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삼면에 그려진 무신도와 바닥에 깔려있는 흰 쌀, 한가운데 깔려 있는 멍석. 극단여행자의 연극 ‘햄릿’은 무대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신당을 연상케 했다. 관객을 압도하는 강렬한 무대 장치들은 저변에서 들려오는 무당의 구음과 어우러져, 음산함을 넘어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윽고 무대 위로 햄릿이 등장한다. 한데 그는 왕자라고 하기엔 꽤나 추레한 차림을 하고 있다. 하얀 추리닝에 얼굴을 가리는 장발머리는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백수를 연상케 한다. 이내 부왕의 극락천도를 위한 제(祭)가 준비되고, 햄릿은 진오기굿의 과정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다. 까만 정장으로 성장한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 그리고 그 밖의 인물들은 지극히 현대적이고 모던한 차림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의상은 햄릿의 하얀 추리닝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동시에 무녀들의 사실적인 의상과도 충돌을 빚어낸다. 이들의 조합은 묘한 긴장감을 유발해내며 관객들의 시각을 자극한다.

미치광이로 위장한 햄릿은 자신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오필리어에게 광증의 끝까지 폭주한다.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복수에 대한 욕망으로 몸부림치던 햄릿은 오필리어의 따귀를 때리며 그녀에게 수녀원으로 갈 것을 종용한다. 사디즘적인 요소마저 엿보이는 햄릿의 이러한 행위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내추럴한 그의 의상과 함께 가슴속에 맺혀있는 분노와 한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햄릿의 변심과 아버지 폴로니어스의 죽음으로 미쳐버린 오필리어는 얼굴을 뒤덮는 고깔 모양의 모자를 쓰고는 춤을 추며 등장한다. 짧은 커트머리에 단정한 검은 원피스 차림이었던 그녀는 가슴 아래께까지 젖어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하얀 옷을 입고는 무대를 떠돈다. 구천을 떠돌 듯 그녀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볍다.

익사한 오필리어의 넋을 달래기 위한 수망굿은 오빠 레어티즈의 분노를 점점 고조시킨다. 넋을 건져내고, 활활 치솟아 오르는 불길이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레어티즈는 이버지와 오필리어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열망으로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마침내 햄릿과 레어티즈는 목숨을 담보로 한 숙명적인 대결을 펼친다. 칼로 표현되는 부채의 형상은 제의를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바람처럼 날아가 버릴 그들의 생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독이 든 잔의 술을 거트루드을 시작으로 그들은 죽음의 파멸 속으로 삽시간에 빨려 들어간다. ‘이제는 침묵 속에서 쉬고 싶다’는 햄릿의 말을 마지막으로 벌어지는 산진오기굿은 원통하게 죽은 다른 원귀들마저 불러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바탕 굿판이 끝난 무대 위에는 흩뿌려진 쌀들과 무구(巫具)들만이 고요히 놓여있었다. 햄릿의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풀리길 염원하는 마음위로 방울소리의 급박한 가락이 귓가를 가득 메웠다.


박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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