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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힙합론 31] 니진스키 ‘목신의 오후’에 대한 이야기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 1842~1898)의 장시 ‘목신의 오후(1876)’를 안무한 작품으로서 시의 난해한 부분을 춤으로서 표현하였다.


독서광이던 니진스키가 이런 난해한 문학작품을 춤 예술로서 표현 한다는 것은 이상할 일도 아닐 것이다. ‘목신의 오후’ 음악을 작곡한 드뷔시도 말라르메의 상징주의 시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곡으로 이 작품에는 꿈과 신화, 에로티시즘적 이미지가 혼합되어 있다. 더불어 말라르메의 시에서 감지되는 이미지는 드뷔시의 상상력에 의해 더욱 상징적이고 섬세한 에로티시즘으로 표현되었다. 니진스키의 일기에 나와 있는 독서 습관을 보면 그는 대체로 난해하고 깊이 있는 작가들을 탐독하였다. 니체, 고골리, 푸슈킨,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모파상, 졸라 등등 니진스키는 여러 나라의 작가들을 섭렵하면서 많은 정신적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그가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를 읽었다는 것은 그리 특이한 점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니진스키는 실제로 ‘목신의 오후’를 읽지 않았다고 한다.

말라르메로 말하자면 그는 발레에 대한 많은 평을 썼으며 그가 사랑하는 연인 역시 프랑스 발레단의 발레리나였다. 그런 그의 시적 영감은 보들레르라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에게 얻었다. 보들레르는 자극적이고 데카당스하며 난해시의 최고봉으로 일컫는 단한권의 시집 ‘악의 꽃’을 출판하여 사회에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시로 인하여 국가에 벌금형과 삭제를 명령받기도 하였다. 보들레르는 자신에게 열광하는 말라르메와 베를렌의 기사를 접하고, ‘이 젊은이들은 나를 몹시 무섭게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보들레르의 시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말라르메는 ‘목신의 오후’라는 시를 쓰게 됐으며, 니진스키는 이 시의 내용을 듣고 영감을 받아 무용 작품으로 승화시켜 발레 계에 큰 충격과 스캔들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광기어린 삶을 살았으며 자신들의 작품이 출품 되었을 때 사회적 인식이나 반응도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단 말라르메는 영어교사로서 온전한 삶을 살았다.) 그들의 예술적 사상은 서로 전해져 서로의 예술적 가치관을 변화시켰으며 그러한 정신이 작품 속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문학이나 철학이 빈약한 곳에서는 예술이 홀로 설수 없으며, 러시아 발레의 중심인물이었던 니진스키도 이러한 철학적 사상을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는 원래 무대에서 상연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극적 스토리가 없다는 이유로 방치해 두었다가 무대화를 위해 극성(劇性)을 삭제, 1866년 늦봄에 퇴고 하였다. 이후 10년이 지나 1876년에 화가 ‘마네’의 삽화로 출간된 것이 지금의 시 ‘목신의 오후’라고 한다.

니진스키의 ‘목신의 오후’와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는 내용상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니진스키가 각색한 ‘목신의 오후’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반은 인간 반은 동물인 판은 포도를 먹고 피를 연주하면서 여름날의 오후를 보낸다. 그러다 지나가는 요정들을 보고 그의 욕구가 불타오른다. 요정 둘 중 과감한 한 요정 외에는 모두 그의 접근을 뿌리친다. 그녀는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서다 스카프를 하나 던져놓고 도망친다. 목신은 스카프를 집어 사랑을 하듯 부드럽게 애무한다. 말라르메의 시에서 스카프는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판이 잠에서 깨어나 꿈속과 과거의 욕정을 그리워하는 회상을 표현한 것에 비해, 니진스키 ‘목신의 오후’는 판이 잠에서 깨어나 욕정의 대상을 현실에서 찾아 즐긴 뒤 도망간 요정을 회상하며 스카프에다 성적행위를 한다는 내용상의 차이점이 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성에 대한 끓어오르는 욕정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니진스키의 ‘목신의 오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카프에 성적행위를 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 말라르메 ‘목신의 오후’의 시 중에서 스카프에 대한 욕정의 성감대적 상징을 일으키는 시 구절은 이러하다.

“한쪽 여자의 행복한 몸 주름 속에 내 불타는 기쁨의 웃음을 감추려 하자마자, (온몸에 불을 켜는 작은 동생, 순진하고 얼굴도 붉히지 않는 저쪽 여자의 흥분에, 정숙한 그네 흰 깃털이 물들도록, 한 손가락만 꼭 잡고 있는 동생), 어렴풋한 죽음으로 풀리는 내 팔에서 나의 포로는 끝내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 내 아직도 그로 하여 취해 있었던 가엾음의 눈물도 남기지 않은 채.” 이 시의 구절이 니진스키의 작품에서 ‘판의 욕정의 대한 그리움과 그 그리움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부분’과 매치된다. 한 여자는<몸에 불을 붙이는>정열을, 다른 여자는 <흰 깃털의 정숙함>을 육화한다. 이 상극성이 지탱하는 긴장감 속에 목신이 찬미하는 시적 성감대가 구성되어 있다. 이 두 여자들이 <포로>로 화하는 순간, 종말을 고하는 <죽음으로 풀리는 내 팔에서>사랑에서 볼 수 있듯이 니진스키는 판이 갈구하던 정숙하고 아름다운 요정이 떠난 종말을, 인간은 정숙함을 더욱더 선호하기에 흰 깃털의 정숙함을 다른 사물(스카프)로 전이하여 그 성적 행위를 불러일으킨 것이리라…….

그 시대에 이러한 행위는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행위를 예술적인 것으로 바라봐 주고 그 가치로서 바라봐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당연 명성이 있는 ‘발레뤼스 발레단’에서 무용의 신으로 유명한 무용수 니진스키의 첫 안무 작품이라 더욱더 예술적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지도 모른다. 보들레르의 시학 중 ‘기발한 것은 걸작을 이룬다’는 말처럼 당시로서는 ‘기발한 생각의 작품’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전적 시학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4장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상 그 자체가 보기 역겨운 것이라 할지라도, 예술적 관점에서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니진스키의 과감한 성행위가 이러한 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당연히 관객들에게 충격 속에서도 즐거움을 주는 예술이었을 것이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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