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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힙합론 19] 도덕의 파괴 (1)

 

◎ 우리는 나이 경력 계급 신분 이 모든 것에 관련된 것인 도덕을 타파해야 한다!

우리의 창조성을 짓누르는 위와 아랫사람의 도덕적 관계로 인해 자신의 강인한 주장을 역설(力說)하지 못한다. 때론 그러한 이유로 억지로 양보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구습적 도덕으로 인한 굴욕이다. 이런 것을 타파할 때 천재적이고 진정한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나이, 경력 계급, 신분, 이모든 것을 총체적인 언어로 권력이라고 부르겠다.)

이번 내용은 겸손의 미덕이 아니라 위선이라는 내용과 유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자신의 견해를 뚜렷이 얘기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 나이가 몇 살이야? 경력이 얼마나 됐는데?” 등의 비슷한 여러 가지 조건을 내세워 아랫사람의 기를 누르고 권력자의 권리를 확실히 상기시키게 된다. 이런 것은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도덕적인 규칙과 틀에 의해 당연히 아랫사람은 윗사람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하고 경험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도 물론 모든 것이 통하지는 않겠지만, 예술에서 만큼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지 못하는 것은 지성에 의한 것이지만, 느끼는 것은 감각에 의한 것이다.

경험은 감각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예술은 이성에 호소하기 보다는 감정에서 나오는 감각에 의존하여 자신의 작품을 창조한다. 예술작품 자체가 이성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이 되는 순간 과학이 되는 것이다. 예술은 현실의 문을 닫고 내면을 문을 열어 현실에 비춘 것이 작품이기에 그것은 이성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곧 감각의 표현으로 이성을 탈을 쓰고 현존하게 된 사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성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수학적으로 계산된 과학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이성과 지성은 그 규범적인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더 많이 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과 감각에서 나온 직관은 어느 것으로도 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의식에서 솟아나는 예술적 기질을 자신보다 권력이 낮다는 이유로 자신의 가지고 있는 기질을 앞세워 그를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않고 억압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도덕적 인식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식의 대부분이 이러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윗사람의 권력과 이성이, 아랫사람의 뛰어난 본능을 너무 억압하면 그것은 무의식에 쌓이게 되고 그러한 것을 무의식 속에서 욕망을 더욱더 강하게 자극하여 결국에는 신경증에 이르게 되어 자신을 누른 권력자 앞에 증오를 느끼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러한 경험을 그대로 아랫사람에게 되풀이 하는 것이다. 피해보상의 본능적 원리로서 말이다. 이러한 원리로 인해 자신이 아랫사람이었을 때 당했던 것을 윗사람이 되어 그대로 행하여 무의식 적으로 과거에 대해 위로받게 되고 거기서 권력의 쾌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바로 사회적인 권력으로 인해서 말이다. 이러한 불문율적인 것은 젊고 활기 왕성한 예술가들의 독창적이며 창조적인 예술관과 행동을 짓밟는 행위이며 더 나아가 세계적이며 독창적인 예술적 기질을 갉아먹는 행위이다. 만약 故백남준 선생님이 한국에서 자라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과연 그는 그런 엽기적이며 독창적인 행위가 한국에서 인정받았을까. 니체는 자신의 저서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보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언제나 빗나가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이다. 이 말은 한국인으로 세계의 최고이자 최초가 된 고인이 된 백남준 선생님과 최초를 이룬 위대한 창조자들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자신의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적 성향을 자신보다 높은 권력 앞에서 예의라는 파렴치한 도덕 앞에 감추지 말고 긍지를 갖고 당당하고 대담하게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회의 도덕적인 예의에서 빗나간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긍정적인 예술적 입장에서는 독창적인 개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도덕은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사람을 억압한다. 그러한 억압을 합리화 시킨 것이 바로 윗사람이라는 권력이다. 윗사람도 자신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휘인 천성적이고 나이나 경력인 권력으로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가치를 주입하고 복종시키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이 존재한 이래 인간의 무리(가족, 공동체, 부족, 민족, 국가, 교회 등) 또한 존재했으며, 늘 명령하는 사람은 아주 적은 데 비해 복종하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간들 사이에 복종만큼 잘 그리고 오랫동안 훈련되고 훈육된 것도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제는 누구나 ‘너는 무조건 이것은 해야 하고 저것은 해서는 안 된다’고, 즉 너는 어찌어찌 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일종의 형식적 양심으로 복종의 요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욕구는 충족되고자 하고, 내용으로 형식을 채우고자 해, 자신의 힘과 조급함과 긴박함에 따라 거의 닥치는 대로 아무것에나 손을 뻗고, 부모와 교사, 법, 계급적 편견, 여론과 같은 명령자가 자기 귀에 대고 소리치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이런 니체 얘기에 신중에 고찰해 보면 우리 예술가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적인 권력의 복종은 자신의 것을 억압하고 침해하여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을. 자신의 예술적 성향을 예술의 권력자와 다르다하여 그것을 감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술은 순간에 만들어져 과거와 미래를 가진다. 권력에 짓눌려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그것에 양보한다면, 그가 원하는 과거와 미래는 권력가의 예술성향에 맞춘 가식과 후회의 껍질로 뒤덮인 피해의식에 싸인 한탄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 이런 것으로 자신이 권력을 획득하게 되면 피해의식에 의해 그대로 아랫사람에게 행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아래의 니체의 말처럼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자기 극복에 대하여’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약자의 의지는 약자에게 강자에게 봉사하라고 설득하지만, 약자 또한 자기보다 약한 자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도 이 즐거움만은 버릴 수 없기에.”

권력을 내세우는 도덕은 예술가들에게는 치명적인 억압의 사슬이다. 평범한 것 그대로 내려오는 예술을 한다면 도덕을 지키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변화만을 주어 나타내는 것이기에 원래 예술적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권력에 대한 도전보다는, 권력에 대한 존중의 표현 형식을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기에 굳이 무엇을 넘어서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을 넘어서고 싶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싶은, 최고보다는 최초를 생성하고 싶은 예술가가 되고 싶은데, 도덕이 억압하는 당신에게 창조는 천재만의 산물이라는 허위적인 위안을 줄 것이다. 천재는 바로 당신이 진정으로 욕망하는 행동 속에 있는 것이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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