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이제 혁명이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작품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무용계는 오래전부터 대중을 위한 무용을 추구하였지만, 그것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는 작품의 질을 바꾸기보다는 대중이 작품을 이해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대중이 작품을 이해하기보다는 작품이 대중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작품에 적극적인 상업성과 오락성을 도입하여야 한다. 모던힙합 선언문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현대무용 작품의 질은 깊이성과 심오함이 있으면 예술적이고 대단한 작품이 되는 줄 알고 있다. 이것은 고전적인 작품 스타일이며 깊이성과 심오함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깊이성과 심오함은 현시대의 작품에 맞게 진지한 상업성과 오락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작품이 대중과 예술가를 위한 진정한 작품이 될 것이다.
무용예술가들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전주의적 깊이성과 심오함을 과감하게 버리고, 고전주의에게 아첨할 정신을 (단테가 ‘신곡’에서 말한)죽은 아첨꾼의 영혼에게 벌을 준 ‘똥물’에 집어던져야 할 것이다. 자ㅡ 그런 고전주의적 작품성에서 헤어 나와 우리는 현대적이며 대중을 즐겁게 하고 이해시키는 예술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상업성과 오락성이 가미된 진지한 예술작품이다. 무용예술가들은 상업성과 오락성이란 말을 듣게 되면 두려워하곤 한다. 자기 작품의 질이 낮아질 것 같은 기분과 많은 질타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전주의적 작품성에 심하게 물들어 아예 세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정신에 다시 한 번 똥물을 집어 던지리라!
현시대의 상업성과 오락성이란 당연히 예술작품의 기본적인 예의이다. 작품을 보고 비극적이든 희극적이든 울음이든 웃음이든 슬프거나 기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관객이 작품으로 하여금 느끼거나 이해했다는 재미가 동반되었다는 증거다. 그러한 ‘재미’라는 관객의 기준에 진지함의 상업성과 오락성이 흡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발 부탁인데 말도 안 되고 재미없는 작품을 고급예술이라는 오만으로 작품을 합리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지 못하기에 난해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재미라는 것은 작품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느끼거나 이해했다면 우리는 재미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의 예의를 고전주의적 예술가들이 치부로 여겨, 오히려 현시대의 흐름에 맞고 넘어설 수 있는 독창적이며 창조적인 작품의 질을 흐려놓고 있는 것이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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