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속에서나 예술계 속에서나 겸손은 이익과 악으로 가득 찬 위선인 것이다.
겸손은 자신의 위치에서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대우를 받기 위해 만든 거짓된 예의이다. 모든 도덕의 예의와 덕을 기본삼아서 말이다.
니체는 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덕은 우리가 창안한 것, 우리의 가장 개인적인 방어물이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며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덕을 칭찬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서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즉 덕은 강자의 이익을 위해서 만든 것이며 강자가 약자에게 집단적 무리를 형성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든 집단적 보호조치이다.
강자에게는 법도 필요 없고 덕도 필요 없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진심으로 덕을 행하는 것이 겸손인 것이다.
진정한 겸손의 선행은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보이는 행동이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의 미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겸손이라는 행위는 능력과 재능이 있는 아랫사람이 간사한 윗사람에게 보이는 처세의 한 부분으로써 위선을 통해 조소를 선사하는 악마적인 인사법이다.
조소가 담겨 있지 않더라도 솔직한 얘기를 못하는 것 자체가 바로 위선이다. 그것은 겸손이 강요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계에선 말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도 자신의 것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깡다구’를 배워야 할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이 잘못된 점을 솔직하게 지적하고 진실을 얘기하며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곧 간사한 윗사람에게 건방짐으로 통하게 되는 것이며, 현명한 제 삼자가 보는 경우에는 진실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망신을 당해 봐야 안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윗사람을 지적하여 윗사람이 망신당했다면 그것은 심한 망신 속에서 절대 잊지 못할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랫사람에게 심한 분노를 느끼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망신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노를 쌓아둘 것이며, 자신을 성찰한 사람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달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간사한 윗사람과 현명한 윗사람을 구분 짓는 것이다.
이제는 법이 되어버린 겸손, 이것 자체가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 예술가의 초상들을 주눅 들게 하고 그들의 기발한 생각의 표현을 억압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너무 겸손해서도 안 되며 너무 거만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예술가로서는 건방지되 인간으로서는 겸손해야 한다.
자신의 작품과 의견에 대해 윗사람에게든 누구에게든 자신 있어야 하며 때론 건방져야 한다.
‘지혜로운 건방짐’이야말로 예술가의 사상에 제일 어울리는 자신감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자신의 하는 일에 무지하면 그는 당연 비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의 하는 일에 능통하다면 그는 겸손해 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벌써 자신의 일에 능통하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거만이기 때문이다.
능통한 사람은 절대복종 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의 것을 믿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며 자신의 것과 다른 것에는 의심을 품고 깊게 고찰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추어 얘기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 거만이라면, 윗사람과의 대화 속에서도 그의 능통함이 보이므로 윗사람의 의견을 전적으로 순종하여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용하는 척 하는 자체가 위선이며, 소크라테스 식으로 얘기하자면 그 사람에게 사물에 대한 오해와 무지를 그대로 안겨 주고 있는 것이기에 이것은 더욱더 악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잘못된 점에 자신을 갖고 얘기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처럼 살아남기 힘들 것인가. 아니면 예술계에서 살아남길 힘들 것인가.
그것은 무지한 반론에서 제기 되는 천박한 거만함 이거나, 버릇없는 행위에서 오는 처벌일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부분에 감정상으로 덤벼 아는 척하는 행위에서 오는 처벌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능통함과 직관에서 오는 얘기라면 그는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처벌 받는 다면 그는 투쟁할 것이다.
위 내용이었던 ‘도전하라’에서 필자가 얘기했던 것처럼.
자신의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도 무엇이 두려워 주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위선이 되는 것이며 굴욕이며 비굴이 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능통함의 주장에 있어 자신은 지혜로운 거만함을 가져야한다.
이것이 곧 위선 없는 겸손이 될 것이다.
자신의 솔직함과 사실을 사실 되로 얘기하는 겸손함 그 자체야 말로 예(藝)의 숭고함인 것이다.

글_이우재 up_rock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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