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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명의 희곡읽기 12] 셰익스피어의 여인들

 

데스데모나, 난 당신은 다를 거라 생각했어. 당신이 내 친구라고. 난 당신을 숭배했지. 그런데 당신은 오델로와 똑같아. 속기 쉽고 폭력적이고. 줄리엣,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죽기를 바라서는 안 돼. 너는 죽음과 더 사랑에 빠진 것 같아. 죽음이 더 사랑하기 쉬우니까. 상관없어. 난 당신들을 구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기념비적인 광대였으니까…….

무대의 꽃은 배우, 그것도 여배우다. 여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세상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된다. 그런데 정작 무대 위에서 여자 배우가 등장하여 정식으로 연기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럼 그 전에는 여자 배역이 없었던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등장하는 안티고네, 우리가 잘 아는 페드라며, 메디아 모두 여자였다. 그렇다면 누가 이 역할들을 했을까? 바로 남자다. 남자들이 여자 역할을 했던 것이다. 연극이라는 장르가 확립되던 무렵 가면을 사용한 것도 이런 남자의 여자 연기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변성기 이전의 미소년이 젊은 여자 역할을 했고-톰 스토파드가 쓴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영화를 보면 하룻밤 사이에 변성기가 와서 줄리엣 연기에 애를 먹는 배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이 지긋하고 연기 경험이 많은 배우들이 유모나 엄마 역할을 했다.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공연 관습이 비단 서양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공연과 영화에서 성공신화를 이룩한 <왕의 남자>의 공길이 그러하고, 일본 전통극인 가부키(歌舞技)의 출연진도 남자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영화 <패왕별희>에서도 장국영이 경극의 여형배우(남자이면서 여자 역할을 한 배우)로 등장한다. 장국영이 자살했을 때, 그가 동성애자였음이 드러났을 때,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여느 여자보다도 여성스러웠던 그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여성 배역을 맡은 남성은 끝까지 여성역할만 맡곤 했다. 그들이 남자 역할을 하면 오히려 어색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여자의 역할을 여자보다도 더 여자답게, 여자가 봐도 소름끼칠 만큼 여성스럽게 표현했다. 그 이유는 바로 여자들은 동성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여성의 몸가짐이나 음성 등을 고민하지 않고도 여자이기에 몸에 밴 대로, 습관적으로 연기하는 반면, 남성들은 남성의 입장에서 그들이 여성답다고 여기는 특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막상 여자가 여자 역을 맡았을 때 이를 어색하게 여긴 적도 있다고 한다. (남성이 연기하는 여성과 여성이 연기하는 여성 사이의 괴리는 클레어 데인즈 주연의 <스테이지 뷰티>라는 영화에 잘 나타나 있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당시에도 여성의 역할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여자배우가 등장한 것은 1700년대 후반 독일에서이다.) 당시의 이런 공연상황을 떠올려보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대개 남자이며, 그나마 등장해도 남자에 비해 여자 역할이 미약하다는 점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진지한 비극에서 더욱 그러하다. 뚜렷한 성격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보다 줄리엣이나 오필리어, 데스데모나 등 그저 젊고 여린 아가씨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꼽는다면 레이디 맥베스 정도일 텐데 그녀도 현대 연출가들에 의해 작품이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개의 여자주인공들은 남성들의 권력과 질투에 희생될 뿐이다.
그래서일까?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되는 일이 비교적 활발하다. 여기에 최근에 만난 한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굿나잇, 데스데모나! 굿모닝, 줄리엣!>이라는 작품이다. 캐나다의 앤-마리 맥도날드(Anne-Marie MacDonald)라는 작가가 쓴 이 작품은 영문학자인 콘스탄스 레드벨리가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오델로>와 <로미오와 줄리엣>에 광대가 등장하는 필사본(foolscap: 대판양지-fool’s cap: 광대 모자를 언어 유희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 감성은 셰익스피어의 문체와 유사하다.)이 존재하고 그 광대에 의해서 이 두 작품은 희극이 될 수 있었다고 추측한다. 그러던 중 콘스탄스는 <오델로>에서 이아고의 책략으로 오델로가 데스데모나를 죽이려는 현장에,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결혼하려는 날로 가게 되고, 그녀로 인해 사건은 뒤죽박죽으로 얽힌다. 결국 콘스탄스 자신이 광대요, 작가였음을 깨달으며 작품세계로부터 빠져 나온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데스데모나와 줄리엣의 모습이다. 그녀들은 우리가 아는 대로 연약하고 모든 걸 운명에 내맡기는 순종적인 순정파가 아니다. 데스데모나는 오델로만큼이나 호전적으로, 줄리엣은 남자를 밝히는 반항아로 그려져 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진실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광대는 바로 그 깨달음을 위해 존재해야 했다.(자세한 줄거리 소개는 호기심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생략하련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처럼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해서 그들에게 과거와 다른 옷을 입히는 것은 인물에 대해 새로운 편견을 형성할 위험이 따르는 모험이다. 그러나 고전 또는 인물의 재해석은 생각지 않은 측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여담이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작품에서 셰익스피어에게 가상의 누이가 있다는 가정 아래 그 누이도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셰익스피어만한 대문호가 될 수 있었을까?라는 주제를 논하고 있다. 그 답은 부정적이다. 이것은 미국의 문학평론가 캐롤린 하일브런의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에서 과거 여성에 대한 글쓰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글들을 보면, 무대 위에서만 여성이 억압을 받은 것이 아니고 당시의 현실이 여성에게는 억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연극이 삶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당시 여성의 상황이 미약하고 순종적인 여성 인물들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글 김지명(SMG tech 무대감독) j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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