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들 무용예술가나 비평가들은 힙합을 내용 없는 형식적인 춤, 즐기는 것, 오락적이며 기교적인 것으로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인지는 자세한 고찰 없는, 혹은 무지에서 오는 오해로 인한 오류의 인식이다. 발레작품에는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것은 발레에서 단순한 유희와 오락을 위한 무용 혹은 일련의 무용을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하나의 구경거리로 삽입하는 춤이다. (일반적으로 종말에서 춘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주역 이외에 보다 뛰어난 무용수를 내세우기 위하여 안무가가 의도적으로 작품 가운데 넣는, 의미나 테마가 없는 춤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디베르티스망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 부정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현재 짧은 시간 안에 공연되는 힙합공연은 디베르티스망 스타일의 성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즉, 힙합의 공연을 우리는 ‘퍼포먼스’ 또는 ‘쇼’라고 일컫는다. 발레의 경우 디베르티스망은 전체 공연에서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지만, 힙합은 전부가 디베르티스망 스타일로 이루어져 내용보다는 화려하고 강한 동작이 주를 이루게 된다.
힙합 춤은 관객에게 몸짓자체가 얼마나 강하게, 감각적 시각에서 인식될 수 있느냐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로인한 관객으로 부터의 보상은 호응과 갈채로서 무대 위의 댄서들을 만족시킨다. 아무런 내용의 줄거리가 없더라도 댄서들 자신들의 춤만을 인정받기 위하여 무대 위에서 열정을 쏟아 부으며 춤을 추는 것이다. 이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내용인 것이며 소중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예술인 것이다.
최근 유럽과 한국에서는 무용과 연극의 교류로 인해 여러 장르와 내용이 함유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힙합 춤 자체에서도 철학적 몸짓을 구사하고 있는 추세다. 이렇듯 힙합도 무용의 처음단계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절차를 밟으며 서서히 예술로서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다. 발레의 경우 ‘장 주 노베르’부터 ‘마리우스 프티파’, ‘알렉산더 고르스키’, ‘레프 이바노프’, ‘미셀 포킨’에 이르기 까지 내용위주의 무언극적인 발레무용이 발달해 왔다. 힙합처럼 동작만을 보여주던 공연에서 이러한 무용안무의 천재들이 등장 하면서 무용 공연 스타일도, ‘내용과 형식을 갖춘 무언극적인 스타일’로 변화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프티파식의 고전발레는 시대적 감각이 뛰어난 무용수들에게 고정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발레의 개성을 무뎌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말이다.(이것을 최초로 무너트린 것이 러시아 ‘발레 뤼스’의 ‘미셀 포킨’이기도 하다.)
필자가 오늘날 작품의 내용만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현대무용계의 스타일을 보면 춤 동작이 점차 쇠태해가고 있으며, 동작보다 대사위주의 무용극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춤의 동작보다는 억지를 띄어서라도 내용을 전달하려는데 치중하기 때문에 춤의 동작을 상실해가는 단점도 있으며, 그것이 연극인지 무용인지 조차 구별이 안가는 공연도 가끔 볼 수 있었다. 이것은 관객에게 혼란을 줄 뿐 아니라 무용수들의 신체 움직임을 감상하려고 온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춤은 디베르티스망적인 면이 있어야 무용수 신체의 움직임으로서 경탄과 환상을 관객에게 주어 감각을 깨우고 시각적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것에만 너무 치중한다면 단순한 쇼에 머물러 예술의 가치가 저하 될 수도 있다는 위험도 있다. 따라서 화려한 힙합 춤에 내용의 의미를 전달하는 형식을 조화시킨 다면 관객들에게 더욱더 강한 시각적 만족과 지적 호기심까지 자극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춤의 화려함 속에 부드러움과 강함, 그에 대한 내용의 전달, 그 속에 미학과 철학, 예술성까지 포함 된다면 새로움의 춤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다. 춤 공연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공연을 판단하게 하는 오감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 바로 시각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적 만족이 결여된다면, 사람은 뇌의 운동이 둔해져 결국 공연 내내 졸음을 참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 (사회적인 부조리에서 떠나 스트레스도 풀고 오락적인 유희도 즐기면서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고자 춤 예술을 보러 돈을 주고 온)관객은 단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극단에 이르러서는 코까지 골면서 말이다.
힙합 공연장에 가면 사람들은 절대 졸지 않는다. 시각적 만족과 스트레스의 해소, 오락적이며 유희적인면을 즐기면서 삶의 열정을 가지고 간다. 무대 위 댄서들의 화려한 춤과 음악이 흐르기 때문에 그들은 졸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강한 것만 느끼므로 시간이 오래 지속 될수록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하여 같은 움직임인 강한 동작에 감각은 점차 둔감을 나타낸다. 더욱더 강한 동작이 나올 때 까지는 감각은 지속적인 지루함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너무 내용만을 전달하려는 무용극과 너무 오락적인 디베르티스망 적인 힙합 춤, 이 두 가지의 단점을 서로 보완하여 조화시킨다면 당연 큰 장점이 되어 관객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완전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며, 경험 또한 필요하다. 무용을 해봐야 할 것이며, 힙합 춤도 해봐야 할 것이며, 두 춤의 작품을 많이 보아야할 것이다. 그래야지만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육체로 표현하는 춤이 다만 방식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무지로 인해 오해에서 오는 인식적 오류에서 벗어나 완벽한 예술의 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의 전달과 화려한 춤, 무언극 적이며 연극적인 완벽한 조화 이것은 새로움을 갈망하는 춤 예술의 발전과 발견 속에서 혁명으로 인해 다가오는 창조일 것이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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