중략) 인간들의 법은 제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포고가 있었건 없었건, 어차피 전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중략) 다만 제 어머니 아들의 주검을 장례도 치러주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것이 슬플 뿐입니다.” <안티고네 中>
연극을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래서 쉽게 보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낯설지 않은 질문을 종종 받게 되는데, 그때마다 본인은 “등장인물이 왜 갈등하는가”를 찾으라고 대답한다. 연극을 뜻하는 단어 가운데 ‘drama’라는 말이 있다. 이는 ‘dromenon’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는데 뜻은 ‘갈등하는 인간’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희곡을 갈등의 문학이라 지칭한 바 있다. 종합해 보면 ‘갈등’이 희곡/연극의 요체요, 희곡 이해의 지름길인 셈이다.
그렇다면 갈등이란 무엇인가? 바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보면, 갈등이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로서, 갈등상태는 두 개 이상의 상반되는 경향이 거의 동시에 존재하여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을 못하는 것을 말한다. 연극이 우리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등장인물이 갈등한다는 건 결국 우리 인간이 갈등을 겪는다는 것과 똑같은 뜻이 될 것이다. 우리 하루 일과를 돌아보면 우리는 정말이지 끊임없이 갈등한다. 즉 매순간 선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일어날까 말까, 지하철을 탈까 버스를 탈까, 밥을 먹을까 빵을 먹을까, 이걸 입을까 저걸 입을까. 연극 속 등장인물도 갈등한다. 죽느냐 사느냐, 죽이느냐 살리느냐. 갈등은 상이한 내적 본능/욕망끼리의 충돌로 비롯되거나 사회적인 책임과의 마찰로 생겨난다. 전자가 갈등이 인간 내면의 문제이기에 내적 갈등이라면, 후자처럼 갈등의 요소가 외부에서 오는 경우를 외적 갈등이라고 한다.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갈등일 것이다. 갈등은 결국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즉 A를 (선택)할 것인가 B를 (선택)할 것인가. 거기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극 장르를 단순하게 구분하자면, 선택의 결과가 선택한 주체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희극이요, 좌절과 절망을 안겨준다면 비극이다. 갈등이 없다면 드라마는 성립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면 무슨 고민이 있을 것이며 무슨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의 삶 속 세상이 아닌 동화 속 세상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연극이 인간의 삶을 그린다면 갈등은 필연적이다.
갈등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는 흔히 햄릿을 떠올린다. 그런데 희곡의 역사에서 갈등의 원조 격인 인물이 있는데 바로 안티고네다. 그녀가 겪는 인간적 도리와 사회적 책임 사이의 갈등은 가장 전형적인 갈등 양상이다.
<안티고네>는 테베의 랍다코스 왕가에서 일어난 일련의 비극적인 전설을 바탕으로 쓴 소포클레스의 삼부작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이어 마지막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모르고 저지를 일로 저주 받은 운명을 뒤늦게 깨닫고서, 스스로 눈을 찌르고 나라 밖으로 추방되길 바라는 것으로 끝맺은 <오이디푸스>(본 연재 1회 참고)는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로 이역 땅을 지향 없이 헤매다가 흐르는 세월에 몸은 이미 늙어 아테네의 변두리인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로서 한 많던 세상을 등진 다음, 그의 맏딸 안티고네는 동생인 이스메네를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죽음뿐이었다.
외삼촌인 크레온이 두 오빠 중 폴리네이케스를 조국에 활을 당긴 반역자라 해서 매장도 해주지 않자 신의 법칙에 따라서 자신이 몰래 오빠를 매장하려 한 것이다. 안티고네는 아직 나이도 젊은데다가 역경에서 자라난 강한 의지와, 운명의 학대에 시달린 동기간에 대한 깊은 애착과 왕녀로서의 체통으로 일관하는 도도한 기질을 지닌 여자였다. 이에 비해 크레온은 어디까지나 형식주의자로서 무엇보다도 법의 존엄성을 앞세우는 성격과 위치에 있는 독재자였다. 물론 그의 주장이 옳기는 하지만 발칵 화를 잘 내고, 법의 존엄성은 알아도 인간의 고귀함에는 아예 눈가림을 한 인물이었다. 이런 두 사람 사이에서 피할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란 날카로운 대립, 그리고 드디어는 크레온의 사형선고에 따라 안티고네가 스스로 택한 자살.
이 사건으로 인하여 안티고네 자신뿐만 아니라 약혼자인 하이몬과 크레온의 부인이자 하이몬의 어머니인 에우리디케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나, 테베 인들과 크레온에게서 정당한 이해를 받고 많은 교훈을 주게 되는 것도 정의에 대한 안티고네의 불굴의 정신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과 신의 율법, 국가와 개인, 국가와 가정이 대립하며 갈등이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안티고네>는 기원전 441년에 써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작품의 성공으로 소포클레스는 사모스 원정의 장군으로 뽑히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소포클레스의 희곡의 특징으로 꼽히는 중심적인 갈등과 그것을 에워싼 주인공들의 성격의 밑바탕을 드러내 보이는 수법은 극이 진행함에 따라 강도와 명확성을 높여가고 있다.
1924년에 써진 장 아누이의 <안티고네>는 그의 비극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서 아누이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현대적 배경, 현대적인 군인과 현대적인 성격이 담기긴 했지만 플롯만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기초로 이루어져 있다. 아누이는 안티고네의 고뇌와 함께 통치자인 크레온의 고뇌도 정당한 것으로 보여준다. 이성과 타협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크레온은 민중의 이익을 위해, 또 통치자로서의 자기 권리를 위해서 안티고네를 설복하려 한다. 서사적 수법을 가진 아누이의 <안티고네>는 크레온이 상징하는 인습과 안티고네가 상징하는 결코 굽힐 수 없는 인간 양심의 대결을 보여준 것이다. 1948년 브레히트의 <안티고네>는 1차 세계대전과 연결되어 베를린을 배경으로 권력에 취한 크레온의 횡포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갈등상황에 처했을 때 고민을 하지만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준이나 지표로 삼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결과가 다른 사람의 삶을 해치거나 인륜에 반한다면 이를 기준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갈등을 하는 이유도 혹여 이것이 누구를 해친다거나 나를 파괴하는 ‘잘못된’ 선택이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리라. 최근 연쇄살인범이 신문과 보도 매체를 장악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가 여러 사람을 죽이는 동안 갈등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욕망이 생겼을 때 그저 이를 따른 행위만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기까지 갈등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는 법일 진대, 그는 우리에게 선택의 기준이 없고 갈등하지 않는 인간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글 김지명(무대감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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